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황폐화 장려하는 규제완화,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공원·녹지, 규제아닌 투자지난 7일과 11일에 걸쳐 입법예고된 3건의 법률개정안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의견이 총 639건에 이르렀다(국회입법예고시스템 기준). 도시공원과 녹지, 그리고 조경에 대한 정부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
△ 206건_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김태원의원 대표발의, 이하 도시공원법)
△ 171건_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정희수의원 대표발의, 이하 국계법)
△ 162건_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박기춘의원 대표발의, 이하 산개법)
이 세 건의 법률이 담고 있는 대상은 상이하지만, 개발사업의 편의 등의 이유로 ‘도시공원과 녹지’를 규제완화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을 지폈다. 이들 법률의 개정에 반대하는 의견 대부분이 규제 대상에 도시공원과 녹지를 포함시키는 것에 강하게 성토했다. 눈앞의 이익에 현혹돼 대한민국 국토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까지 황폐화 시키지 말라는 주장이다.
먼저 도시공원과 녹지를 ‘공원녹지’로 일원화 시키자는 도시공원법(김태원의원 대표발의)은 도시공원의 면적기준을 갉아내는 ‘개악’이라는 것이 국민 의견이다. 만약 이법이 통과되면, 유원지, 공공공지까지 도시공원 확보 의무면적으로 대체되는 사태로 벌어지게 된다. 도시공원과 녹지는 이미 각각의 명확한 개념과 대상이 정리되어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공원녹지’로 등치시키는 우를 범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전국의 1인당 공원면적은 8.1㎡(2012년 기준)이지만, 2020년 공원일몰제로 고시된 면적이 사라지면(전체 공원면적의 60%), 1인당 공원면적은 3.3㎡ 수준으로 급감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우리나라 도시공원 의무면적은 기준으로서 가치를 잃게 된다. 기존 도시공원 의무면적에 녹지를 끌어오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질적 녹색면적 확충없이 기준만 채우고 보자는 조삼모사식 정책에 국민들도 강력한 반대의사를 드러냈다. 한 국민은 “누구를 위한 법안이던가”라며, 과연 도시공원과 녹지면적을 줄이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의견을 남겼다.
국계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실시계획에서 설계도서가 변경되는데, 서류제출을 생략하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의견이다. 생략되는 서류의 구체적 명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계획 내용과 설계 물량이 바뀌었는데, 이를 확인하지 않고 인가하면 실시계획 인가내용과 결과가 차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첨부되는 설계도면에는 경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경설계도서도 포함돼 있는데, 이것마저 생략한다면, 국토의 외부경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대형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는 현재, 반드시 필요한 절차와 과정까지 ‘규제’로 묶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 승인시 보기좋게 부풀렸다가 사업시행 전에 입맛대로 바뀌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반면 인허가시 절차 간소화는 필요하다며, 변경되지 않는 도서만 생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산개법 개정안은 노후된 산업단지에 근무하는 125만 종사자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하는 개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산업단지 고령화’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산업단지 전체면적의 절반 이상이 20년 넘은 노후된 산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번 법개정안은 노후된 산단을 재생하는 사업지구 중 개량 또는 환지방식으로 시행하는 곳에는 녹지율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뿐만아니라 재생사업 활성화구역에서는 도시공원과 녹지의 확보에 대한 규정을 지키지 않도록 명시했다. 이 역시 개발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책이다.
지난 11일에는 산업단지에서 도시공원법을 무력화시키는 ‘노후거점산업단지 구조고도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입법예고되기도 했다. 열악한 인프라와 단지 내 혁신생태계 발전 미흡, 입주기업 경쟁력 부족 및 근로자 정주여건 악화 등을 이유로 도시공원법이 아닌 조례로 도시공원내 공원시설 부지면적, 녹지 점용기준 등을 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나 녹지와 도로 등 기반시설이 배재된 산업단지는 그 속에서 정주하는 근로자의 삶의질에 저해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 재생사업의 효과까지 장담할 수 없다. 생산시설에 편중된 재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서울디지털단지와 성남테크노밸리의 기업과 인력이 판교테크노밸리로 유출되는 현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도시행정학보 제24집 제3호)에서 ‘공원, 교통, 상수도 등’ 인프라의 미비가 불만요소로 자리하고 있었다. 생활을 배제한 생산기능만 강조했다는 것이다.
실제 산업단지 재생의 대표 사례인 스페인 포블레노우와 영국 트래포드의 경우, 산업단지를 포함한 ‘도시 전체의 기능회복’으로 노후산단 문제를 접근했다. 물리적인 공간정비를 넘어서 중장기 지역산업발전 비전으로 재생 전략의 프레임을 확장시킨 것이다. 그 속에는 신규녹지의 적극적인 확대도 포함돼 있었다.
사실 이번 논의 이전에도 정부는 그동안 건축물이나 공장신축을 장려하기 위한 조경면적 축소를 인센티브 수단으로 삼아 왔으며, 점증적으로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는 ‘도시공원’과 ‘녹지’에 대한 정부인식이 ‘삶의질 향상’, ‘미래세대 투자’보다는 ‘규제’로 규정한 시작점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와 달리, 정부 주도로 30여년간 일관성있는 녹색정책을 펼쳐온 싱가포르는 인구증가에도 불구하고 공원과 오픈스페이스가 증가해왔다. 싱가포르 도시재개발청에서 도시의 장기비전인 기본구상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있다. 건물을 새로지을 때도 조경계획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건폐율 규제, 도로 및 건물간 건축선 후퇴, 조경을 통한 완충구역 마련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주, 개발업자 편의에 맞게 건폐율과 조경면적을 완화시키는 우리의 흐름과는 정반대다.
녹시율 높은 싱가포르(ⓒ김승태)
무엇보다 싱가포르는 지역개발이나 건물 신축시, 공원이나 녹지를 먼저 조성한다는 점이 우리와 크게 다르다. 개발에 따른 눈앞의 효과보다는 삶의 질과 자연환경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가든시티’라는 슬로건은 오늘의 싱가포르를 선진국으로 이끈 중요 키워드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원과 녹지를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설정한 리콴유 총리의 정책적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제 우리 정부도 도시공원과 녹지를 복지와 투자의 개념으로 정책적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조경면적, 조경기준도 마찬가지이다. 규제가 아닌 올바른 규정을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 글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
다른기사 보기
ch_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