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식물을 제안하는 그녀, 강은영 작가

[크리에이터] 강은영 식물상점 대표
라펜트l김지혜 기자l기사입력2018-07-25

몇 주 전 엘리펀트 스페이스는 개관 1주년 프로그램으로 ‘죄의 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죄를 누가, 무엇으로 분류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는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쉬가 구축한 선과 악의 세계를 현대 사회가 공유하는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며 문화인류학적 상상을 가미해 설치작업, 인터렉티브, 사운드 디자인 등으로 재해석한 내용이었다.


이 중 식물상점의 강은영 작가는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 속 정원과 식물에 주목했고, 이를 전시공간에 녹여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녀는 전시 작업을 할 경우, 식물생장등과 환기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고. 실제 만나보았을 때 그녀는 일회성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식물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판화를 전공한 그녀는 작업과정도 흥미롭다. 그림을 그릴 때 초벌을 하고 색을 입혀나가는 것처럼, 식물로 공간을 연출할 때도 그 과정을 그대로 녹여낸다. 작품의 큰 덩어리를 모두 배치하고 꽃을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꽂는다. 그리고 다시 내려와 확인한다. 레이어별로,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보이는 장면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그녀는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야말로 식물생활을 제안한다. 꽃을 주문하면 받는 사람의 성격과 취향은 물론,  고려하여 만들어준다. 일상 속 식물을 제안하는 그녀의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강은영 작가


소개를 부탁한다.


그림을 그리고 판화를 전공했다. 판화를 작업 할 당시에도 식물을 주제로 할 만큼 식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다. 현재는 오프라인 ‘식물상점’을 운영하며 팝업 스토어, 전시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식물을 활용한 공간설치 작업들을 하고 있다.


처음 식물작업을 시작한 배경이 궁금하다. 


하루는 작업에 사용할 흙을 사면서 함께 파는 씨앗을 같이 구입했었다. 추운 날씨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파종을 해봤다. 종이상자에 흙을 담고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까지 매일매일 관심을 줬는데, 한 달이 넘어서야 싹을 틔우더라. 싹이 돋는 순간은 정말 기적과도 같았다. 그 이후부터 씨앗을 수집하고, 파종하기 시작했다. 씨앗과 식물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찾아서 활동하기도 했었다. 


"어느 순간 작업실에 두는 화분이 200개가 되더라."


점차 식물을 키운다든가, 꽃과 식물을 이용해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본격적인 작업에 뛰어들기 위해 관련 학교와 학원을 찾아가 배우고, 양재 도매 화훼단지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작년에 ‘식물생활’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을 했었다. 전시장에 식물이 들어오면 대개 예의가 없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룹 식물생활은 유상희, 김하림 작가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로 각자가 관심 있었던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느슨하게 미술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풀어보았던 작업들을 했다. 


그래서 각자가 주도적으로 진행한 작업들이 있고, 나머지 팀원들이 그것을 서포트 해주는 식으로 팀이 운영 됐었다. 특히 '소쇼룸 옥상정원 프로젝트'를 내가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진행했었는데, 을지로의 소쇼룸건물 옥상정원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흔한 초록색 옥상 방수페인트만 발려있던 곳을 식물로 가득 찬 정원으로 조성했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정원의 느낌이 아닌 도심 속 작은 숲에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플랜트박스를 새로 제작하여 양지 식물과 음지식물의 위치를 보완했고, 덩굴식물의 경우 구조물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했었다. 



소쇼룸_옥상정원프로젝트 ⓒ식물생활, 강은영


최근에 참여했던 ‘죄의 정원’전시 중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을 재구성했다.


처음 전시기획 당시에는 공간을 식물로 가득 채웠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식물이 전시장 안으로 들어간다는 자체가 고민스러웠다. 어두운 실내 환경에 식물이 놓였을 때, 대표적으로 빛, 환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뿌리가 있는 식물들을 최소화하고 절화식물들로 공간을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 지속적으로 생장할 수 있는 식물들과 절화식물들이 섞이면서 뿌리가 있는 식물인지 아닌지 헷갈릴 수 있게끔 연출했다.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Hieronymus Bosch) ⓒGalería online, Museo del Prado.



그림을 구현시키는 데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은


보쉬의 그림은 삼면화이다. ‘낙원’, ‘지상’, ‘지옥’의 부분을 느슨하게 나누어 생각했다. 판화를 전공했기 때문에 이미지나 공간을 볼 때 레이어를 늘 염두 한다. 


"레이어를 생각한 공간은 더욱 자연스럽다."


보쉬의 그림도 레이어가 펼쳐져 한 면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그림이 벽에 스크린으로 연출된다면 정면, 후면, 좌우에서 바라보는 다양한 각도의 레이어로 연출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림에서는 바닥에만 놓인 정원이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천장으로 아예 반전시켜 올라간 형태의 정원을 구성했다. 그림에 표현된 식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어떤 특정 나무를 보고 그렸다기보다는 나무라는 이미지 자체를 상상해서 표현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특정 나무를 가져오는 대신 절화로 되어있는 다양한 식물들의 이파리들을 모아 그것들을 섞어 숲이나 나무의 형태로 보이는 느낌으로 표현했다.


보쉬의 작품 중 ‘지옥’ 부분은 가장 화려한 색감으로, 채도가 진하고 색이 대비되어 강렬한 느낌을 준다. ‘낙원’과 ‘지상’이 고요하고 차분한 느낌이라면 ‘지옥’은 강력하고, 시끄럽고, 쾌락적으로 다가왔다. 기획 당시부터 ‘지옥’부분은 장미와 작약, 백합 등 화려하고 향기가 강한 꽃들을 사용했다. 전시 초반에는 백합 향기가 전시공간을 가득 메웠고, 시간이 흐를수록 향기는 점점 옅어지고 백합이 썩는 냄새로 바뀌었다. 그 변화하는 향기도 흥미롭다. 


‘변화하는 향기’와 마찬가지로 전시 중 시든 절화들도 교체하지 않는다고. 


‘죄의 정원’이라는 대주제가 식물이 시들어 가는 과정, 시들었을 때의 형태와 같은 맥락으로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원의 처음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보쉬의 쾌락의 정원은 학생시절 굉장히 흥미롭게 봤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쾌락의 ‘정원’임에도 불구하고 그림 안에 있는 식물이나 나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워낙 인물들의 묘사가 재미있게 되어 있어서 기본적으로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나 행동들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기 때문이다. 예술사를 공부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거기에 나무가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 할 정도였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그림을 여러 번,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정원의 모습이 굉장히 재미있더라. 정원의 형태를 전시공간에 만들었을 때, 그림과 똑같이 나무를 갖다 놓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개입해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보였다. 재밌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판화를 전공했고, 식물과 디자인을 다루고 있다. 본인만의 강점이 있다면


순수미술 작업을 했던 사람으로서 전시나 공간에서 식물이나 꽃에 관련해서 뭔가를 진행할 때 전시의 기획이나 의도에 대한 이해도가 더 깊다고 생각한다. 


“맥락과 의도를 알고 그것에 맞는 식물을 배치했을 때야 비로소 공간이 완성된다.”


정확한 이해 없이는 밖에 있는 일회성 가로녹화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맥락과 의도를 알고 그것에 맞춘 식물이나 꽃을 놓았을 때 공간이 더욱 완성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식물상점의 ‘일상 속 식물을 제안한다’는 슬로건이 재밌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사람들이 꽃이나 식물을 보다 가깝게 느꼈으면 좋겠는데 대부분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 저 또한 그랬고.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찾으면 커뮤니티도 많고, 농촌진흥청에서 배포하는 정보 등을 통해 식물별 관리 방법 등을 알 수 있다.


애쓰면 찾을 수 있지만 사실 일상에서 그 정도의 노력은 힘들다. 꽃을 가까이 두고, 식물을 키워보고는 싶지만 막막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경험하고 공부했던 것들을 나누고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다. 이것이 ‘식물상점’으로 구현됐다.


식물상점을 찾은 한 손님이 친구를 위한 꽃다발을 의뢰한 적이 있다. 꽃다발을 받을 친구를 표현하기를 ‘열대야 같은 화려함을 가진 친구’라고 소개했었다. 일반적인 꽃집에서는 할 수 없는 주문 아닌가. 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일들은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고, 모두 식물상점 내에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망원동 식물상점 ⓒ강은영


그렇다면 독자들에게 식물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한다면?


식물을 키우기 전에 내가 식물을 키울 환경을 먼저 살펴 보셨으면 좋겠다. 햇빛이 드는지, 어느정도로 드는지, 습도와 환기 정도를 어느정도 시켜줄 수 있는 지 등등. 


그 환경에 맞는 식물을 집에 들여놓는 것을 시작으로 식물을 키우면 좋을 것 같다. 형태가 예쁘다고 그냥 들였다가는 환경에 맞지 않아서 금방 죽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나는 식물을 못 키우나보다’ 하며 상처를 받고 더 이상 식물을 키울 엄두를 못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처음에는 환경에 맞는 쉬운 식물을 시작으로 천천히 식물을 늘려나가도 좋을 것 같다. 


강은영 작가의 앞으로가 궁금해진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 그리고 공간에 식물이나 꽃이 들어가는 작업들을 더 많이 해나가고 싶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간의 사용자와 꼭 맞는 식물을 연출하는 작업들을 해나가고 싶다. 전시 작업이 될 수도 있고 생활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행보를 지켜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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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에 위치한 강은영 작가의 오프라인 식물상점은 매주 금·토·일·월요일 오후 1시부터 7까지 방문가능하다. 온라인상으로도 주문 가능하다.


식물상점 주소 망원동 338-67 /트위터, 인스타그램 @singmulstore/이메일 singmulstore@gmail.com


‘죄의 정원’ 전시를 열었던 엘리펀트 스페이스는 문화예술의 상상력과 영감이 있는 문화공간으로, 공연 전시 퍼포먼스 스크리닝 강연의 경계를 허문 큐리어스큐브라 일컫는다. 작은 공간을 넘어 국내외 아티스트 및 문화기관과 협업하는 연구 교류 창작 시연의 플랫폼을 지향한다. 


엘리펀트스페이스 홈페이지 www.elespace.io /인스타그램 @elephantspace_ /전시문의 info.elespace@gmail.com




 





글·사진 _ 김지혜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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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6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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