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성적 상징과 정원

『성(聖)과 속(俗)』 멀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역, 한길사(1998)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11-17
성적 상징과 정원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성(聖)과 속(俗)
멀치아 엘리아데 지음, 이은봉 역, 한길사(1998)
한국 전통정원의 전형 중 하나는 방지원도(方池圓島)이다. 말 그대로 네모난 연못에 둥근 섬을 배치한 이 단순한 형태는 조선시대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의 기본 명제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음양오행, 신선사상 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연못의 중심은 섬이며, 섬은 성스러운 곳이다. 성스러운 곳은 당연히 속된 주변부와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서 방지원도의 원도는 대개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연못 주변에서 눈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전통정원의 폭넓은 성(聖)적 함의는 한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중국, 일본 등의 주변국은 물론이고 이집트, 그리스 등 역사가 오랜 곳에서 모두 관찰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전통양식인 고산수식 정원을 보면, 동시대 작정가(作庭家)들이 정원을 자연의 이미지와 함께 풍수, 불교, 금기체계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요소는 모두 정원이 강한 상징성을 가진 성(聖)적 존재였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전근대인이 지금과는 비교되는 상당한 수준의 종교적 인간이었음을 나타낸다. “종교적 인간에게 자연은 결코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종교적 의미로 충만해 있다. 이 사실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주는 신의 창조물이고, 세계는 신들의 손으로 완성된 것이어서 성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121쪽).” 그러한 그들에게 정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신이 현존하는 정화된 장소로써 직접 신들과 교류하는 신성성의 의미가 컸을지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전근대와 고대로 갈수록 인간은 성스러운 것이나 신성시되는 사물을 선호했고, 그에 따라 일상의 공간은 여러 성적 기표를 내재했다. 그 이유를 종교학자 엘리아데(M. Eliade, 1907-1986)는 “전근대적인 인간에게 성스러운 것은 힘이며, 궁극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실재 그 자체이자 동시에 영원성과 효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50쪽)”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동서양에서 모두 관찰되기에 공간의 상징체계는 인류의 공통된 유전인자로 볼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의 정원이나 조경, 그 밖의 도시공간에서 현대인은 무성적(無聖的) 존재로 구분된다. 오히려 성스러운 것의 여러 현현 양식을 접할 때 혐오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즉 현대인에게는 성스러운 것이 돌이나 나무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한 흔적이나 시도는 오히려 청산되어야 할 미신이나 전근대적 유물로 종종 여겨지는데, 조경공간의 경우 장승, 솟대, 석상 등류의 전통적 사물을 들 수 있다.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의 이 작품 사진은 기계적인 재현에 그치지 않고 은유적 상징체계를 결합시켜 숨겨진 자연의 신비성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성현이란 과정을 통해 속의 세계가 성의 세계로 전환된다는 M. 엘리아데의 생각과 연결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성스러운 돌, 성스러운 나무는 돌이나 나무로서 숭배되는 것이 아니고 성스러운 것,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비록 가장 원시적인 것일지라도 성현(聖顯-聖이 밖으로 드러난 것) 속에 표현된 패러독스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40쪽).”는 것이 엘리아데의 해석이다. 과학적 합리성이 없었던 전근대의 종교적 인간들에게 모든 자연은 우주적 신성성으로 계시되며, 그때 우주는 전체가 성현으로 인식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엘리아데의 시각으로 본다면, 고대인들은 성적 상징체계로 공간의 비균질화와 함께 시간의 비균질화를 꾀했다. 이러한 공간의 성적 장소화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인 인간이 가지는 고독과 소외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멸되는 자아의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신화적 순간의 재현을 도모한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세속사회이다. 탈신성성이 오늘날 현대인의 모든 체험을 특징짓고 있다. 그 결과 정원은 신체적 휴식이나 소통성은 높아지는 반면, 정신적 사유의 공간이라는 또 다른 역할은 옅어져 버렸다. 전근대인들은 그들의 정원을 통해 스스로의 우주적 실존을 드러냈는데, 현대인의 정원은 후세대에게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을까?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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