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체계저항의 진지, 헤세의 정원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2013)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10-04
체계저항의 진지, 헤세의 정원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서  명 :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펴낸 곳 : 웅진지식하우스(2013)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에 내가 속한 사회가 지나친 경건주의, 권위주의, 전체주의, 민족주의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스스로 동화될 수 있다면 무슨 문제가 있으랴. 다만 그렇지 못할 경우 그곳은 지옥이 된다. 사회 발전을 위해 체계에 맞서 싸운다면 좋겠지만, 힘없는 개인의 선택은 대개 두 가지일 것이다. 최선책은 지옥을 벗어나는 것이고 차선책은 그곳에서 버티는 것이다. 20세기 초 세계대전 전야의 독일이 바로 그러한 사회였다. 헤르만 헤세는 그러한 체계와의 불화로 고민하던 소시민이었다. 전쟁 준비에 골몰하던 극우 전체주의 사회에서 그와 같은 반전주의자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자 군복무를 자원했다. 하지만 시력 문제로 군복무 대신 포로복지활동에 5년간 헌신 했고, 그 뒤에는 조국을 떠나 스위스에 안착했다. 

대문호 헤세는 집을 옮길 때 마다 꼭 정원을 가꾸었고 스위스에서도 그러한 일은 계속되었다. 정원은 그의 사상 및 창작활동과 긴밀해 연결되어 있었다. 헤세는 정원 일을 “명상과 정신적인 소화를 위한 것”이라며 줄곧 혼자서 정원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속에 파묻혀 정원과 자연에 대한 많은 그림과 글을 남겼다. 마흔 살부터 본격화된 그의 그림그리기는 꽃과 풀, 강, 산, 구름과 같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경관이 주된 대상이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볼 때, 그는 단순한 정원 애호가가 아니라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드높았던 찬란한 낭만주의 대열의 마지막 기사였다. 이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관찰하는 것이 나의 주요 모티프이다”라는 헤세 스스로의 말에서 충분히 확인된다. 

헤세는 삶의 대부분인 31~77세 동안 정원과 자연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정원에 대한 헤세의 글을 묶은 것으로, 작가가 아닌 헤세의 일상을 새롭게 보여 준다. 지금의 관점으로야 정원에 파묻혀 글을 쓰는 것은 작가로서의 아우라를 짙게 하고 생태주의자나 자연주의자로 비춰질 법하다. 하지만 한창 산업화가 기세를 떨치던 당시의 독일 문단에서는 이를 시대에 역행하는 한심한 일로 여길 뿐이었다. 그는 시대적 요구와 사명을 외면한 작가로 매도되었다. 이 때문에 헤세는 세계 어디서보다 조국 독일에서 무시된 채 학계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세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는데도 수상식 참석을 거절할 만큼 명예욕이나 세속적인 가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서재와 함께 정원은 헤세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그렇지만 정원을 단순히 세상과 거리를 두는 은신처로 여긴 것은 아니었다. 화가 수준이었던 그가 식물을 많이 그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원은 탈문명 및 자연과의 조화를 꾀했던 그의 생활공간이자 전체주의와 자본주의, 기술지상주의로 가득 찬 체계에 맞서 자신만의 사상을 조형하는 장소이자 진지였다.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며 영원한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고, 명상과 성찰로 삶의 지혜와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연계에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혼돈과 조화로움, 순간과 영원, 폭력과 평화를 자주 대비시키는데 이는 문명과 자연의 대립을 상징한다.


호수 골짜기 위쪽 꽃이 심어진 정원>, 헤세의 펜 소묘에 수채화, 1928년.

원래 우울증이 있었던 헤세는 사람들과의 교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반면 주변의 사물이나 식물에 많은 애정을 가졌다. ‘잃어버린 주머니칼’이란 글에서는 오래 된 물건을 잃은 아쉬움과 물질문명에 대한 그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어머니 반지와 아버지 시계, 어린 시절의 사진 몇 개와 기념품들’과 같은 오래 된 물건들을 아꼈는데, 특히 주머니칼은 단순한 보관품이 아니라 계속 사용해 왔기에 잃어버린 것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 칼은 결코 고급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설프며 새로울 뿐 무의미하고 유의적인” 현대 공업제품과는 달리 아름답고 생명력 있는 정연한 모습이었다고 평가하면서, 일상용품을 시시때때로 바꾸는 현대인들의 소비행태가 ‘유행의 노예’와 같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물건과 함께 한 경험과 시간을 소중히 여김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양산하여 유행과 변화를 추종하게 만드는 소비문명의 덧없음에 대한 경고였다. 

현대세계를 휩쓰는 물질문명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사고는 ‘여름목련나무와 난쟁이 분재’에서 다시 한번 드러난다. 두 나무는 각기 자본주의적 물질문명과 비물질적인 것을 상징한다. 그로 인해 목련은 풍요와 성장의 이미지가 과잉된 반면 난쟁이나무는 영혼이 서린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는 목련이 나타내는 “건강함, 씩씩함, 생각 없는 낙관주의, 모든 심각한 문제 따위는 웃으며 외면하기, 순간을 즐기며 얻는 생명의 기술” 등을 동시대의 슬로건이자 미국적인 것이라 여겨 비판했다. 미국의 승리로 끝난 2차 대전 직후의 세계에서 미국적인 것이란 소비중심의 물질문화와 동의어인 까닭이다. 

명상의 공간이었다지만 헤세의 정원활동이 단순한 여가나 취미가 아니었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내 방에서 바라본 풍경들, 정원의 테라스와 덤불 숲, 그리고 나무들은 내가 앉아 있는 방과 그 안의 사물들보다 더 가까이 내 삶에 속해 있다. 그것들이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들이고 내 이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들은 나를 지탱해주는 믿을 만한 존재이다”고 하며 정원이 창작자로서의 자신을 지탱하고 끝없는 영감의 발원지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는 생산과 소비로 정신없이 굴러가는 현대사회에서 몸을 빼내었고, 정원을 가꾸며 그 속에서 심신의 안식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그곳은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사유의 공간이었다. 헤세가 세상사의 온갖 것들에 휘말리지 않고 ‘전세계인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문필가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파워젤과 같은 정원이 준 삶의 에너지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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