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소비사회의 정원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1991)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07-18
소비사회의 정원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문예출판사(1991)
정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고 있다. 정원박람회 인파와 아파트 조경의 정원화는 그러한 세태의 한 단면이다. 물론 관심이 실수요는 아닐 것이다. 자동차경주대회를 구경했다고 차를 사는 것은 아니듯이, 욕구를 거쳐 수요로 이어지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리라. 개인의 공간에 정서적 여유가 겹칠 때 정원이 시작되는데 겹치기는커녕 어쩔 수 없이 유목민적 삶을 사는 도시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먹을거리가 풍부한 사회에서 날씬한 신체는 그 자체로서 차별화의 기호이듯이, 정원을 갖기가 여의치 않을수록 정원의 개념에는 부르디외(P. Bourdieu)적 구별짓기의 심리가 숨어있다. 

정원이라는 욕구의 충족에는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 때문에 전통적으로 정원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었다. 생각해 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난한 평민들이 잔디나 관상수에 귀중한 시간과 땅을 낭비할 여유가 얼마나 있었을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정원을 이렇게 비평한다. “정갈한 잔디는 누구도 위조할 수 없는 지위의 상징이었다...근대 초기 왕과 귀족의 저택에서 탄생하여 19세기 신흥 자본가를 거쳐 마침내 중산층의 필수품으로 바뀌었다...전세계 사람들이 잔디를 권력, 돈, 명성과 연관 짓는다.” 물론 오늘날에는 한뼘정원이나 창가정원, 텃밭정원의 형태로 자신만의 장소를 추구하는 이들이 적잖다. 반면 연간 유지관리비만 도시가구 연평균소득을 가볍게 넘는 도곡동 고가 아파트의 실내정원과, 많은 비용이 들어갔지만 고급주택의 데코레이션일 뿐 정원활동엔 관심 없는 이들의 비장소(non-places)도 공존한다. 

이처럼 정원은 사유의 장소로 여겨지기도 하고 행복과 과시적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보드리야르(J. Baudrillard)에 따르면 후자는 기호가치를 중시한 것으로 소비의 영역이다. 아마도 집주인이 식물을 아끼고 좋아하는 문화·정서적 생활을 한다는 것의 기호이지 않을까. 정원활동은 비경제적 활동이니 베블런(T. B. Veblen)적 시각으로 보면 유한계급이라는 과시욕이 깃들어있을 수 있다. 즉 이들은 정원을 꾸민다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정원을 구입했고 소비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개인주의적·탈신분적 현대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려면 문화적 역량과 상품 소비만큼 효과적인 게 드물기 때문이다. 소위 ‘명품’에 대한 숱한 과시적 소비행태는 이를 잘 보여준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이 아파트 광고에는 “프리미엄, 톱클래스, 자부심”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위세를 상징하는 대형 문주와 영국 사교문화의 역사적 연원이 담긴 티가든이라는 용어에서 의도하는 이미지를 읽을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현상을 개인적 차원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소비활동을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 욕구로만 보는 것은 표피적이다. 19세기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생산’이었다면 후기 자본주의의 화두는 ‘소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경제는 쏟아지는 생산품을 어떻게 해서든 소비시켜야만 온전히 돌아가며, 그것이 더딜 때는 곧바로 동맥경화가 찾아온다. 더 이상 소비할게 없다면 미래 소비를 앞당기라는 요구 혹은 유혹이 바로 신용카드요 주택대출시스템이지 않는가. 이를 기업뿐만 아니라 정치체계가 앞장서서 강요하는 것이 많은 자본제 국가의 현실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시대는 명백한 ‘소비의 사회’이며, 보드리야르는 그것을 이미 한세대 전에 정확히 내다봤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비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보드리야르는 고개를 가로 흔든다. 이미 소비는 기호이자 언어가 되었기에 누구나 그 체계를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소비활동이 곧 여가활동이 되었고 국민이 소비자로 호명되는 현실은 보드리야르의 생각에 힘을 싣는다. 소비는 이미 모두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소비의 시대는 근원적인 소외의 시대이기도 하다. 상품의 논리가 일반화되고 모든 것이 상품으로 포장되어 기호로 인식될 때, 소비를 통한 과시와 자신을 특정 이미지로 포장하려 하지만 그 끝은 대개 공허하다고 그는 지적한다. 

최근의 아파트 광고를 보자. 단지 내의 고급스러운 정원 이미지를 종종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가족 및 이웃과의 여유 있는 휴식을 연상시키고, 그 아파트를 사면 차별화된 정원활동을 하는 특별한 존재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러한 광고는 소비사회의 정원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자칫 “향유의 도구”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과시”하는 기호로 조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파트 광고를 볼 때마다 조경이나 정원에 덧씌워진 이미지와 기호를 확인해 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정원이 대중화와 인간소외의 극복이란 바람직한 역할을 위해 가져야 할 이미지와 기호는 과연 무엇일까?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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