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마음을 가꾸는 정원
정원에서 우리는 온전한 자신이 된다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5-06-21

지은이_자키아 머레이 | 옮긴이_이석연 | 펴낸곳_한문화
출간일_2015년 5월 22일 | 정가_12,000원 | 204쪽|128×203mm
속도와 경쟁에 짓눌리며 팍팍한 도시의 일상을 이어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휴식과 재충전이다. 일을 놓은 채 잠시 한 호흡 쉬어가면서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시간 말이다.
그래서인지 ‘힐링’과 ‘명상’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명상’이라고 하면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명상체험은 그런 정적인 수행에 한정되지만은 않는다.
일이든 취미생활이든 아주 단순한 움직임에서부터 격렬한 활동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잊은 채 완전히 몰입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활동 후에는 몸은 피로할지언정 정신은 엄청난 이완과 해방을 경험하는데, 이것 또한 명상체험이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정적인 명상에 비하면 초심자들이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이런 동적인 명상인데, 걷기명상이나 춤명상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마음을 가꾸는 정원》은 정원 가꾸기를 명상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저자 자키아 로렌 머레이는 조경사이자, 틱낫한 스님이 창설한 상즉종相卽宗(Order of Interbeing)에 소속되어 오랫동안 선과 명상을 수행했으며,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신학 전공자이기도 하다. 저자의 이런 이력 아래, 고된 노동일 수도 있는 정원 일이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고 가꾸는 명상 수행으로 거듭났다. 그녀 자신이 직업인으로서 일상적으로 해온 정원 일을 명상과 선 수행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경험을 이 책에서 정갈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낸다. 마치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 같다.
눈부신 문명의 발달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지구 끝까지 소식을 전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과는 소통하지 못하며, 자신의 깊은 내면에는 가닿지 못한다. 얼어붙은 땅처럼 차가운 기술의 발전과 바쁜 일상의 감옥에 갇혀 지낼 뿐이다. 하지만 마음을 살피면서 느리지만 의식적으로 정원 일을 하다 보면 책상 밑에 뱀처럼 뒤엉킨 전선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든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던 어린 아이의 감각을 되찾아 우리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잡초를 뽑고, 흙을 준비하고, 심고, 물주고, 가지치고, 수확하며 정원을 가꾸는 것은 야생과 문명 사이에 자신을 두는 일이다. 정원을 가꿀 때는 자연의 아주 작은 부분에도 모든 감각이 살아나고, 지금 이 순간에 뿌리내리게 된다. 마음을 살피면서 정원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쓰는 삽과 나의 걸음이나 손길과 함께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외부로만 향해 있던 마음은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가닿고, 이리저리 얽힌 생각들도 스르르 풀려 가지런해진다.
이렇듯 정원 일을 하면서 자연을 섬세하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면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더 확고히 머물게 되고, 우리의 내면은 더 크게 열리고 더 깊이 확장된다. 정원 일을 선 수행과 결합시키면서 저자는 정원 가꾸기를 통해 현재의 순간을 사는 울림 깊은 경험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움직임의 속도를 늦추고, 정원의 생명 혹은 생명이 겪는 결핍에 대한 관찰과 나의 호흡을 조화시킨다. 그러다 보면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숨 쉴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이런 여유를 통해 나의 마음이 자존심의 속박에서 풀려나고 자유로워진다. 그리고 상황 자체보다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더 중요하고, 그것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반응할지나 무엇에 관심을 기울일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주어진 상황을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112~113쪽,‘씨앗이 자라지 않을 때’중에서-나의 몸도 꽃과 마찬가지로 늙어서 죽고 버려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몸은 노화해서 약해지기 마련이고, 마지막에는 죽음을 피할 도리가 없다. 죽음은 삶의 일부이다. 꽃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상하다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결코 동요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꽃의 평온에는 위대한 지혜가 있다. 꽃이 정원에 품위 있게 왔다가 가는 모습을 본받아, 자신뿐 아니라 모든 생명의 무상함을 우아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166~167쪽,‘무상함이 아름답다’중에서-
- 글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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