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동시설의 재인식

[오피니언]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라펜트l오정학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9-04


아파트 공동시설의 재인식


오정학 라펜트 논설주간


전통사회에서 초등학교의 상징성은 컸다. 행정적으로야 면사무소나 경찰지서의 비중이 더 컸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교는 학생 교육 외에도 공동체에 중요한 존재였다. 가을 운동회는 주민들이 함께 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추수 뒤 넉넉해진 마음으로 종일 어울리다 보면 이웃관계는 한결 돈독해 진다. 마을 제당, 정자목 등과 함께 공동체를 지키는 의례의 장소였다. 그동안 인구 감소로 시골학교를 많이 줄였지만, 이런 이유로 주민들 반대가 만만찮았다. 분교일망정 학교에 대한 애착은 바로 마을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이 때문에 몇 명의 학생을 위해 학교가 유지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골학교에 포드주의란 돋보기를 들이대고 효율성을 따져보자. 비용⋅편익을 따지면 당연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일의 모든 기준이 ‘효율성’일 수 있겠는가? 극단의 효율성은 인간을 배제시키는 ‘인간소외’의 위험이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효율성’인가?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규제완화정책’도 마찬가지이다. ‘경제적 효율성’에 올인 하느라 다른 것들을 모두 져버려도 되는 것일까? 최근에만도 세월호 침몰,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아산 신축 오피스텔 붕괴 사고가 규제완화 뒤에 벌어졌다. ‘안전’이나 ‘미래가치’와 연결된 것은 ‘효율성’의 이름으로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함을 알 수 있다. 선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행정적 실적주의가 곳곳에서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


초등학교만큼은 아니지만 어린이 놀이터도 마찬가지이다. 혹평하자면 그동안의 한국 아파트는 말이 공동주택이지 개별주거공간의 단순 집적체가 많았다. 전통적인 이웃관계는 애초 기대하기 힘들었고, 오히려 애완동물이나 흡연, 층간 소음 문제로 다툼이 지금도 적지 않다. 이런 다툼은 배려와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그 배경에는 물리적인 시설 위주의 주택공급정책이 있었고, 소통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에 소홀하여 옅어진 공동체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에도 어린이 놀이터나 경로당, 주민도서관 등은 서로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놀이터는 어린이와 보호자가 함께 올 때가 많다. 같은 벤치에 앉아 애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말을 나누기 마련이다. ‘어린이’라는 공동의 관심사 때문일 것이다. 놀이터는 놀이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국토부가 입법 예고한 ‘아파트내 의무공동시설 설치기준 완화’와 ‘조경의무면적 폐지’는 매우 실망스럽다. “기업투자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나 경제적 부담요소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는 게 그 이유이다. 바로, ‘규제완화’의 대상으로 동네 놀이터가 지목된 것이다. ‘소비자 선택권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는 잘 알겠다. 어린이가 없는 가정도 많을 테니 말이다. 그럼 어린이가 있는 가정의 선택권은 어찌 되나? 입주민 2/3 이상의 동의로 공동시설 용도를 바꾸거나, 시장에 맡겨 자율적으로 운영되게 하겠다는 발상은 얼핏 매우 합리적이다. 뉴욕이나 파리는 이미 독신가구가 절반에 달했다. 우리도 비슷하게 변하고 있으니, 놀이터의 효용성은 더 낮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효율성만 따지고 미래 가치를 소홀히 할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얼마 전에 제시되었다. 2134년 대한민국 총인구 천만 명. 2256년에 백만 명, 2379년에는 십만 명으로 예측되었다. 이 정도면 거의 멸종 직전이다.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자체 개발한 ‘입법⋅정책 수요예측모형(NARS21)’으로 뽑아낸 결과이다. 1.187명이라는 세계 꼴찌 수준의 출산율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현 출산율이 계속되고, 국내외 인구이동이 없을 때 700년 뒤 이 땅에는 단 한명도 없게 된다. 물론 선진사회가 될수록 인구유입이 많아지므로, 우리 사회의 발전 정도에 따라 변화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그 변화의 한 싹을 국토교통부가 지금 비틀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출산율 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 실제로 인구가 줄어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있다하여 안심할 수 없다. 그 부작용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지금 곧 뉴스 검색창에 ‘내수 부진’을 쳐 보자. 승용차, 제조업, 중소기업, 서비스업 등의 내수부진 뉴스를 줄줄이 볼 수 있다. 일본에 있던 ‘잊어버린 20년’의 망령이 어느 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출산율 저하는 일본 장기불황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외식을 하거나 놀이활동을 하더라도 어린이가 있을 때 씀씀이가 더 커지게 된다. 의식주와 교육, 여가, 문화활동 등 모든 면에서 어린이는 수요를 촉진한다. 조경의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이들의 교육⋅신체⋅정서활동에 주목적을 둔 가족 단위 이용객들의 비중이 크다.


다행히 정부는 늦게나마 출산장려책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그 결과 보육비도 얼마간 지원하고, 수백만 원의 출산 축하금을 주는 지자체도 생겨났다. 육아휴직 등 제도개선도 꽤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적이지 않다. 여전히 한국은 국제적으로 인구소멸 첫 번째 국가로 손꼽히고 있다. 대개의 정책들이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몇 푼의 보육비와 출산 축하금을 바라고 얼마나 애를 낳을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육아와 교육 지원이 아쉽다. 태어나서 어른이 되기까지 보다 많은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개인과 가족에게 책임지우고, 시장에 맡겨서는 벗어나기 힘든 수렁이다. 이제 모든 정책은 출산율과의 관계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출산율을 올리지 못하면 한국 사회의 미래도 사라진다.


그나마 어린이가 있는 가정을 힘들게 하지 말자. 이사할 때마다 놀이터와 작은도서관이 있는 아파트를 힘들게 찾아 다녀서야 재출산의 욕구가 생길까? 어린이와 부모가 놀이터에서 즐겁게 쉬는 모습은, 어떠한 출산 홍보보다도 낫다. 좋은 육아시설이 보여야 출산의 욕구도 생기지 않겠는가. 어린이 관련 시설을 ‘시장에 맡겨 자율적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논리는 자칫 재앙을 부를 수 있다. 자본은 이미 어린이가 없는 1인 가구를 주시한다.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소비는 2인 가구의 1인당 소비보다 8% 더 많은 것으로 모 기업체 연구소에서 분석했다. ‘기업과 국가 차원에서 1인 가구 소비에 대처할 때다’는 시사점도 같이 내놨다. 이런 판국에 어찌 시장에 맡길 수 있으랴.


아파트의 어린이⋅노인시설은 낭비요소로 볼 수 없다. 주거단지의 지속가능성은 사람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분양의 편리성이나 경제적 효율성보다 중요한 건 어린에서 노인까지 보다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활발한 마을공동체의 시작점도 육아공동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용률이 떨어진다고 용도를 쉽게 바꾸어 버리면, 미래의 이용자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필요성 자체를 재론하기 이전에, 왜 이용률이 떨어지는 지를 고민해 보고, 현 시대에 맞는 개선책을 찾아보는 게 우선일 것 같다. 그 만큼 출산ㆍ양육은 이제 개인이나 가족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책임져야 할 과제가 되어 버렸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그 의미를 곱씹어 보자.

연재필자 _ 오정학 논설주간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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