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정원, 교양이 되다

『가든 디자인의 발견』 오경아 지음, 궁리 펴냄(2015)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06-15
정원, 교양이 되다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가든 디자인의 발견
오경아 지음, 궁리 펴냄(2015)
정원 소개가 많아졌다. 점점 늘어나는 정원 박람회와 책자 발간이 이를 말해준다. 수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요를 이끌어내려는 공급자의 앞선 노력도 상당하다. 그 배경에는 활로를 찾으려는 정원전문가, 정원을 도시마케팅의 한 요소로 여기는 도시행정가, 시장을 키우려는 원예 및 조경산업의 기대가 깔려있다. 유럽 정원행사에 몰리는 많은 인파와 높은 정원문화를 보노라면 한국도 이젠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의 대중문화 발달과 반백년에 걸친 공공조경의 성과는 알게 모르게 개인들에게 일상의 공간을 비평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 주었다. 

정원박람회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원들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제까지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원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저것도 정원인가?” 싶은 것도 있겠지만 정원의 형식과 용도는 고정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긴 호기심은 관련정보를 계속 접할 때 비로소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정원에 대한 책과 강좌는 정원 대중화의 지름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지난 십여 년간 여덟 권의 책을 펴내고 대중적 정원 강좌에도 열심인 오경아는 정원문화 확산의 전위대이지 않을까.

<가든 디자인의 발견>은 그의 책 중에서 비교적 전문성이 높다. 오경아의 초기 저작은 유럽정원 소개와 삶의 유목적 여정에서 바라본 정원의 의미탐색이 많았다. 이 책에서는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원의 분석과 의미해석을 거쳐 디자인의 원리 제시가 시도되었다. 그 구체적인 대상지는 러우샴, 스타우어헤드, 채스워스 정원 등 유럽의 대표적인 명원 열 군데이다. 각 정원 설계자를 상세히 소개한 뒤 정원사적 의미, 공간의 특성, 사회적 반향 등을 조명했다. 

정원과 조경은 어떻게 다를까? 전통적 구분법은 사적영역이냐 공적영역이냐에 있다. 정원은 공공을 위해 도시 인프라로 기능하는 조경과 달리 개인과 특정집단의 공간이었다. 그만큼 접근방법이나 조성기법, 지향점에서 조경과 뚜렷이 구분된다. 정원에서 사적 취향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질 수 없다. 오경아는 이러한 맥락에서 두 공간의 차이에서 시작하여 정원에 반영된 정원주의 취향과 그에 조응하는 설계자의 접근방법을 소개했다. 특히 정원주와 설계가의 상호작용은 좋은 성과물의 필수 요소였음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주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유홍준의 언명은 유적지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훌륭한 정원의 뒤에는 항상 안목 있는 정원주가 있었다. 

서양조경사의 한자리를 차지해 온 스타우어헤드 정원은 러우샴 정원과 함께 18세기 영국 풍경식 정원의 진수로 꼽힌다. 러우샴 정원이 찰스 브리지맨, 윌리엄 켄트와 같은 유명 정원사가 관여했다는 역사성이 있다면, 스타우어헤드는 정원주가 직접 꾸몄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러우샴 정원과 달리 스타우어헤드 정원주는 신흥상공인 집안이었다. 그러나 정원에 대한 관심은 누구보다 높았다. 그 열정은 할아버지에서 손자로 이어졌고, 이태리 여행에서 본 풍경화 기법이 정원에 가미되어 마침내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은 자연적 경관을 재현시켰다. 매슬로우의 시각으로 본다면, 명원은 많지만 ‘존경의 욕구’를 위한 주문생산품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아실현’을 위한 예술적 행위였다는 데에 스타우어헤드 정원의 가치가 있다. 


내쇼날지오그래픽이 세계 10대 정원으로 뽑은 스타우어헤드 정원. 시간과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자연경관이 일품이다. ⓒwww.nationaltrust.org.uk

채스워스 정원(영국)은 16~19세기의 여러 양식이 절묘하게 융합되었다. 덕분에 영국 최고의 성(castle)으로 매번 뽑히며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풍경정원의 개념을 잡은 랜슬럿 브라운과 오랜 기간 관리한 조셉 팩스턴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곳 침엽수림은 원래 있었던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유명하다. 적절한 수종혼합과 함께 작은 나무가 아닌 성목을 활용한 팩스턴의 독창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정원사를 전적으로 믿고 밀어준 정원주가 있었다. 새벽 4시 반부터 정원일을 시작하는 팩스턴을 눈여겨 본 그는 정원을 넘어 집안일과 나랏일까지 조언을 구했다 한다. 이러한 신뢰의 무게감이 팩스턴을 무려 50년이나 이곳에 발을 묶어 놓지 않았을까. 그러한 점에서 그들의 관계는 소위 ‘형님·아우’ 혹은 ‘우리가 남이가?’ 식의 세속적인 사적 친밀감이 아니라 적절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공적 신뢰감의 사이로 보인다. 그러한 관계가 주는 긍정적 상호작용이 채스워스 정원의 탄생에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20세기 중반의 시싱허스트 정원(영국)은 또 어떠한가. 이 정원은 활발하고 사교적인 부부가 협력할 때에 얼마나 좋은 정원이 만들어지는 지를 잘 보여준다. 건축적 지식이 많은 남편의 이성적 레이아웃에 식물을 잘 아는 부인의 감성적 색감이 더해졌고, 그 결과는 남성적 매력과 여성적 섬세함의 이상적인 조화였다. 벽돌담과 주목나무 생울타리로 나누어진 여러 공간은 ‘정원의 방’이라 불리 우며 ‘정원속의 정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경아는 <가든 디자인의 발견>에서 각 정원을 다룰 때 구성요소별 분석과 함께 ‘디자인 팁’을 제시했다. 좋은 의도였고 독자의 활용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획이었다. 다만 질과 양적인 면에서 아쉬움이 컸다. 대저 ‘분석’이란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잘게 쪼개어 그 속성을 명확히 밝히는 것일 것이다. 정치하고도 적확한 언어의 사용도 중요하지만 깊이가 있으려면 당연히 일정한 양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례지별로 제시된 서너 개의 문장으로는 분석내용이 충분히 다가오지 않았다. 좀 더 치밀한 대상지별 분석이 아쉽지만, 애초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이 정도의 수위 조절을 목표로 한 듯하다. 

<가든 디자인의 발견>은 내용과 편집 면에서 일반인 대상의 대중서이다. 가볍게 읽으면서 쉽게 정원의 핵심적인 특성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질적·양적으로 아쉬운 부분들이 있으나 교과서적 책자와 뚜렷이 선을 그으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그의 스케치는 투박하고 원근법마저 불완전하지만 그러한 점이 오히려 정원 조성에 대한 일반인의 부담감을 줄여줄 것 같다. 전문가적 색채를 탈색시킨 이러한 노력은 정원의 대중화를 위한 유용한 글쓰기 전략으로 보인다. 일반대중에 쉽게 다가가려는 그의 열정은 정원의 대중화를 좀 더 앞당김과 동시에 정원활동을 일반적인 교양활동으로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된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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