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노트] 해충이 한 마리도 없는 세상은 완벽할까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18> 상강
라펜트l이강운 소장l기사입력2017-10-29
생물학자 이강운의 ‘24절기 생물 노트’<18> 상강

해충이 한 마리도 없는 세상은 완벽할까
인간과 동물 가을 끝자락 산속의 명상…곤충 생활사는 아찔한 예술
지구 생물종 4분의 3 차지 곤충 없으면 인간도 못 살아


_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사)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단풍에 물든 강원도 횡성의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전경. 22일 촬영했다.

산꼭대기 참나무가 누렇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신나무의 울긋불긋한 단풍이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다. 오늘은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 비록 생장은 멈추었지만 서리 맞지 않은 꽃은 아직 아름답고 나비의 날갯짓은 살아있다. 등허리에 내려앉은 햇볕이 따뜻하고 참 좋다. 맑고 깨끗하며 푸른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슬을 매단 거품벌레. 움직임이 둔하다.

아침 이슬에 온몸이 젖어 건드려도 꼼짝 못 하는 남방뿔노린재나 주둥무늬차색풍뎅이, 거품벌레가 무력해 보이고, 네눈쑥가지나방 애벌레는 아직 싱싱하게 붙어있는 산초나무 잎을 열심히 먹고 있다. 며칠째 소똥을 먹지 않는 애기뿔소똥구리는 땅속 15㎝ 정도 파고 들어가 이미 월동에 들어갔다. 움직임은 둔하지만, 아직 다리를 벌리고 사냥 자세를 하는 물장군에게 올해 마지막 물고기를 넣어준다. 다음 주 수온이 5℃ 이하로 떨어지면 곧 숨관을 하늘로 세우고 월동에 들어갈 것이다. 여름잠을 늘어지게 잔 붉은점모시나비는 추운 겨울을 기다리며 알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싱싱한 산초나무 잎을 먹고 있는 네눈쑥가지나방 애벌레.

아열대성 식물을 온실로 옮기고 알에서 나온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먹을 기린초 화분을 만들며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을 준비하느라 몸은 바쁘지만, 단풍과 낙엽이 온 세상을 덮어주는 꼭 이런 날들일 때 쓸쓸함과 함께 평화를 느낀다. 이른 아침부터 갑자기 태풍 '란'이 북상하면서 몰고 온 강한 바람에 그 곱던 단풍이 우수수 떨어지고 억새 스치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꽃이 꺾인다. 살갗을 파고드는 싸늘함. 이제 가을 끝.

‘혜고부지춘추’(??不知春秋). 장자(莊子)는 여름에만 사는 여치(??)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태어나지도 않았던 봄과 살지 않았던 가을을 모르는 여치에게 봄과 가을은 상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시간일 것이라고 장자는 생각했겠지. 더군다나 여치에게 매서운 겨울바람 불고 펑펑 눈 내리는 엄동설한에 대해 얘기해봐야 알아들을 리 없다.


애여치. 한여름에만 보이는 곤충도 사철을 준비해야 한다.

얼핏 앞뒤가 맞는 것 같지만, 시간이 걸리고 계절을 건너 완성되는 여치의 생활사를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여름 끝자락에 알을 낳고 땅속에서 발육을 멈추고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알들은 봄에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옹골차게 안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꽃 터지는 따뜻한 봄날이 되면 알을 까고 애벌레로 나와 몇 번의 허물을 벗어 던지며 성장한다. 마지막 껍질을 벗어던져 어른이 된 뒤 짧은 생을 살면서 짝을 찾고 또 알을 낳고. 물론 비유적인 이야기지만 일 년 열두 달이 온전히 여치의 생애인데 왜 봄과 가을을 모르겠는가? 곤충 생활사는 시간을 내다보고 계절을 뛰어넘는 아슬아슬한 예술과 다름없다.

장자에게는 다른 세상으로 보였겠지만 여치에게는 ‘다르나 같은 하나의 세상’이 존재한다. 2300년 전 장자도 잘 몰랐지만, 지금까지도 곤충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것 같다.


외래붉은불개미 일개미의 확대 모습. 알렉스 와일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열흘 추석 긴 연휴 동안 온 국민의 신경을 건드린 곳은 단연 부산이었다. 부산항 감만 부두에서 발견된 악명 높은 1000여 마리의 외래붉은불개미(Red imported fire ant)가 국내로 빠르게 퍼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찮은 벌레라고 가볍게 여겼던 곤충 한 종이 전 국민을 이렇게 하나의 주제로 몰입시킬 수 있다니 위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외래붉은불개미 사태로 곤충이 결코 하찮거나 무시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벌이나 다른 개미처럼 ‘벌목(Hymenoptera)’에 속하는 외래붉은불개미는‘사회성 곤충’으로 분업화·전문화된 조직생활을 한다. 추석 내내 개미 찾겠다고 굴삭기를 동원한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외래붉은불개미가 주로 사는 곳은 땅 밑이어서 인간과 충돌할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독성도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곤충이 수없이 많은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물질을 갖고 있으니 독성 없는 곤충은 없다. 쏘이면 불에 덴 듯한 통증, 가려움증, 발진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과민성 쇼크를 일으키는 정도의 독성은 모든 개미가 갖고 있다. 정작 살인적 독성을 생각하면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일 년 내내 우리에게 위협적인 외래종 등검은말벌이 훨씬 위험하다. 전체를 조사하고 예방적 차원의 조치를 하는 것은 옳지만 부정확한 자료로 과장되게 포장하여 많은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어 곤충에 대한 부정적 시각만 불러일으켰다.


침입종인 등검은말벌. 독성이 과장된 외래붉은불개미보다 훨씬 위험하다.

점점 뜨거워지고 평평해지는 지구에서 외래종 문제는 전 지구적인 고민으로 외래종 유입을 막을 수는 없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물자가 오가는 무역과 인간의 교류도 만만치 않다. 이번 추석에 해외여행객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데 어찌 우리 몸에 붙어 오질 않았을까? 컨테이너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을 빌리기도 하고, 모든 운송 수단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곤충 이동을 막을 방법은 없다. 모든 나라가 인적, 물적 교류를 중지하기 전에는 결코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이들을 막기 위해 모든 지구인이 금욕적인 생활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따뜻해지는 기후 변화로 외부로부터 훨씬 많은 아열대성 곤충 종이 유입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문제를 유발할 것이다. 외래붉은불개미 여왕개미 1개체를 포획했다고 사라질 놈들도 아니고 부산을 막았다고 서울에는 없겠는가?


북한산 일대에서 대발생해 관심을 끈 뽕나무하늘소.

외래종과 마찬가지로 곤충의 대발생이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한다. 최근 도봉산과 북한산에 인접한 서울 도봉구와 강북구 일대에서는 ‘뽕나무하늘소의 습격’으로 홍역을 치렀다. 십여 년 전에는 도심에서 말매미가 대량 창궐했고 몇 년 전에는 황다리독나방이 대량 발생해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2014년 8월에는 전남 해남에서 풀무치 떼, 2016년 5월 말 강원도 춘천에는 연노랑뒷날개나방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올해 여름 횡성군에서도 골치 아픈 밤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의 처리 방법을 물어 오기도 했다.


황다리독나방 애벌레


풀무치


연노랑뒷날개나방 애벌레


밤나무산누에나방 애벌레

이처럼 몇몇 곤충이 크게 발생하거나 외래종이 들어오면 예방책을 발표하고 살충제를 뿌리고 이들을 완전히 박멸해야 안심이라고 난리를 친다. 외래붉은불개미나 등검은말벌 그리고 꽃매미 같은 파괴적인 외래곤충이 유입되거나 나방이나 매미, 하늘소 등의 벌레가 대량으로 나타나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갑작스레 침입하거나 급격히 늘어난 벌레 떼가 반가울 리 없지만, 곤충의 대발생이나 이동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불규칙한 생성과 발생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생태적 변화는 곤충 세계에서도 늘 있는 일이며, 때로는 극심한 환경 변화로 벌레가 자연스럽게 대발생한다. 완전히 다른 기후와 식생에서 살다 우리나라에 툭 떨어진 외래종도 인적, 물적 교류로 억지로 발생한 일이다.


외래곤충 꽃매미

해충이라며 외래종이라며 그들을 깡그리 없애려고 살충제를 뿌려도,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놈들이 새끼를 낳고 약에 더욱 강해진 그 후손들이 다시 엄청나게 늘어난다. 살충제를 쓰면 훨씬 강력한 놈들을 재생산하고, 살충제를 뿌린 인간에게만 약의 효과를 전달해 줄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껍질이 얇고 위험한 성분이 포함된 달걀을 주거나 먹을 수 없는 꿀을 줄 것이다. 외래종이 침입했다고, 엄청나게 많은 곤충이 발생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날아다니는 곤충 개체수가 27년 전인 1989년에 비해 무려 75%가 감소했다는 엊그제 발표된 독일 과학자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특정한 적응력 있는 몇몇 종류만 늘어나 위협적이지 실제로는 생태적 종말 과정에 있지 않나 의심할 정도로 곤충은 줄고 있다. 독일을 대상으로 한 연구지만 전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을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한다. 한 마리의 해충도 없는 세상을 완벽한 세상이라 꿈꾸는 것 같지만 완전하다고 믿는 순간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억5000만년 전부터 지구를 지배해왔으며 지구 전체 생물종의 약 4분의 3을 차지하는 곤충을 다 죽이고 어찌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될까?

인간과 곤충의 투쟁은 문명이 싹트기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인간종이 존재하는 한 지속할 게 틀림없다. 왕성한 번식력과 적응력으로 생존해 온 곤충을 제압할 수 있는 온전한 환경을 곤충에게 만들어 주면서(이충제충·以蟲制蟲) 곤충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이 지구를 만들 때 인간만 존재하는 지구를 구상했을 리가 없다.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언제라도 곤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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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한겨레의 동의를 얻어 발췌한 기사이며, 이강운 소장의 주요 약력은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 한국환경복원기술학회 부회장 / 한국서식지외보전기관협회 회장 /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겸임교수 / 저서로는 <한국의 나방 애벌레 도감(Caterpillars of Moths in Korea)>(2015.11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캐터필러>(2016.11 도서출판 홀로세)가 있다.
이메일 : holoce@hecri.re.kr       
블로그 : http://m.blog.naver.com/holoce58
글·사진 _ 이강운 소장  ·  (사)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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