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가장 오래된 정원의 기록

『사쿠테이키』 다치바나노 도시쓰나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6-06-16
가장 오래된 정원의 기록


사쿠테이키
다치바나노 도시쓰나 지음, 다케이 지로, 마크 킨 주해, 김승윤 옮김, 연암서가(2012)
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ohjhak@daum.net)


정원 기록물로 중국에 원야(園冶, 1634)가 있다면 일본에는 작정기(作庭記)가 있다. 원야(園冶)보다 500여년이나 앞섰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일본의 전통문화를 무시하는 시각이 백제의 정원술을 소개한 노자공(路子工)을 내세워 작동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지만 작정기의 정원사적 가치는 결코 낮지 않다. 우연히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일본에는 축산정조전, 산수병야형도 등 다른 정원 기록물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기록문화로만 본다면 일본의 정원문화가 세계 정상급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물론 작정기 주해서로 나온 <사쿠테이키>가 일본 정원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기존의 평가절하는 상당 부분 절상된다. 이 놀라운 기록물은 헤이안 시대에 활짝 핀 일본 귀족문화의 성과품이다. 저자는 다치바나노 도시쓰나(俊綱)라는 귀족으로 추정된다. <사쿠테이키>의 가치는 단순히 정원술을 기술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물과 돌, 풀, 나무 하나하나가 기표와 기의를 이루었는데, 그것은 작정자 혼자만의 파롤이 아니라 동시대의 랑그임을 엿볼 수 있다. 

<사쿠테이키>에서 보듯이 고산수식 정원의 주재료는 모래와 돌이다. 섬, 폭포, 계류 등의 재현에 주로 사용되었다. 섬나라인 만큼 섬의 양식에도 산섬, 들섬, 숲섬, 바위해안섬, 구름 모양, 안개 모양, 만곡해안 모양, 가는 계류, 개펄, 소나무 껍질 등 숱한 유형이 나온다. 돌의 배치는 정형화할 수 없는 속성상 전적으로 경험에 기댄다. “먼저 한 개의 돌을 놓아라, 다시 놓이는 돌은 그 숫자가 몇 개이든 처음 돌의 요청에 따라 놓아야 한다(64쪽)”고 했다. 돌의 쓰임새도 다양했는데, 건물기초나 섬의 둑을 튼튼히 하는 구조체적 요소, 흐르는 물속에 배치하여 시각적 효과를 얻는 미적인 요소, 축경식 자연경관이나 부처의 신격을 표상하는 비유적 모티프, 전체 대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풍수적 요소 등으로 적극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료안지, 그 철저하고 엄격한 배치로 볼 때 가히 춥고 시들고 쓸쓸함을 중시한 중세 미학의 결정판이자 일종의 추상예술로서...수묵화에 비유할 만하다(폴 발리). ⓒhttps://Ko.wikipedia.org

일본사 전문가인 미국의 폴 발리는 일찍이 일본 문화의 미적 특성을 “미야비(雅, 우아), 모노노아와레(순간적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비애), 사비(寂, 예스럽고 아취가 있음)”로 정리했다. “길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민하게 포착 한다”고 보았다. 그는 고산수식 정원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료안지 정원에 대해 “그 철저하고 엄격한 배치로 볼 때 가히 춥고 시들고 쓸쓸함을 중시한 중세 미학의 결정판이자 일종의 추상예술로서 흰 종이와 검은 먹물로 표현된 서예 혹은 수묵화에 비유할 만하다”면서 놀라움을 표시했다. 

주해자 다케이 지로는 일본정원학회장 출신이고 마크 킨은 미국인 조경가이다. 이들은 사쿠테이키를 통해 동시대 정원가들이 정원을 자연의 이미지, 풍수, 불교, 금기체계의 네 가지 방식으로 인식했다고 해석한다. 이 중에서 ‘자연의 이미지’는 시각적 특성을 말하며, ‘풍수, 불교, 금기체계’는 모두 헤이안 시대의 정원이 강한 상징성을 가진 문화적 존재임을 말해준다. 상징성은 동북아 3국의 전통정원에서 공통되지만, 특히 일본에서는 축경식이라는 독특한 스케일에 더해져 한 층 더 다양한 양태를 보여준다. 

금기란, 사회경제적으로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지거나(마빈 해리스) 경험적으로 파악된 위험에 대한 경고이자 문화적 선택이다. 화(禍)를 막고 안전과 복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풍수와 함께 동양3국에서 모두 발견된다. 사쿠테이키에서는 ‘금기표찰’이 대표적으로 소개된다. 땅이나 모래더미 등에 설치하여 방문자에게 그 공간이 금기의 시기에 있음을 경고한다. 형태가 다를 뿐 대문이나 큰 나무, 돌 등에 드리웠던 한국 전통의 금줄과 비슷하다. 사쿠테이키에 나오는 돌과 관련된 많은 금기는 한국에서 나무와 연관된 금기가 많았던 것과 대조된다. 돌과 나무가 두 나라의 정원에서 차지하는 비중, 각각의 상징성 차이로 보여 진다. 

다케이 지로와 마크 킨의 <사쿠테이키>는 일본 전통정원의 독창성을 명확히 알려준다. 그와 동시에 동북아 정원문화가 가지는 공통된 정서도 같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문화권이 다른 두 주해자의 시각 차이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동서양의 인물 조합에 대한 교차문화적 시각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은 새로운 기대를 낳았다. ‘사쿠테이키’로 박사 논문을 쓴 옮긴이(김승윤)가 직접 새로운 관점에서 사쿠테이키 관련 책을 펴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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