[책 속으로] 과연 녹색성장은 허구인가?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니코 페히 지음, 고정희 옮김, 나무도시 펴냄(2015)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02-14
과연 녹색성장은 허구인가?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성장으로부터의 해방
니코 페히 지음, 고정희 옮김, 나무도시 펴냄(2015)
패시브 하우스는 겨울에 따뜻하다. 최대한 받아들이는 햇빛과 3중 유리창, 두께 30cm의 단열재 덕택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는 기가 막히는 효과이다. 초기비용은 높지만 길게 보면 냉난방비 절감액이 훨씬 더 크고 그만큼 지구환경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2009년부터 패시브 하우스 설계를 의무화했다. 그렇다면 과연 프랑크푸르트 시민은 유럽의 타 지역보다 적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까?

아쉽게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개인들이 패시브 하우스로 아낀 냉난방비를 고스란히 모은다면 가능하겠지만 다른 데 쓰는 까닭이다. 이를테면 그렇게 아낀 비용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결국 에너지 소비총량은 차이가 없게 된다. 가정의 에너지 소비는 줄였지만 다른 용도의 에너지 사용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결국 풍선 효과와 다름없다. 실제로 온갖 환경정책을 펴고 있는 독일의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11톤으로 유럽연합의 평균치인 7.3톤을 훨씬 웃돈다. 

이러한 사례는 기술개발로 에너지 문제를 풀려는 환경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진다. 그 의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하이브리드나 전기 자동차, 절전형 가전과 같은 온갖 친환경 물품들에게 모두 적용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친환경 정책이나 에너지 효율화 기술이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꾸준히 추진해야 할 일이다. 다만, 인간이 아닌 지구환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환경문제 해결을 기술개발에만 맡겨놓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궁극적으로는 소비 욕망의 자제가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은 기술혁신으로 에너지효율성을 높여 지구환경을 보호한다는 단순한 논리를 경계한다. 저자 니코 페히(Niko Paech, 1960- )는 기술개발로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믿음은 효율신화의 환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한다. 사실 지금까지 기술혁신은 생산효율을 높여 부를 만드는 원천으로 여겨왔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신기술로 원가를 낮추거나 생산과정을 보다 효율화시키면 제품 가격은 분명히 내려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니코 페히는 “문제는 기술 혁신의 가능성을 모두 이끌어내기 위해 생산 구조를 쇄신하고 확장해야 한다는 데 있다. 더 나아가서 생산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새로 공장을 짓거나 기존 공장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31쪽)”면서, 자원의 이용효율성을 높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규모만큼 더 자원을 투입하고 때에 따라서는 시설도 확충해야 함을 지적했다. 생산효율성을 높여 시장가가 낮아지면 수요가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효율성 향상은 소비량 증대를 낳고 지구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은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니코 페히 교수는 휴대폰과 승용차가 없고 비행기도 평생 한번만을 탔다. 지역사회에 집중하고자 활동반경도 크지 않다는 그의 행동방식은 환경에 대한 지행일치적 삶을 보여준다.ⓒwww.hs-augsburg.de

이러한 입장에서 니코 페히 교수는 기술개발로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 소위 ‘지속가능한 성장’ 이나 ‘녹색성장’은 허구의 신화라고 잘라 말한다. 대개는 ‘녹색 세탁(green washing)’에 불과한 정책이거나 기업의 눈속임이라는 주장이다. 냉정한 말이지만 “사실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영원한 성장’을 뜻하는 암호에 불과하다”고 한 스탠 콕스의 <녹색성장의 유혹> 등류의 성장주의 비판서를 떠올리게 한다.

녹색성장을 뜻하는 질적인 성장, 탈동조화(decoupling), 비물질적 성장은 생태적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미뤄놓는 것뿐이라고 니코 페히는 지적한다. 시간적인 지연, 환경매체의 구조적 부담 이전, 물질적 대체, 공간적으로 미루기, 기술적 책임전가 등이 대표적인 수법이다. 대체에너지로 각광받는 태양광 생산을 예로 들어보자. 사용기간 20년 뒤에는 집광판의 폐기처리문제가 생기므로 ‘시간적인 지연’에 해당되며, 설치 공간 소모와 그로 인한 생물종다양성의 파괴, 자연경관 훼손이라는 점에서 ‘환경매체의 구조적 부담 이전’이 되고, 집광판에 쓰이는 규소는 고온 가열로 생산되는데 재생 에너지로는 이런 고열이 힘들기에 ‘물질적 대체’의 문제가 생긴다. 또한 선진국의 친환경적 정책으로 생산시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로 이전되는 것은 전지구적 관점에서는 ‘공간적으로 미루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탈성장’이었다. 미래 자원까지 당겨쓰며 끝없이 추구하는 ‘풍요로운 사회’가 아니라 절제된 경제행위를 강조한다. 이는 생산과 소비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니코 페히는 탈성장을 ‘창의적인 포기’라 하지만 현대사회의 체제를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와의 불화를 각오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산업생산량은 대폭 축소되지만 결국 공급의 경제적 안정성을 촉진할 것이며(회복탄력성),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행복감의 상승을 가져올 것이다(11쪽)”고 주장한다. 

<성장으로부터의 해방>은 독일의 대표적인 성장비판론자인 니코 페히 교수의 글을 재독 조경가 고정희 박사가 번역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조경은 환경의 어머니다. 1970년대 중반, 조경에서 환경이 파생되어 나왔으니 이 두 분야는 하나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역자의 견해는 환경에 대한 스스로의 관심이 당연함을 말해준다. 역자는 프로필을 통해 “조경과 환경의 양 분야에서 동분서주,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하고 있다”고 자평하였고, 저자는 승용차, TV, 휴대폰이 없고, 비행기는 박사과정 중 지도교수를 만나기 위해 탔던 것이 유일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학자이기에 가능하겠지만 친환경적 삶은 나름의 생태관을 지닌 채 ‘소비문화’를 거슬러 걷는 일관된 태도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한두 가지 행동이 아니라 모든 활동이 에너지 절감과 연결되려면 결국 가치관 자체가 저소비형 인간, 최소주의자적 삶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탈성장 사회를 이룰 때 강박적인 성장신화 극복과 진정한 지구환경의 개선이 시작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보편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의 주장은 상당부분 환경 근본주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현단계에서 녹색성장의 한계와 언어적 과잉, 미래를 망각한 과도한 소비행동의 지속불가능성을 깨닫게 하고, 그에 따른 환경적 책임의식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은 가볍지 않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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