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회현자락, 정비방향은 ‘보존’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의 유산가치’ 학술회의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4-09-12


지난 14일 서울시는 발굴조사를 완료한 남산 회현자락의 현장을 공개했다.

시는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의 유산가치를 조명하고 보존방안을 위해 ‘남산 회현자락 한양도성의 유산가치’ 학술회의를 9월 12일(금) 오전 10시부터 서울특별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김왕직 명지대 교수, 안동만 서울대 교수

안동만 서울대학교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남산 회현자락 정비는 “중요역사 구조물과 장소는 남겨두어 교육, 교훈의 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근현대사 중 부끄럽거나 슬픈 역사는 너무 인멸해 교육 자료로 활용할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역사경관 보전의 유형 6가지를 제시하고 회현자락의 정비 논점을 아래와 같이 제안했다.

-보존 대상 선정: 성벽, 신궁 터와 부대시설(옹벽 일부, 기단석 일부), 분수대, 기타
-보전 대상 선정: 안중근 의사 기념비 마당, 도로, 주차장
-복원 대상 선정: 성벽 멸실 구간1, 2, 성벽 주변 지형
-개수 대상 선정: 분수대
-모사 대상 선정: 성벽 멸실 구간1, 2, 성벽 주변 지형
-이전 대상 선정: 안중근 의사 기념비 중 일부

‘보존’은 현재 상태를 엄격히 유지하는 것을 말하며 ‘보전’은 현재 상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 ‘복원’은 역사적 원형 회복으로 파괴된 부분을 복구하고 첨가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개수’는 역사적 시설물을 현대시설기준에 맞게 고치되 중요한 역사적 특성은 유지하는 것이고, ‘모사’는 없어진 것을 주변 역사시설물과 유사하게 재현하는 것이며, ‘이전’은 위치 여건상 부득이한 경우 다른 곳에 옮겨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아울러 안 교수는 역사경관의 시민의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에 ‘해설’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왕직 명지대학교 교수는 회현자락의 정비방법으로 ‘현상보존’을 제시했다. 현상보존은 현대의 보존방법으로 진정성, 가역성 등 유산가치의 원형보존에 효과적이지만 유지관리가 어렵고 다소 유적망실의 위험성도 있다.

김 교수는 “성곽은 ‘현상보존’을 원칙으로 하되 대형 노출유적이기 때문에 풍화에 취약하다. 그 점을 감안해 부분적으로 다른 정비방법을 조합해야할 것”이라며 풍화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최형수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 김대호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남산 회현자락 발굴조사는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남산르네상스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총 4차에 걸쳐 진행 중이다. 그중 회현자락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1월까지 발굴조사를 진행하며 발굴 총 면적은 20,700㎡이다.

최형수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연구과장은 회현자락 발굴의 가장 중요한 의의로 먼저 한양도성 성곽(아동광장―백범광장―중앙광장―탐방로구간 사이)의 발견을 꼽았다. 한양도성 성곽은 조선신궁 건립 등으로 멸실됐다고 추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굴된 한양도성 체성벽은 그 축조양식에서 미루어보아, 조선 태조―세종―숙종이후의 각 시기별 대표적 특징들을 간직하고 있다.

아울러 한양도성 훼철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조선신궁의 배전터의 발견을 들었다. 문헌으로만 남아있던 조선신궁의 실체를 비로소 확인한 것이다. 배전(湃殿)은 참배객들이 절을 하는 곳이다.

김대호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에 의하면 조선신궁은 신사의 최정점으로, 일본의 국체를 한국인에게 주입해 일왕에 충성하는 신민으로 만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종교적 공간이다. 

조선신궁은 눈에 잘 띄는 남산 회현자락 한양공원에 입지했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잘 보이기 위한 것으로, 신사의 일반적인 입지적 특성과 상이한 사례이다.

또한 조선신궁에서는 일본의 신이 강림하는 ‘진좌제’가 성대하게 열렸으며 진좌제를 위해 경성역과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이 개장하기도 했다. 조선신궁은 광복이후 한국인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8월 25일까지 일본인의 손에 정리됐다.


최기수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 배우성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조선신궁과 경성신사가 들어섰던 한양공원과 왜성대공원은 ‘공원은 공공의 시설’이라는 명목 하에 건립됐지만 사실은 일본의 토지이권 획득이 목적이었다. 땅 넓히기에 ‘공원’이 이용된 것이다.

최기수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한양공원과 왜성대공원을 포함해 남산 전체를 삼림공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임학박사 혼다 세로쿠는 ‘경성부남산공원설계안(1917)’에 당시 세계적인 조경계의 흐름인 삼림공원의 필요성과 남산공원이 서울의 중심공원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원시설로는 광장(구 한양공원), 과수원, 화훼원, 가축원, 대전망대, 사슴원, 천연식물원, 장충단 등이 도입됐으며 각 시설에 대해 ‘순 조선취향’, ‘자생수종도입’을 통해 지역성을 고려한 설계를 방침으로 조성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남산은 자연보호대상이었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에 조선 초기부터 남산의 소나무보호와 재배에 큰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지방 금산의 소나무는 실용적 이용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남산의 소나무는 경관관리적 측면이 강했다는 것이다. 남산은 소나무의 벌목금지, 채석금지, 장사금지, 민가조성 금지 등 개발행위도 금지했다.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명당 앞에 있는 산으로 경치가 수려해 ‘남산팔영’의 팔경(八景)으로 설정됐다. 남산의 경(景)은 한양 도시민의 삶과 생활이 녹아있다. 또한 시문과 회화로 남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기도 했다.

배우성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도 영조대 도성수비의 문제를 ‘인화’와 ‘위민’으로 보았으며, 특히 도성 안 백성에 주목해 수성에 힘썼다고 말했다. 특히 수성을 위해 청계천 바닥을 긁고 벌목을 금지하며 수성―금송―준천으로 이어지는 도시관리 정책을 추진했다.

남산팔영
-운횡북궐(雲橫北闕): 북쪽 산기슭의 구름 속에 펼쳐있는 궁궐의 전경
-수창남강(水漲南江): 장마철에 한강에 넘쳐흐르는 물길과 강변풍경
-암저유화(岩底幽花): 늦은 봄까지 층암계곡 바위 밑에 피어있는 그윽한 꽃 감상
-영상장송(嶺上長松): 산마루에 우거진 낙락장송의 풍치
-삼춘답청(삼春踏靑): 3월에 남쪽 기슭 곳곳에서 푸는 풀 밟는 정경
-구일등고(九日登高): 9월 9일 중양절에 높은 언덕을 찾아 벗과 함께 나누는 주흥과 시흥
-척헌관등(陟巘觀燈): 사월초파일 연등행사를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
-연계탁영(沿溪濯纓): 계곡사이 맑은 물에 갓끈을 빨아 말리는 선비들의 운치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회현자락 안내문이나 브로슈어에 역사지식을 넘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문화예술적 접근이 필요, △국제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한양도성 특장 정리소개, △분수대는 성벽과 중복되는 위치에 있는 시설물은 철거, 나머지 부분은 현대적 시설로 개조하는 방향으로의 정비 등을 제안했다.






남산 회현자락 조감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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