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 경계를 넘어③]고주석 교수

라펜트l강진솔l기사입력2009-09-14

"한국인만의 국민성 모아 환경개선과 문화정체성을 찾아야"

경계는 보도와 차도를 나누는 경계석 같은 물리적 형태이외에도, 지역별로도 국가 간에도 존재한다.

라펜트(Lafent)가 처음 분야간 경계의 유연성을 갖기 위해 시작한 "조경, 경계를 넘어"의 의도 또한 다양한 경계에 주시하고 이 벽의 높이를 낮춰보자는데 있었다.

이번 "조경, 경계를 넘어"에서는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널리 알려져 있는 조경가 고주석 교수를 만나 현재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조경의 성향과 한국 조경의 비전에 대해 들어보았다.


▲고주석 교수

현재 네덜란드에서 바게닝겐(Wageningen) 대학에서, 또 Oikos
Design라는 설계회사를 운영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계신데요. 유럽지역 조경분야의 현황과 전망이 궁금합니다.


유럽은 사회복지국가적 성향이 클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성숙한 도시문화와 자연밀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도시적인 차원에서 폐허된 산업시설을 재구성하는 등 부유층보다는 서민을 위한 평범하고 비범한 조경이 큰흐름을 이루고 있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분야의 성향을 보아도 학문·예술적 경향을 띠는 편입니다. 특히 유럽에서도 네덜란드의 경우 과학적 이론에 입각한 설계론 창출과 참여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정착이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조경은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시민과 사회 각계각층의 여론이 함께 참여하고, 나아가 속도전으로 풀어나가기 보다는 천천히 이루어지는 사업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참여자 대부분이 만족하는 결과물을 얻곤 합니다.

네덜란드의 조경은 미관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지역적이고 구조적으로 이해하는데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국토의 기본이 되는 인프라적인 차원에서의 조경이 큰 부분으로 차지합니다. 이런 사고의 바탕이 국토 관리를 광역적으로 이루어지게 하고, 이는 땅의 생산성 향상과 동시에 도시의 성장도 잘 유도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네덜란드의 바게닝겐 출신의 그로스 맥스라던지, MVRDV의 창시자 중 하나인 위니 마스 -건축가이기는 하지만 조경학부를 졸업했다고 한다- 도 그러한 성향을 가진 작가들의 한 예입니다.

비교해보자면 미국의 성향과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과거 1960년대 미국조경가인 이안 맥하그(Ian L. McHarg)가 조명을 받으며 조경의 생태적인 면을 주창하였고, 그 영향력이 세계에 미쳤지요. 이후로 미국의 조경은 건물을 미화하고 장식하는 차원 즉, 랜드스케이프어바니즘 차원 -국토 전반이나 도시전체를 재구성하는- 에서 보전적 성격보다는 재수술적인 성격을 띠었지요. 교육에 있어서도 직업적, 전문가적 경향이 컸고요.

[삼성메디컬센터]

▲삼성메디컬센터


▲SMC_조각정원

유럽과 미국, 세계 조경의 커다란 두 축의 성격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세계조경분야의 경향과 미래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어떤 학문이던지 각 문화권이나 지역의 사회구조, 가치관, 세계관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미국이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네덜란드이기 때문에, 한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그 문화에 맞는 학문의 영역이 형성되는 것이지요. 조경 또한 그 나라 혹은 문화에 뿌리내려진 자연, 사회, 경제, 정치와 서로 연계를 짓고 그와 더불어 발전하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대지다움(Landscope)이라는 네덜란드의 말이 어원입니다. 그만큼 네덜란드 국민 의식에 랜드스케이프가 뿌리깊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예로 하나의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조경분야 또한 토목, 건축, 도시계획 분야와 대등하게 참여하고, 어떤 부분에서 보면 건축분야 보다 조경가가 우선 공간구조나 생태구조를 파악하고 Land Plan을 계획하는 등 인프라 랜드스케이프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법들이 선진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요.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는 랜드스케이프를 개인주의의 개념보다는 공공체 의식을 염두한다는 점이 그 바탕이 되고 있고요.

좋은 설계작품의 탄생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겠지요. 조금이라도 더 발전된 도시와 국토를 위해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과의 토론 문화가 정착이 되어있으며, 시민 또한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생활방식이 그 밑거름일 것입니다. 참여하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성공적인 작품 탄생에 기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울산대공원]

▲마스터플랜 렌더링


▲북측-기본계획


▲울산대공원 북측계곡

해외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조경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건축의 분야를 먼저 보면 동아시아 중 일본 건축은 60년대 메타볼리즘 현재 한국의 조경을 보면 조경 1세대가 정년퇴임을 하는 단계로, 아직까진 해외에서 한국의 조경이 인상깊게 다가서기에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청계천의 경우 외부 도시 행정가들에게 좋은 인식을 받기도 했지만 생태적 측면에서 비평적인 시각들도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청계천은 강북도시의 새로운 촉매제로서 시민들이 갈구했던 녹지공간을 회복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또 한 부분으로는 예전 울산대공원 설계계획에 참가했을 당시의 예를 들고 싶네요. 그 당시 기본 설계의 경우 개인적으로 만족한 작품이었지요. 그러나 실시설계와 시공의 과정에서 처음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전혀 상당부분 기존의 작품과는 다르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사실 사업이 진행될수록 더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의도와는 다른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사업 시행자의 환경개선의지 부족 혹은 우리나라의 미들매니지먼트(Middle Management)의 역할부족이 원인이 될 수 있고요.

마지막으로 전문 분야에 있어 전문가 윤리가 부족한 점도 꼬집고 싶습니다. 한국의 몇몇 공원을 보면 오리지널 크레딧, 즉 기존 설계자가 아닌 실시설계자와 시공자가 크레딧에 표기되고 있더군요.
과거 동아시아문화에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적은 편이였지요. 과거 경복궁을 누가 설계했는지 과거 민화의 그림 등을 보자면 작자 미상의 작품이 대부분이고요. 그러나 한 사람 혹은 한 그룹의 피와 땀이 타인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나간다면 어느 누가 좋은 설계, 좋은 작품을 위해 노력할지는 의문입니다. 그에 맞는 합당한 대우와 장인정신이 자연스레 맞물릴 때 소위 말하는 걸작이 나오겠지요.

[신도림 D-cube city]


▲Millefleur Park


▲Millefleur Park 기본계획 조감도


▲Millefleur Park 기본계획도

분야간의 벽이 낮아지면서 조경, 토목, 건축, 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현재 한국 조경 분야의 비전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조경뿐만 아니라 조경 인근 분야에서도 각 분야의 이권과 이익을 위해 영역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한 이치인 것 같습니다. 옛날 국가들이 문호를 개방하여 타문화와의 문물을 받아들였듯 타분야 간에도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수용하고 인정하는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겠지요.
소아과 의사는 그 분야만을 담당하여 치료하듯 조경만의 영역 확보도 필요하겠지만, 영역을 초월하는 협동자세도 필요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서로 타분야를 이해하고 평등하게 대하려는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폐쇄적인 성향은 국민이나 국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손해이지 않나요? 한 분야 시장을 막고 폐쇄하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 조경가만의 경쟁력을 키우고 또 내보여야 하겠지요. 기술이나 물질은 풍요로워 진데 반하여 좋은 아이디어가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곤란하겠지요.

그러나 한국조경이 1960년대에 비해 지난 50년간 눈부신 성장과 발전을 일궈왔다는 부분은 인정해야 합니다. 세대와 계층간 여론이 어떻든 국토 기반의 절반이 6~70년대 초에 이루어졌고 이젠 세계의 굴지의 국가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지요. 그 후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지방자치화부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민주화가 된 것은 약 10여년 밖에 되질 않았지요(1995년 지방자치제의 부활부터).

결국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무척 짧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경제가 꾸준히 발전했고 정착하고 있지요. 이런 과정에서 도시 환경이나 농촌 환경 등이 많이 파괴되고 오염되기도 했고요. 하천도 땅도 말입니다.

이제는 한국이 과거에 과감하게 경제를 개발하고, 민주화를 정착시켰던 국민성을 모아 환경복원에 쏟아 부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부도 지방으로 분산할 수 있는 부분은 지방으로, 수도권에 있어야 하는 기구들은 수도권으로, 과밀화된 수도권 인구 분산을 위한 과밀세 재정, 친환경 대중교통시설의 첨단화 등 현재의 입장에서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사업들은 추진력 있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이런 환경개선과 더불어 문화정체성 복원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에도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을 뿐더러 나라 안팎으로 각 분야 마다 - 미학, 역사, 생물학, 인문학, 경제 등 - 성숙한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젊은 층과 시민들의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시민들의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문화가 정착하는 과제만이 남은 것입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 1997년 IMF시기 금모으기 운동 모두 한국의 국민성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환경이라는 것이 빠른 시간 내에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나 선례가 있으니, 환경개선과 문화정체성 회복 모두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한국 조경의 발전을 위해 온라인 정보 매체 라펜트(Lafent)가 올해 1월 1일 오픈을 하였습니다. 라펜트(Lafent) 탄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경분야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도시의 토지 공간 능률성은 점점 증가해야만이 한정된 국토내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토지 공간 능률성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지 외국의 것들을 무작정 따라한다고 똑같아 지지는 않지요. 그 보다는 문제의 뿌리를 해석하고 국민들의 이슈를 모으는 일련의 작업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분들을 라펜트(Lafent)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또 지식을 독점하기보다는 공유함으로써 분야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후배들에게

지난 50년간 많은 시행착오들이 있었습니다. 후발 주자들이 그 시행착오 모두를 겪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선배들이 이루어놓은 것을 바탕으로, 현재에 안착하지 말고 더 발전시키고 다듬어야 하겠지요. 한 학문이 50년만에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후배들은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조경가는 국토가 행복하고, 건강한 나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화장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강진솔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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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gj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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