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조경계를 개탄한다

심우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상상환경학회 회장
라펜트l심우경 명예교수l기사입력2016-02-01

한국 조경계를 개탄한다



_심우경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상상환경학회 회장


1월7일 (재) 환경조경발전재단 신년하례식에 초청받지 못한 신세였지만 정주현 이사장에게 연락하여 긴히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니 짧은 시간이라도 내 줄 수 있냐 요청해 ‘지구환경보전의 국제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자료를 준비해 발표한 적이 있다. 학계에서 만40년을 봉직하다 무사히 정년퇴직한 사람으로서 조경계가 무척이나 힘들다는 소식을 들으며 방관만 할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내에 발표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강조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발표 내용에 관해 문의한 사람들이 있다 해서 해명 겸 강조하지 못한 점을 몇 자 적고자 한다.


서구에서는 지구환경보전을 과학적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60년대에 기정사실로 인정했다. 1967년 미국의 저명한 White 교수가 Science에 기고한 바에 의하면 지구환경 문제점을 일으킨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자연관)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며, 작금 한국의 환경정책같이 과학적, 생태학적 접근은 공염불이라는 것이다. 뒤이은 많은 학자들도 White 교수에 동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인간의 정신이 바뀌어야 되는데 인간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종교(신앙)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며, 서구의 정신적 지주인 유일신 신앙의 자연정복 사상이 문제이니 동양 자연숭배의 범신론적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인도 일찍 이런 관점에 동의하고 대학원 강의를 해 오다 작년 10월 4일 세계상상환경학회(Research Institute for Spiritual Environments; R.I.S.E.)를 창립했다. 같은 방향의 환경단체로 영국 필립공이 1995년 창립한 ‘종교와 지구환경보전연맹(Alliance of Religions and Conservation; ARC)’ 초청으로 작년 11월 17~18일 런던 람베스 궁에서 개최된 ‘지구환경보전에서 신앙의 역할’ 워크숍에 다녀왔다. ARC는 UN산하 NGO 중 가장 주도적으로 지구환경문제를 신앙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으며, ARC가 주동이 되어 세계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종교인구 가운데 12개 종교와 80개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지구의 7%를 신앙을 통한 지구환경보전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바이다.



신년하례회에서 발표하는 심우경 교수


발표 말미에 ‘한국조경계의 문제점과 해결방향’을 언급했는데 첫째, 교수들의 문제, 둘째, 업계의 프로정신 부재 및 R&D 투자 부족, 셋째, 공직자들의 무사안일. 복지부동을 지적했었다. 여기서 가장 힘주어 강조한 사항은 조경학계 교수들의 문제로 대부분 교수들의 전공 불분명, 핵심교양과목인 한국전통조경 등한시, 업계에 도움이 되지 못한 논문작성, 폐쇄적 순혈주의, 창의적 아이디어 제공 부재 등을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을 이번 처음 언급한 것이 아니고 똑같은 주장을 10여 년 전에 학회 공개석상이나 투고를 통해 강조한 바 있다. 듣기 싫은 소리를 혼자만 지껄여 왔다.

 

여기서 본인이 제기한 폐쇄적 순혈주의(純血主義)에 대한 문의가 있다고 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순혈주의라는 용어는 내가 처음 쓴 것이 아니라 라펜트에 모 회사 사장이 쓴 논설에 공감한바 있어 인용한 것이다. 사실 그 사장은 환경부 과제로 부도(浮島, floating island) 개발을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관계로 사업상 라이벌 관계여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본인은 사업체 운영이 안 되어 도중 그만두었고 이 사장은 꾸준히 연구 개발하여 지금은 큰 사업체로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라펜트에 투고한 글을 읽어보니 상당한 철학과 소신이 있는 보기 드문 조경인임을 알게 되었다. 조경학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조경학계나 업계에서 외톨이 신세가 되어 사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서울대, 경상도 순혈주의가 오늘날 한국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을 우리는 신물 나게 체험하고 있다.


우리나라 조경학과가 1973년 서울대와 영남대에 개설된 후 현재 40여 대학교에 조경학과가 운영됨으로써 세계에서 두, 세 번째로 조경학과가 많은 나라로써 양적인 성장은 세계적이다. 그러나 실력이 그 만큼 받쳐주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조경학은 학문 성격상 학제 간 연구 또는 교육을 해야 하고 실천을 해야 하기 때문에 폭 넓은 소양과 실무교육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 실정은 학부 조경학과를 졸업해야 정통파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으며, 타 학과 출신들은 여러 면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모 교수는 조경30주년 백서에 한국 조경계를 망가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조경학과를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무자격자로 가르치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은사님이나 선배님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글을 올렸다. 73학번부터 한국 조경계를 제대로 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며, 조경학과 1기로 출신으로 첫 조경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본인도 비조경학과 출신(원예학)으로 조경계에서 40여년 일하면서 이들의 주장대로 한국조경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있나 반성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나 철부지 같은 주장이라 이를 막으려고 조경학회장에 출마했다가 낭패를 당한적도 있다. 조경의 대상은 지구 전체이기 때문에 조경가만이 단독으로 일할 수 없다.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다양한 분야가 참여해야 하고, 조경가는 총괄 또는 지휘자 역할을 하면서 본인도 전문분야가 있어 한 분야는 책임지고 참여해야 한다. 그런데 학부에서 조경학을 공부하고 사회에 나오면 전문성이 부족해 쓸모없는 사람대우 받기가 일쑤이다. 교수들 문제에서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교수들이 실무 경험도 없고, 뚜렷한 전공도 없이 남의 책을 읽고 전달하는 정도(오퍼상)의 교육을 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에서 조경을 가르치면서 한국을 모를 뿐만 아니라 외국 이론과 기술을 여과 없이 전달하고 있어 한국조경은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근세 세계 조경계에 가장 특출한 인물은 사이몬즈(Simonds, J.O., 1913~2005)이며, 그가 저술한 『조경학(Landscape Architecture, McGraw-Hill)』은 세계적으로 넓이 읽히고 있는 조경학 교과서이고 앞으로도 이런 명저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의 책은 다소 철학적이어서 초보자들이 읽기 어렵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경험에서 나온 사실이기에 심금을 울린다. 서양인인 그가 그렇게도 깊은 통찰력을 표현한 것은 동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책에는 미국조경을 신랄하게 비판해 놓고 중국, 일본 조경을 지나칠 정도로 크게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말년에 한국을 잠깐 다녀간 적은 있지만 한국정원문화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게 너무나 아쉽다. DMZ 때문에 다녀갔었는데 초청한 사람이 한국정원문화를 소개할 능력이 없어 그냥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조경가는 장소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고, 공간이나 사물도 아니며, 경험을 설계한다(One designs not places, or spaces, or things, one designs experiences.)”라는 유명한 글을 남겼다. 조경학(landscape architecture)과 경관예술(landscape art)은 분명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미 1961년 1쇄에 강조해 놓았다. 그의 책 첫 페이지 ‘사냥꾼과 들쥐’라는 제목의 서문에는 인간이 들쥐보다 못하다는 미국의 천박한 문화(shallow culture)를 신랄하게 비판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조경계를 끌어가고 있는 미국파 교수들은 미국 쓰레기 문화가 구세주인양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오늘날 한국 조경계가 한국사회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모름지기 ‘옛것을 파악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야 스승(교수)이 될 수 있다(子曰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명언을 이미 2,500여 년 전에 공자께서 강조한바 있다. 우리 것(옛 것)을 모르면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인데도 기사시험에 조경사를 없애자는 뚱딴지같은 주장들을 하고 있으니 조경계의 앞날에 걱정이 앞선다.


근래 한국을 전혀 모르는 서양의 저명한 조경가들이 한국에 진출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한국인들의 정서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조경을 하고 있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일본출신의 세계적 조경가들은 가까운 한국시장을 넘보지 않고 있다. 타국에서 조경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신기루를 찾아 쳐들어간 이민자들이 역사와 문화가 없는 신대륙에 각자가 능력을 발휘하면 되기에 문화(조경)전시장을 만들어도 누구하나 비판하지 않을 뿐이다. 자원과 재력이 넘치기 때문에 만들었다 쉽게 부수어도 비판받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이런 나라를 우리가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벤치마킹하고 있으니 뱁새가 황새걸음 따라하는 꼴이라 가랑이가 찢어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몽골의 칭기즈칸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개쳤던 배경은, 문호를 활짝 열고 외국문물을 과감히 받아들였지만 국가의 영혼은 잃지 않도록 독려한데서 비롯되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 조경계는 지금같이 학부 조경학과 출신이 정통파이니 한국조경은 우리가 독차지하겠다는 순혈주의를 주장하면 희망이 없다. 더구나 오늘날은 국경이 사라진지 오래고 지구촌에서 세계시민으로 살아야하는데 지금처럼 폐쇄적 소인배가 되어서는 더욱 희망이 없다. 내가 몸담았던 조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_ 심우경 명예교수  ·  고려대, 세계사상환경학회
다른기사 보기
lafent@naver.com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