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1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3-12-20

연재에 들어가며.


한국의 별서는 선비들이 자연을 누리며 철학을 향유했던 정원이다.


도시인들에게 마음의 여유와 정서가 메말라가고 있는 요즘, 별서는 우리의 안식처로서,건강과 지식을 재충전하는 지식의 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인들이 고된 도시생활속에서 휴식하고, 심성을 재충전할 곳은 어디에 있을까?
 
옛 선비들이 자주찾아 시문을 노래하고, 문하생을 기르며, 거칠고 여유없는 마음을 곧게 일으켜 세웠던 자연 속의 소박한 별장, 자연과 철학을 담았던 정원, 한국의 별서를 찾으면 어떨까? 지금부터 이러한 한국의 별서정원을 소개하고 답사기행을 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학문을 논하고, 심신을 고양시켰던 선비들의 수양처. 한국의 별서로 떠나보자. - 이재근(상명대 환경조경학과 교수)
 

이재근 교수의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는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헤리티지채널의 '명사칼럼'을 통해 연재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채널은 국민의 문화유산 애호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고품격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문화유산 전문 채널입니다. 라펜트 조경뉴스는 이재근 교수의 조경명사특강을 헤리티지채널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씩 게재할 예정입니다.  [헤리티지 채널 바로가기]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別墅)

 

별서(別墅)는 조선선비들이 거처하는 본래의 집과 멀지않은곳에 조성한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전통정원이다.


요즘같이 정서가 메마르고, 주변환경도 많이 오염이 된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별서정원은 달콤한 휴식과 함께, 깊은 역사속으로의 지식을 충분히 제공할 대상이다.


지금부터 선비들이 머물고, 거닐었던 승경지 별서정원을 향해 여행을 떠나보자!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종합조경공사의 직장생활 8년차되던 1986, 내무부가 국토공원화운동의 일환으로 주관한 "한국의 명원백선"이라는 책자를 만드는 일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마침 86아시안게임이 있었고, 1988년에는 세계올림픽이 개최됨으로, 명분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과 우리국민들에게 한국의 자연과 정원을 알리어 한국의 자연유산을 제대로 홍보하자는 것이었다. 그때 참으로 많은 한국의 정원들을 다니면서 현지조사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려대 윤국병 교수님이 자문위원으로 책임을 맡으셨고,나는 당시기술부의 차장으로서 실무적인 일을 챙겼다. 윤교수님 덕택에 회사에서는 황송하게도 차를 내주고, 사진작가까지 붙여주어 불편하지 않게 호강해가면서 다녔다.


1986 3월부터 시작한 용역은 1987 8월까지 300여개소의 한국전통정원과 100여개소의 현대정원을 같이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윤교수님은 한국의 이름있는 명원 100개소를 선정하기위해서는 적어도 4배수의 정원은 보아야 한다고 얘기하셨다.


책자가 나오고 88올림픽은 성공리에 개최되었으며, 400개소의 정원중에서 나는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자원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조선시대 별서정원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쓰게된 경위이다.


당시 한국명원100선 조사에서 전통정원 부분은 사대부 주택정원, 별당정원, 별서정원, 서원,향교, 사찰 등이 두루 조사가 되었지만 그 중에서 난 선비들이 머물고, 거닐던 정자를 중심으로 한 별서정원에 특별히 흥미를 갖게되었다.


별서(別墅)란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많은 선비들을 별서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것일까?


우선 독자들에게 이해를 돋구기 위해, 별서의 개념 및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별서대상지들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음미해보기로 하자!

 




1. 별서의 개념

 

별서란 별장형(別莊型)과 별업형(別業型)을 포함하는 저택에서 떨어진 인접한 경승지나 전원지에 은둔과 은일, 또는 순수히 자연과의 관계를 즐기기 위해 조성하여 놓은 제2의 주택개념 이다. 현대개념으로 보면 집과 떨어져 조성해놓은 소박한 콘도 개념의 별장주택(Second House)정도로 보면 된다.


이중 별장형의 별서란 서울 및 경기의 세도가가 조성해 놓은 것으로서 대개 살림채, 안채, 창고 등의 기본적인 살림의 규모를 갖춘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은일, 은둔형 지방의 별서는 살림집의 규모는 갖추지 않았지만, 본제(本第: 안채가 있는 살림집)가 가까이 있어서 주부식의 공급도 가능하고 자체적으로 간단한 취사행위나 기거정도를 할 수 있는 형태의 거처지를 말한다. 영호남지역과 충청지방에 조성해 놓은 대부분의 별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별업형별서는 조부모, 부모님이 돌아가고 난후, 묘소근처에 살림집과 정자원림을 갖추어 조상님을 모시고자 하는 효문화(孝文化)중심의 생활형 별서를 말한다. 현재 남아있는 별업형별서는 많지않지만, 대전시 권이진의 유회당(有懷堂), 강진 윤서유의 조석루(朝夕樓)정원, 남원 박치기의 매천별업(梅川別業), 함안 조삼의 무진정(無盡亭)정원, 남양주시 이덕형의 대아당(大雅堂), 신익성의 동회별서(東淮別墅)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별서가 갖추어야 할 기준은 정침(正寢)인 본제(本第)가 있어야 하고 거리는 정침으로부터 근거리에(대개 0.2~2km 정도) 위치한 곳으로서 도보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별서에서의 건물은 누()와 정()으로 대표되며 건물 내부에 방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있고, 대부분 담장과 문이 없어 사방의 주변경관을 조망할 수 있게 개방된 상태로 꾸며져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산수경(山水景)을 감상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인 경관도입의 구현을 위해서 연못을 파거나 폭포, 석가산을 조성하고 점경물과 수림을 배치하는 예가 많았다. 다시 말해 "별서란 주택에서 떨어져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을 두루 섭렵하면서 승경과 우주의 삼라만상을 포근히 느낄 수 있는 별장, 또는 은일개념의 원유공간(園遊公間)"이라 할 수 있다.

 





 








2. 별서의 기원

별서의 기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나라에서 별서의 시작은 삼국시대 임천정원(林泉庭園)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있다.


임천정원이 발달된 원인은 자연을 존중하면서 토지에 집착하여 살아온 삼국시대 농경문화와 속세에서 떠나보자는 자연귀의(自然歸依) 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난세적 풍토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는 신선사상(神仙思想)의 영향이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임천정원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밭농사 위주의 원시농경시대 이후, 논농사가 시작된 청동기시대(BC 5세기)에 접어들면서 종전의 강변 움막생활에서 강을 낀 남향 경사지에 움막을 짓게 되었고, 온돌이 도입된 BC 1세기경부터 주거지에 소규모의 마당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철기시대(AD 1~2세기)에 이르러 여러 가지 가구류가 등장되면서 원(), ()가 발생되고 생활의 여유가 생기고 주택양식이 발전되면서 점차 임천정원이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별서에 대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서 "고조선 시대에 선인들이 겨울철에 동굴 속에서 지내고 여름철에는 나무 위에서 지냈다"는 내용에서 주거양식의 별서개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최치원(崔致遠 857~?)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난세에 실의하여 벼슬을 버리고 경주와 영주 등지의 산림 속에 대사(臺舍)를 짓고 풍월을 읊었으며 마산과 해인사 주변에 별서를 조영하였다고 한 것이 최초의 기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치원은 유교불교,도교에 이르기까지 깊은 이해를 지녔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다. 신라에서는 일부 상류층에 별서주택의 개념인 사절유택(四節遊宅)이 있었다. 신라헌강왕(875-886)때에 귀족들의 계절에 따른 저택의 별칭으로서, 이들은 봄철에는 동야택(東野宅), 여름철에 곡양택(谷良宅),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구지택(仇知宅), 겨울철에는 가이택(加伊宅)이라 불리는 곳에서 지냈다. 사절유택이란 철에 따라 거처하는 별장형의 주택을 말하며, 특별히 여름철에 지내는 곡양택의 장소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가에 정자를 중심으로 한 원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귀족들의 별서주택들은 신라말기에 일반 상류층이 별서건물과 함께 정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조경사(造景史)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고려시대 곡수지(曲水池)정원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기홍수(奇洪壽 1148~1209)는 명종 이후의 무관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서예에 능했고 벼슬에서 은퇴한 후 집에 정원을 꾸미고 갖가지 애완동물을 기르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가 꾸민 정원은 천혜적으로 아름다운 곳에 위치하여 암산(岩山)과 숲 사이로 샘이 솟고 인공으로 만든 곡수지가에 능수버들과 창포를, 못 안에는 연을 심었으며 자연경관을 관망하기 좋은 곳에는 정자를 세웠다. 특히 그의 정원생활 중에서 물에 술잔을 띄우며 피서와 향락을 즐겼다는 곡수연(曲水宴)이 나오는데, 이는 평소에 서예와 음악은 물론 정원을 즐기던 선비로서의 여유스러움이 물씬 넘치는 대목이다.


해암정(海巖亭)은 현존하는 정자 중 가장 오래된 정원건축물의 하나로 고려 공민왕 10(1361) 진주군 심동로(沈東老)가 이곳에 살면서 동해 바닷가에 건축한 별서형식의 정자로서 조선시대 중종 25(1530)에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이 중건하였다.

 

이 정자는 남향으로 앞쪽은 터보이나 뒤쪽과 좌우는 뾰족한 돌이나 태호석 같은 구멍 뚫린 바위로 둘러싸여 늘 시원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고 바다낚시하기에도 좋은 해정(海亭)으로 별서정원의 중심건축물이라 할 수 있으며 뒤편으로 가면 촛대바위 등의 기암절벽이 있어 경승지의 성격을 띄고 있다.


조선시대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하던 초기사림파들은 성종대에 이르러 중앙정치에 진입하였다가 연산군이 등장하면서 무오사화(戊午士禍), 갑자사화(甲子士禍) 등의 사건 등을 통해 쇠약해졌다. 하지만, 중종이후 다시 정계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고, 기존의 훈구세력(勳久勢力)들과 세력다툼하면서 동인, 서인의 붕당정치(朋黨政治)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별서는 사화와 붕당정치, 학문적 경쟁과 더불어 지방에 내려와 자연과 벗하며 살려고 하는 선비들의 자연관(自然觀)등에 힘입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별서의 형성배경은 역시사화와 당쟁의 심화로 초세적 은일과 도피적 은둔의 풍조가 생겼던 것이 직접적인 배경이고, 유교와 도교의 발달로 인한 학문의 발전, 선비들의 풍류적 자연관이 간접적 배경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지형이 다양하고 공간의 위계가 층차적(層次的)으로 형성되는 경승지가 많았기 때문에, 제택에서 적절한 거리에 떨어져 조성한 별서 등이 많이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별서 외부공간의 구조적 특징은 담장 안을 내원(內園), 담장 밖의 가시권에 속하는 외원(外園), 정원공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향권원(影響圈園) 3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으며, 별서정원의 감상대상은 단순히 담장 안의 내부공간을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고 외부의 경관까지를 대상으로 하였다고 볼수 있다.

 













그 이유는 앞산의 봉우리, 앞에 전개되는 시냇물과 들판의 풍경, 서산에 지는 달 등이 시문이나 행장기록에 자주 표현되고 있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별서정원 외부공간의 구조적 특징은 적어도 외원(外園)을 포함한 주변경관 영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양반위주의 정치체제, 토지소유로 인한 튼튼한 양반층의 경제구조, 당쟁과 학문적 싸움에 따른 사대부들의 현실도피적(現實逃避的) 은일관(隱逸觀), 도교, 유교적인 선비들의 자연관, 험준하고 다양한 형태의 지형으로 산수가 좋고 경승지가 많아 은둔하기가 용이했으며 기후적으로 온난하고 식생이 자라는데 유리한 점 등 지리적 여건이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를 논할 수 있는 장소로서의 독특한 별서문화(別墅文化)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통조경학회.2011.동양조경문화사.별서조경(이재근). 대가) 







 

이재근 교수(상명대 환경조경학과) 

1952년 경기도 화성 출생, 서울시립대 및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2005~2006년 미국럿거스대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1997~2000 문화재조경기술자회 회장, 2006~2008년 한국전통조경학회 회장, 2010~2011년 상명대부총장을 지냈고, 2003~2011년 문화재 전문위원, 2011~2013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9년 1월부터 1996년 8월까지 한국종합조경 차장, 한림환경엔지니어링 대표이사 등 현업에서 조경실무를 하다가 1996년 9월부터 현재까지 상명대 환경조경학과 교수로 있다. 주요논문으로는 '조선시대 별서정원에 관한 연구(1992), 조선시대 정자 원림의 지역적특성에 관한 연구(1992), 우리나라 명승지정의 현황 및 개선방향; 한, 중, 일 북한과의 비교(2006), 별서명승의 개념에 대한 의미론적 해석(2010)' 등이 있고, 저서로 '서양조경사(2005), 동양조경문화사(2009), 키워드로 만나는 조경(2011)' 등이 있다.  

 

글·사진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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