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야생동물의 흔적

『야생동물 흔적 도감』 최태영·최현명 지음, 돌베개 펴냄(2007)
라펜트l오정학 과장l기사입력2018-03-02
야생동물의 흔적


_오정학 경기도시공사 과장
(ohjhak@daum.net)


야생동물 흔적 도감
최태영·최현명 지음, 돌베개 펴냄(2007)

겨울은 동물에게 힘든 시기이다. 혹한의 날씨와 굶주림, 나뭇잎이 떨어져 쉽게 노출되는 주변 환경은 겨울나기를 어렵게 한다. 눈 내린 겨울산에서 야생동물 발자국을 볼 때면 “무슨 목적으로 추운 날씨에 이 길을 가로질러 갔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체력소모를 최소화해야 하는 계절이기에 필시 생존을 위한 이동이었으리라. 먹이를 찾거나 물을 먹으러 가거나 혹은 천적을 피해 도망치는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눈 때문에 발자국이 쉽게 눈에 띄지만 사실 야생동물의 자취는 겨울 아닌 다른 계절에 훨씬 더 많다. 다만, 주의 깊게 보지 않았거나 그것이 동물의 흔적임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야생동물 흔적은 어떻게 포착될까? 일단은 호기심이다. 다른 생각을 하며 걸을 때는 아는 이와 마주쳐도 못 알아챌 때가 있듯이, 아무리 큰 흔적도 관심이 없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있다고 모두가 흔적을 찾아내지는 못한다. 포착력과 해석력이 그것을 좌우한다. 동물 흔적은 아주 다양하기에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총동원하여야 한다. 감각기로 찾아낸 흔적의 실체를 정확히 추정하기 위해서는 역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는 유홍준의 명언은 문화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조합한 추리력이 추가로 요구된다. 이를 테면, 깊은 산속 저습지에서 개구리 알을 담고 있는 작은 웅덩이를 발견했다고 생각해 보자. 대체 그 웅덩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경험과 추리력으로 그 웅덩이가 멧돼지가 진흙목욕을 한 결과물임을 추리해낸다. 멧돼지와 개구리의 행태와 습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힘든 해석이다. 

그렇다면 야생동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흔적을 찾아내기 힘든 것일까? 다행히 저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국내 포유동물은 많은 수가 절멸하여 대개의 숲에서 관찰할 수 있는 동물은 10여 종을 넘지 않기 때문이라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일반인도 10종 이상의 동물흔적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야생동물 흔적을 이해하는 첫걸음으로 발자국, 배설물, 시간에 따른 흔적의 변화, 먹이 흔적, 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동물종으로는 토끼목, 고슴도치와 두더지 등의 식충목, 다람쥐 등과 같은 설치류, 삵·족제비·곰 등류의 식육목, 멧돼지와 사슴 등의 유제목 등을 포괄한다. 

이 중에서 삵(살쾡이)은 자연환경과 연관성이 높아 눈길을 끈다. 맹수가 사라진 남한 생태계에서 최강자인 것도 흥미롭지만 도시의 친환경성을 파악하는 ‘지표종’의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본래 삵은 서식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습지에서 산악지대까지 넓게 서식한다. 강원도 고성군 향로봉에도 있지만 청계산이나 서울의 난지도 노을공원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이렇게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지만 갈대숲과 물웅덩이가 없이 콘크리트로 정비된 인공 하천에서는 살수 없다. 따라서 삵의 서식여부는 곤충과 식물을 포함해 특정 공간의 생태적 건강성을 나타낸다. 


산양의 뿔질을 묘사한 최현명의 세밀화. 산에서 작은 나무의 껍질이 한 뼘쯤 벗겨진 것은 대개 산양이나 노루의 짓일 때가 많다. 나무껍질을 먹기 위함이 아니라 영역확보와 상호 의사소통과 관련이 깊은데 대상이 되는 나무는 대부분 활엽수이다.ⓒ최현명

이 책은 두꺼운 일반 도감류와 달리 한 뼘 크기의 작은 책자이다. 그렇지만 사진과 그림을 최대한 활용하여 야생동물의 흔적을 효과적으로 나타냈다. 덕분에 전문서적인데도 초등학생부터 생태 관련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읽히고 있다. 다년간 오지를 다니며 체득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쉽게 설명한 탓일 것이다. 뜻밖에도 공저자인 최태영과 최현명은 생물이 아니라 조경 전공자들이다. 최태영은 국립공원에서 일하며 동물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쌓았다. 최현명은 어릴 적부터 동물에 비상한 관심이 있었는데 특히 그의 동물 그림은 세밀화 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을 받았을 정도이니 정확도 면에서 사실상 국내 정상급으로 여겨진다. 관찰하기도 힘든 야생동물의 특징적인 행태를 사진으로 보여주기란 매우 힘들다. 그렇기에 책 곳곳에 담겨있는 최현명의 세밀화는 매우 좋은 대체품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린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행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그림인 동시에 이 책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고 있다.  

동물행태에 대한 이해는 생물서식처나 동물원 조성 등의 작업을 할 때 조경가에게 유용하다. 하지만 두 저자의 성과는 이미 조경에서의 활용 수준을 넘어 자연생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 최현명은 조경을 떠나 생태 다큐멘터리 제작이나 생태교육 등 활동의 폭이 넓다. 자기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뒤에 그 지평을 넓혀 새롭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야생동물 흔적도감>은 조경가가 조경의 경계를 넘어 길게 탈주선(脫走線)을 그리며 또 다른 영역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의 성과와 오늘이 쉽게 이루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무리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외로운 늑대이자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는 최현명의 자평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 책에 대한 인터넷 공간의 많은 반응 중에서 “야생동물 흔적도감을 쓰신 최태영과 최현명 선생님과 같은 동물생태학자가 되고 싶어요”라는 어느 중학생의 글이 눈에 띄었다. 대중적 반응의 한 단면이겠지만 척박한 한국의 동물생태 분야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새삼 느끼게 한다. 

_ 오정학 과장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다른기사 보기
ohjhak@daum.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