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계동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조경설계업의 권익보호와 사기진작에 힘써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6-11-16
11월 첫째 주, 동심원갤러리에 많은 조경인들이 드나들었다. ‘제1회 조경설계가의 날’과 오랫동안 조경설계분야에서 자리를 지켜온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이하 동심원조경)의 ‘20주년 행사’가 있었던 탓이다.

안계동 대표는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의 회장이자 동심원조경의 대표이다. “조경설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그냥 내 삶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오랜 기간 조경설계업에 몸담아온 잔뼈 굵은 베테랑이다.

선진국으로의 변화의 시점에서 회사 내부적으로는 오너쉽에서 파트너쉽으로의 혁신을, 업계 전체적으로는 사기진작과 권익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런 그에게서 최근 조경설계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과 해결방안, 그리고 조경설계전문가로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계동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대표)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예전부터 설계가들끼리 전체적으로 만나서 친목도 도모하고 설계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일을 하자고 이야기해오다 3년 전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밴드가 나오면서 온라인으로 모임을 결성하게 됐다. 안세헌 ㈜가원조경설계사무소 소장의 주도하에 밴드가 꾸려지고 회장선거도 모바일투표로 진행했다. 1대 회장이었던 안세헌 소장에 이어 2대 회장을 이어받았다.

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는 조경설계 분야에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대표자들이 모여 만든 창의적이며 진취적인 한국 조경의 수준 높은 전문가 집단이다. 협의회에 등록된 경험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 40여 년 동안 정원설계, 도시공원설계, 문화공간설계, 아파트단지설계, 리조트설계, 하천설계, 생태복원설계 등 다양한 분야의 설계를 통해 국민의 행복한 삶과 아름다운 국토환경을 위해 노력해왔다.

총 86개사, 조경기술인력 1,055명이 함께 하는 협의회는 조경설계업의 성장기반 구축을 위해 해외 전시회 및 워크숍 개최, 전문성 강화를 위한 연구 활동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조경설계업의 권익 보호, 조경관련법규 및 제도 시정요구, 협회 회원 간의 친목도모를 위한 문화프로그램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올해에 처음으로 조경설계가들을 위한 ‘조경설계가의 날’을 제정했다.

경기가 어려우니 조경설계분야도 일감이 전보다 많이 줄었다. 그래서 사무소 규모를 줄이기도 하는 등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우리나라 조경설계 끝났다. 설계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퍼져버렸다. 학교에서도 조경설계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주는 선생이 없고, 선배들은 ‘설계가 비전이 없다’며 안 좋은 쪽으로만 이야기 한다. 물론 설계사무실에서도 한동안 신입사원을 뽑지 않았었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교에서 설계로 진로를 결정하는 학생이 급감했다. 심지어 설계과목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변한 학교가 많아졌다.

협의회는 어떻게 학생들에게 설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설계가 스스로도 자긍심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가 ‘조경설계가의 날’이다. 조경설계가들의 모여서 즐기는 날로, 설계가들의 사기 진작과 함께 설계가의 좋은 면을 홍보할 수도 있다.

이날은 일종의 단체 회식이라고 보면 된다. 대신 직원들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들이 준비하고 서빙하고 뒷정리까지 다 하는 것으로 한다. 음악공연도 있고, 행운권 추첨도 한다. 설계사무소 소장들 중 젊은 소장이나 힘든 경험을 많이 한 소장들의 허심탄회한 토크쇼를 기획해서 직원들이 들으면 소장들이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구나, 하고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했다. 모든 설계사무소들은 조경설계가의 날에 단체휴무하기로 정했다. 아직은 첫 회이고, 여건상 오전근무 후 참여하는 사무소도 있었지만 서서히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

학생들에게 설계에 관심을 갖게하기 위해 전국 대학교의 최우수 졸업작품들을 모은 ‘대학 우수졸업작품 합동 전시발표회’도 진행했다. 설계가들이 평가 및 크리틱을 해주고 시상도 했다. 학생 중 설계사무소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인재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스카우트하고, 진로상담도 하면서 설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소장들간의 미팅 및 교류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



제1회 조경설계가의 날

올 4월 열린 정기총회서 ‘설계용역단가 기준’ 작성 등 다양한 사업계획을 세웠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됐는지?

회장으로서 협의회의 친목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두고 있다. 설계가들끼리 교류하면 서로 위안도 되고, 정보도 공유도 이루어진다는 점도 있지만, 특히 우리끼리 경쟁하는 경우가 많기에 공정한 룰을 만들기 위해서도 친목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설계사당 설계비 단가를 모르면 끝없이 저가경쟁을 하게 되어 적정가격이라는 것이 사라지게 된다.

현재 각 설계사마다 나름대로의 견적은 내지만 얼마 받는 것이 제대로 된 보수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협의회는 해외연구 및 국내 여러 회사의 설계단가 기준을 모아서 적정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적어도 연말에는 설계 가이드라인 시안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매년 많은 프로젝트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기록하는 작업이 없었다. 적어도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은 작품집을 만들기로 했고, 이번에 설계가의 날을 기념해서 2016작품집을 출간했다. 약 30개 회사가 참여해 최근 2년간의 대표작 1~2개의 프로젝트를 묶었다.

표준 상세자료집도 작성해 배포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도제식으로 사수가 붙잡고 설계디테일을 가르쳤는데 요새는 디테일에 대한 교육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조경은 설계와 시공이 긴밀하지 못해 설계가 현장에서 적합한지에 대해 판단하기 어렵다. 새로 나온 신자재나 신공법에 대한 소식도 늦다. 이러한 설계 디테일을 표준화 할 필요성을 느껴 협의회 차원에서 자료집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조경설계업이 당면한 어려움과 이를 타개할 방안은?

설계업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공도 어렵다. 과거 호황시절, 국가에서 추진하는 일은 턴키형태로 진행되다보니 3개, 4개사가 경쟁을 하니까 일이 많았다. 그러나 요새는 턴키가 거의 없어지고 프로젝트마다 하나의 설계사만 들어간다. 일도 1/3로 줄었고, 개발사업도 확확 줄고 있다.

호황시절 양산된 수많은 업체들이 있기에 이제는 가격경쟁구도로 가고 있다. 이윤은 적고, 구조조정으로 나간 사람들이 사업체를 차리니 업체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전환기이고 과도기이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으로 접어들면서 일감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이를 ‘불황’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다만 여기에 우리가 적응해나가는 단계가 필요할 뿐이다.

바라는 것은 조경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 남아서 열심히 우리나라 조경을 지켜주고 그 몫을 해나가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라는 이유만으로 조경을 좋아하고 조경을 잘하는 사람들까지도 조경을 떠나버리면 조경은 망한다. 호황일 때 대충 능력 있어도 같이 더불어서 먹고 살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 오히려 전문성이 더 요구되고, 단가도 더 비싸게 받아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설계 단가가 굉장히 높다. 고도의 전문가들이 살아남고, 보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변화하는 시점이다.

학생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조경 어려우니까 졸업하고 다른 길 찾자’라고 생각하기 전에 본인 적성에 맞는 일이면 과감하게 조경을 하라고. 그런 사람들한테는 기회가 많이 있다. 조경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자포자기 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경을 사랑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꿈을 갖고 열심히 하면 충분히 자기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리고 내 스스로가 그걸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안계동 회장의 사무실에는 그동안 행사참여로 모아왔던 이름표들이 걸려있다

한편 동심원조경이 2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날을 회고해본다면?

동심원조경이 여기까지 온 것은 혼자만의 능력이 아니다. 동심원조경을 예쁘게 봐준 발주처, 자문해주신 교수님들, 협력해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직원들이 못난 나를 믿고 계속 따라줘서 고맙다. 참 고마운 것은 능력 있고 출중한 직원들이 오랫동안 근무하며 동심원을 지켜줬다는 것이다. 20년 된 친구가 3명, 15년 넘은 친구는 서너 명, 10년 이상은 수두룩하다. 끈끈한 정으로 계속 동심원에 몸담아왔다.

1996년부터 2016년까지 500여 개의 프로젝트를 해온 동심원조경은 서울숲, 올림픽공원 리모델링 등 공원부터 빌딩조경, 골프장, 아파트단지, 정원, 하천 프로젝트 등 모든 분야를 다루기에 직원들은 동심원조경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다.


동심원조경 20주년 기념 전시회 - '추억의 방'. 동심원을 거쳐 간 직원들의 얼굴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렇고 퇴사하고 나서도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젝트는?

동심원조경을 가장 인정받게 한 프로젝트를 꼽으라면 서울숲이다. 국제공모 당선되고 규모도 컸고 내용도 좋아서 서울숲이 대표작이자 성공작이라고 본다. 회사가 서울숲 근처에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심원조경에서 진행했던 작은 프로젝트들도 좋다. 이화여대 앞의 대현문화공원도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간다.

경의선 숲길은 그렇게 크게 기대를 안했었는데 시민들이 너무 좋아해줘서 감사한 프로젝트다. 물론 설계를 열심히 했고 정욱주 교수나 조성룡 교수와의 협업을 통해 더 잘되긴 했지만 생각보다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요새는 서울숲보다 경의선숲길이 더 낫다는 평가를 듣는다.

경의선숲길이 다른 공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굉장히 절제되어 있고 비워져있다는 것이다. 기본 틀만 만들고 비워놓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놀이시설, 운동시설도 없고, 파고라와 쉘터, 벤치도 많지 않다. 물길 하나 내고 나머지는 잔디밭으로 조성한 뒤 사람들의 이용행태를 보면서 필요한 것을 채우자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비워진 그대로 활동으로만 채우고 시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디자인을 절제하다보니 심플하고 경쾌하며, 철길의 기억을 살리기 위한 요소들이 세련되게 반영돼 좋아하시는 것 같다.

‘허왕후 기념공원 설계공모’ 당선 축하드린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

옛날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였던 허황옥(許黃玉)이 가락국의 김수로왕에게 시집을 왔다고 한다. 이 부부가 지금 김해김씨와 허씨의 시조가 됐다. 한국과 인도가 정상회담을 할 당시, 양국은 이러한 역사적 공감대를 나누면서 인도에 허왕후 기념비 공원을 크게 확대하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나라가 설계와 감리를 제공하고 인도는 땅과 공사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건축가협회 주관으로 설계공모가 났다. 공모 주최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산하에 등록된 단체들 중 건축가협회와 함께 진행한 것이다. 이 내용을 정주현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이 조경사회 밴드나 SNS로 알렸다. 그간 경의선 숲길공원, 마포석유비축기지, 노들섬 전부 다 건축에서 주관했다. 심지어 서울역고가프로젝트도 건축도 아니고 토목조경임에도 건축에서 공모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니, 명색이 허왕후 기념‘공원’인데 조경이 들어가서 따내자는 의견들이 모였고, 우리도 참여해 건축분야와의 경쟁을 해서 당선이 된 것이다. 건축에서 주관한 공모전에 조경이 당선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공원은 조경 것이다’라는 것을 문체부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동심원조경의 직원들이 열심히 해준 공이다.


(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 직원들

조경설계분야에 잔뼈 굵은 베테랑이신데, 전문가로서의 덕목이 있다면?

‘회사 책상에 앉아서만 일할거야’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다. 일에 중독되고 일의 노예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본인이 전문가라면 책상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는 태도가 전문가적인 태도여야 한다. 그러면 살면서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특히 조경설계가라면 손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디자인은 표현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체로 만드는 형상화 작업이기 때문에 자기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종이로 바로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 도구가 손이다. 디자인은 손끝에서 나온다. 

아이디어는 꿈꾸다가 떠오르기도 하고, 거리를 다니거나, 영화를 보는 등 책상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번득이는 경우가 많다. 생활 속에서 설계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다보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때 바로바로 종이에 그려놓고 나중에 컴퓨터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은 모든 창작분야에 있다.

본인에게 조경설계는?

30년 이상 하다보니 너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조경설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이 어렵다. 그냥 좋아했고, 내 삶이었던 것 같다.



동심원조경 20주년 기념 전시회 - 직원들이 프로젝트 파일에 모아놓은 것을 꺼내서 전시했다. 손으로 디자인하던 시절의 작품들.


동심원갤러리. 조경분야 기여 차원에서 조경인들의 사랑방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조경인이라면 저렴한 가격에 공간을 대여할 수 있다.


인터뷰 당시, 마침 직원이 설계과정에 있어 궁금한 점을 질문하려 문을 두드렸다.

글·사진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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