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작가, ″쇼몽,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2018 쇼몽국제가든페스티벌 출품작 ‘사색의 끈’
라펜트l전지은 기자l기사입력2018-05-13


김영준 작가(왼쪽에서 두번째) ⓒ게이트준



쇼몽, 미지의 세계

“다행이다”


2018 쇼몽국제가든페스티벌(이하 쇼몽)에 정원 ‘사색의 끈’ 조성을 마친 김영준 작가의 소회이다. 영국의 첼시 플라워 쇼, 독일 분데스가르텐샤우와 함께 세계 3대 정원 페스티벌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쇼몽국제가든페스티벌’. 이 국제적 행사는 창의성, 종 다양성,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급진적이면서도 대중이 공감하고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발굴하는 데 주력해오고 있다.


매년 철학적이거나 도발적인 주제를 던져 작가들의 창의력과 예술성을 자극하는 쇼몽의 올해 주제는 ‘사색의 정원’이었다. 인간에게 사색이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인간은 종종 이를 정원으로 표현하곤 했다. 정원은 인간에게 사색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쇼몽성, 그 아름다운 곳에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300여 작품이 제안됐고, 그중 김영준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그간 해외 활동을 해오다 쇼몽에 도전했던 작가들과 달리 김영준 작가는 한국에서만 활동해왔기에 그에게 쇼몽이란 “깜깜한 미지의 세계”였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작업을 저 먼 나라 프랑스에서, 아는 이 하나 없이,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정원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인 격이다.


김영준 작가가 쇼몽에 도전하게 된 것은 아내인 김민주팀장의 권유였다. 대학에서 만난 아내는 같은 조경학과 출신으로 조경에 대한 이해가 깊다. 실제로 건축,조경스케치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게이트준의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쇼몽 측에 문의 메일을 보내어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이력서를 보내서 작품제안 기회를 얻는 것부터 그 이후의 모든 행정적 과정을 아내가 도맡았고 현지작업에 동참하여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큰 도움을 주었다.


모든 작가들에게 주어지는 두 달간의 작업 기간 가운데 김영준 작가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2주간의 작업계획을 잡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런데 첫날부터 파리에 눈이 내리는 것이다. 웬만해서는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없는 프랑스인데 말이다. 다른 유럽작가들의 경우는 날씨에 맞춰서 일정을 조정할 수 있을 테지만 김영준 작가의 경우는 하루하루 일을 하지 못하면 리스크가 컸기 때문에 ‘과연 정원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시작한 작업이었다. 눈이 와도 작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정원을 완성한 뒤 한숨 돌리고 2주간 정신없이 만든 정원을 살펴보니 결과가 나쁘지 않더라. 함께한 작가들의 반응도 좋았고 현지언론과 관람객들의 호응도 기대이상 이었다. 수상여부에 상관없이 완성을 했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억만리 타지에서 만든 작품이 디자인 의도대로, 설계대로 나왔으니 안도감이 가장 크다.”



정원과 설치미술,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쇼몽은 주제가 심오하고, 표현하는데 있어서 범위가 넓다. 심지어 정원이지만 식물 한 포기 없을 수 있다. 이것이 쇼몽의 자부심이다.”


이 점이 김작가가 쇼몽에 도전하게 된 심적 동기이다


쇼몽은 정원이지만 설치미술적인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김영준 작가에게도 설치미술에 대해 탐색하는 기간이 있었다. 설치미술은 회화나 조각을 전시할 분식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메시지 전달을 위해 색다른 진열방식으로 보여주는 미술이다. 어떤 사람은 유리라는 재료를 선택하여 작업하고 또 어떤 작가는 색채를 중심으로 작업하기도 한다. 즉, 작가마다 자기의 아이디어나 의도를 표현하는 독특한 표현기법이나 매체가 있다.


김영준 작가가 선택한 아이템은 ‘낚싯대’였다.


“낚싯대의 아름다움은 탄성이다. 정말 아름답다.”


김영준 작가가 낚싯대에서 영감을 얻은 계기는 우연하다. TV를 보던 중 EBS의 ‘성난 물고기’라는 프로그램을 본 것에서 시작한다.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웠는데 큰 물고기가 걸린 것이다. 순간 낚싯대를 확 낚아채고 당기는데 휘익 휘어지는 선이 너무 멋있어 보였단다. 물속의 물고기의 묵직함이 팽팽하게 휘어진 낚싯대를 타고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 ‘탄성’은 단순한 곡선이 아닌 ‘힘’이 느껴지는 선이었다. 이후 낚싯대 사진을 검색해보다 한 방파제에 사람들이 늘어서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진을 옆에서 찍은 사진을 발견했다고 한다. 제각기 다른 선을 그리며 늘어선 그 모습에서 영감을 얻게 됐다.


사색의 정원이라는 주제를 받아놓고 고민을 하던 와중에 낚싯대에서 디자인적 영감을 얻고, 여기서 착안해 유배를 간 사람이 낚싯대를 던지고 있는 그림을 보며 ‘저 사람은 긴긴 시간을 낚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사색의 끈’이 탄생했다.


쇼몽의 심사위원단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대디자이너, 음악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등 그 분야가 다양하다. 쇼몽은 문학이라는 분야에서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정원에 대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은 통섭이다.


“앞으로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조경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여러 실험적인 작업에 도전해보고 싶다.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












정원 모습 ⓒ게이트준


최고의 대우, 최고의 시스템

한 달 동안 먹을 것과 잠자리를 최고로 제공할 테니 작품에만 신경을 써 달라. 이것이 쇼몽이 작가를 대하는 태도다.


작가들에게는 쇼몽성 안에 위치한 호텔급 숙소와 삼시세끼 프랑스 정통 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은 작가들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항에 불편함이 없도록 분야별 담당자들이 상주해 있으면서 다양한 일들을 세심하게 처리한다. 이것은 정원조성과정도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식물전문가를 통해 정원에 사용될 대체수종을 구하는데, 지난해 대회에 쓰였던 식물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새로운 수종을 주문해주기도 한다. 정원에 들어갈 시설물 또한 필요한 사항을 이야기하면 바로 처리해준다. 주변의 농업고등학교나 농업전문대의 학생들을 실습생으로 받아 작가별로 필요한 인원을 맡아 함께 작업 한다.


김영준 작가는 미지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쇼몽의 시스템이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최고의 지원을 통해 작품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쇼몽의 생각이다.


“쇼몽은 우선순위가 작가의 창작품에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지원을 한다. 작가들을 숙박시키면서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게 하게 하는 이 시스템은 프랑스에서도 좋은 시스템이고, 다른 정원박람회와 차별화된 모습이다.”


‘사색의 끈’이 탄생하기까지는 대우건설과 낚싯대를 제작, 배송한 나노템코리아의 후원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대우건설의 경우, 공동주택단지 작가정원으로 만난 사업파트너가 믿고 후원을 한 것이다. ‘사색의 끈’은 휴게공간에 맞게 재해석해 김포 풍무 2차 푸르지오에 작가정원으로 조성 중에 있다.



정원, 그리고 작품

“바둑이 똑같은 돌을 가지고 놓은 곳에 따라 실력차이가 나듯 수목도, 돌 하나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드러난다.”


그는 설계와 시공을 모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설계는 전체적인 레이아웃 디자인을 결정하며 2차원도면과 3차원공간의 연결고리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사무실에서 아무리 공을 들여 디자인을 하더라도 재료가 표준화되지 않은 정원 또는 조경공간은 설계자의 의도가 충실하게 구현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프로세스로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제는 시공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설계단계부터 시공과정을 머릿속으로 구상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도면을 그린다. 그리고 그에 맞는 나무를 찾는다. 식재시에는 하나하나 위치를 지정해가면서 심는다. 그러면 그림과 똑같은 장소가 탄생한다. 슬픈 현실 이지만 작금의 조경설계와 시공 현실은 완공한 공간이 처음에 제시한 보기 좋은 그림이나 CG보다 못한 경우가 간혹 있다.


작품을 위해서는 대상지의 풀 한포기, 나무 하나, 돌 하나도 그 위치를 다 알고 있다. 식재하는 과정 중에도 위치가 적절치 못하면 몇 번을 옮기기도 한다. 이상하게 식재된 나무 한 그루, 잘못 놓인 돌 하나로 인해 공간이 망쳐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철학은 이전에 몸담았던 이원조경의 이교원 대표의 영향이 크다. 이교원대표가 만든는 조경공간이 ‘작품’이라고 불리는 것을 너무도 부러워하며 그의 디테일들을 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래에는 나도 작품이라 불릴 수 있는 조경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15년이라는 세월동안 힘들었던 과정을 보내고 난 뒤에야 모자라지만 흉내를 조금 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이 들어오면 가치판단을 해서 결정한다. 물론 들어오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보다 수익이 떨어질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려고 한다.”











현지 인터뷰 중인 김영준 작가 ⓒ게이트준



현지 인터뷰 증인 김영준 작가 ⓒ게이트준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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