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과시적 공간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7-02-16
과시적 공간


유한계급론
소스타인 베블런 지음, 우물이있는집 펴냄(2012)
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가끔 신도시에서 소나무 가로수 길을 본다. 한옥마을이면 모르겠지만 타워형 건물과 함께, 군식도 아니고 열식된 소나무 가로수는 물 위의 기름 같은 느낌을 준다. 소나무는 여름에 다른 낙엽수에 비해 그늘이 적다. 최근 주목도가 높아지는 탄소저장량과 이산화탄소흡수량 또한 튤립, 메타세쿼이아, 양버즘나무 등 대개의 가로수보다 훨씬 낮다. 그런데 왜 소나무를 가로수로 썼을까? 아마도 전통수라는 감성적 효과와 함께 고급수 이미지를 노렸지 않을까 생각된다. 비싼 소재로 공간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 소스타인 베블런(1957-1929)에 따르면 스스로를 고급하게 자리매김하려는 과시적 의도이다. 


그늘도 별로 만들지 못한 채 초현대적인 건축물 속에 열식된 이 소나무는 애초에 어떤 효과를 기대했을까? 
ⓒ오정학

과시적 행동의 역사는 장구하다. 이 행동의 동기는 명예와 존경심을 얻고자 함이다. 그것은 원래 야만사회에서 수렵이나 약탈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었다. 사냥에서 큰 역할을 하거나 이웃 부족과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우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근대화가 되면서 더 이상 그러한 야만적 방식은 쓸모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다른 방식이 필요해졌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곧 경제력의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유명한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의 당사자이자 <유한계급론>의 저자인  베블런은 자본제 사회에서는 경제력이 능력의 척도이므로 그것을 드러내는 최선의 방법은 돈에 구속되지 않는 듯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바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였다. 

만일 당신이 세계 최고의 갑부라 가정해보자. 검소와 절약이 그다지 큰 의미가 있을까? 재화의 순환을 고려한다면 소비와 낭비는 오히려 미덕이요, 절약과 절제는 노랭이 짓이 된다. 이러한 사고는 전근대 사회의 유한계급에서 나타난다. 대표적인 유한계급인 유럽 봉건 영주들은 성장한 자녀들에게 세상구경을 시킬 때 금화를 잔뜩 용돈으로 주곤 했다. 자녀에 따라 용돈을 다 쓰고 오거나 남겨오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성주는 남겨서 온 자녀에게 칭찬이 아닌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금화주머니를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소비, 아니 낭비가 미덕인 ‘유한계급’의 역사적 전형이다. 금화 한 주머니를 아까워한다면 이미 유한계급일 수 없고, 그렇다면 명예스런 존재일 수 없다는 생각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유한계급의 행동은 비실용을 특징으로 한다. 굳이 실용적이어야 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비실용의 정도가 높을수록 더 높은 명예의 표상이 된다. 음식, 의복, 주거는 물론이며, 취미나 문화활동 등도 모두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식사는 여러 음식을 까다로운 격식에 따라 먹느라 한없이 오래 걸렸고, 의복은 한번 입고 벗는데 많은 시간과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굳이 급하게 서둘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까닭이다. 주거 역시 마찬가지여서 건물과 정원, 가구 등은 장식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유한계급은 형식을 중시하여 “예의범절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신봉했다. 예의는 그것을 익히는데 오랜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므로 결국 여유시간인 ‘여가’가 요구된다. 또한 부르디외(P. Bourdieu) 식으로 본다면 부모의 문화적 안목이나 역량과 같은 문화자본도 중요히 작용하는데 그것을 결정짓는 것은 역시 ‘자산’이다. 유한계급이 “예의범절”에 집착하는 심리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유한계급들이 본인의 ‘여가’와 ‘자산’을 동원하여 보다 낮은 계급이나 일반인과 자신을 구별 지으려는 장치로 예의범절을 활용했음이 짐작된다. 

유한계급은 경제학자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명명한 개념이다. 생산적 노동을 할 필요가 없기에 예술, 스포츠, 오락 등 비생산적인 것에만 전념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베블런은 이 용어로 당시의 자본주의적 유한계급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타자의 욕망’이라 불리는 현대 소비문화도 결국 과시성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므로, 베블런의 프레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느끼게 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의 소비 행동을 금전과시문화에 의한 과시적 소비로 보았다. 신분제가 사라진 사회, 민주화된 사회에서 또 다른 방식의 자기표현일 것이다. ‘명품’ 혹은 ‘상위1%’ 등이 마케팅적 수사로 널리 쓰이는 것은 이러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소스타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기껏해야 나르시시즘적 ‘구별짓기’이자 별 생각 없는 ‘따라하기’에 불과하다. 현대 조경공간도 마찬가지이다. 편리함이나 실용성보다 고급성과 차별화에 지나치게 빠져들 때 과시적 공간은 만들어진다.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기호에 의존하여 전시대적 유한계급의 이미지를 자연스레 욕망하게끔 한다. 기능적 유용성과 사회적 가치보다는 희소성과 개인적 욕구에 집착할 때 금전과시문화에 휘둘릴 수 있음을 베블런은 경고하고 있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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