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학당 2차 답사, 고산 윤선도에 반하다

보길도 부용동과 해남 수정동, 금쇄동 별서의 뜰들뫼 가꾸기
라펜트l기사입력2020-11-24
고려대 심우경 명예교수의 학맥을 잇기 위해 작년에 설립된 오봉학당은 지난 1월에 이어 11월 13~15일 2박3일 당원 9명이 고산 윤선도(1587-1671)가 34년간 은둔생활을 하며 경영한 보길도 부용동과 해남 수정동, 금쇄동 별서의 뜰들뫼 가꾸기(전통정원문화)를 답사했다.

고산은 「어부사시사」, 「산중신곡」 등 75수를 지어 국문학사상 최고봉의 시조를 남긴 문인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정조(1776-1800)는 신안이 열린 풍수대가로 인정했고, 그가 머물렀던 은둔지에는 세계적인 뜰들뫼 가꾸기를 남겼다. 이에 답사자들은 1차 답사에 이어 전문가 안내를 받으며 심층답사를 실시했다.

고산은 당시 간척사업, 해산물 유통 등을 통해 10대 재벌이었을 만큼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17세(1603)에 진사 초시, 20세 승보시 장원, 향시 입격, 26세 진사시에 제일 급제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불의를 참지 못해 30세에 예조판서 이이첨을 탄핵하는 병진소를 올려 귀양을 가는 등 14년의 귀양살이, 34년 7개월의 은둔생활을 했고, 봉림대군, 인평대군의 사부로 제수되기도 하는 등 85세의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이번 답사는 그가 꿈꾸던 이상향, 선계를 찾아 직접 꾸미며 멋있는 삶을 살았던 고산의 발자취를 더듬는 과정이었다.

첫날 보길도에 도착해 고산 후손인 윤창하 님(완도문화해설사, 76)의 안내로 격자봉 아래 부용동 30여만 평의 넓은 부지 안에 뜰들뫼를 경영했던 흔적을 살폈다.
    

입구의 세연정과 세연지 / 오봉학당 제공


안내하는 윤창하 씨 / 오봉학당 제공

고산은 벌써 400여 년 전에 21세기에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ESSD)을 실천했다. 대부분의 부지를 순수자연으로 보존하고 전체 면적의 1%도 안 되는 네 곳을 조형자연으로 가꾸며 보전과 개발을 병행했던 것이다.

51세에 입도하여 격자봉 산줄기가 힘차게 내려오다 멈춘 혈 터에 생활공간과 학문수양 공간으로 낙서재와 무민당을 짓고 거쳐했으며, 그 아래 아들 학관을 시켜 직접 집을 짓게 훈련시켜 곡수당을 짓게 하고 뜰을 꾸미며 가까이 살도록 했다. 낙서재 건너편 산 암반에 동천석실을 축조하고 유식공간으로 즐겼다.

부용동 입구에는 사랑채 역할과 수구막이 기능을 하도록 골짜기 물을 판석보로 막고 과학적으로 입출수를 관리하도록 꾸민 세연정과 세연지를 조영했다. 이곳을 13년간 6차례 드나들며 「어부사시사」 40수와 32편의 한시를 남겼으며, 낙서재에서 85세에 생을 마감할 때 까지 가장 오랫동안 은거했던 곳이다.

답사자들은 첫날밤 김현란 보길면장이 제공한 고산 윤선도 문학관에서 1박하며 제철 해산물인 삼치를 윤창하 씨 댁에서 준비해 주어 막걸리에 포식을 즐겼다. 


낙서재 건너편에 축조한 동천석실 / 오봉학당 제공

이튿날에는 일찍 부용동을 더 둘러보고 해남으로 건너와 연동마을 고택을 방문했다.

박물관에 소장된 국보급 소장품을 감상하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보다 151년 앞선 그린 「대동여지도」와 직접 만들어 연주했다는 거문고, 손자 윤두서의 자화상 국보와 많은 유물들을 보았다. 윤두서의 외손자인 다산 정약용도 인근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외갓집에서 책을 빌려다 제자들과 500여권의 저술을 하게 한 곳이다.

오후에 근처에 위치한 대흥사 일지암을 방문하여 『동다송』, 『다신전』을 저술해 다성으로 추대되고 있는 초의선사(1786-1866)의 대를 잇기 위해 다도를 연구하는 법강스님의 차 대접을 받았고 대흥사 법상 주지스님과 향문 중앙위원 스님의 배려로 템플스테이를 했다.


일지암에서 법강 스님과 차담 / 오봉학당 제공

셋째 날은 고산이 영덕 유배에서 풀려나 해남에 돌아 온 후 53세(1639)에 연동마을에서 5㎞떨어진 수정동을 찾았다. 「인소정」을 폭포 옆에 짓고 은거를 시작했으며, 54세에 뒷산에 꿈에 나타난  선계 금쇄동을 발견하고 「산중신곡」을 짓는 등 6년간 은거했던 별서 유적을 향토사학자 박종삼 씨(전 영어교사)의 안내로 자세히 탐방할 수 있었다.

이곳도 90여만 평에 일부만 다듬어 은둔생활을 즐겼으며, 금쇄동의 입구 「불차」부터 험한 급경사지에 20여 곳을 골라 휴식을 취하고 주변의 산들을 즐기며 은둔한 이상향을 경영했던 것이다. 

   

금쇄동에서

수정동에서


심우경 명예교수는 “16, 17세기에 살았던 고산은 특출한 풍수전문가였고, 자연을 벗 삼아 은둔생활을 경영했으며, 동천복지를 찾아 이상향을 꾸민 최고의 조경가였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실천한 환경전문가였음을 확인한 것이 이번 답사의 귀중한 소득”이라며 “이러한 사실을 국내에도 널리 알려야겠지만 2022년에 광주에서 개최될 세계조경가대회 때 전 세계 조경가들에게 우리 선인들의 순수자연과 조형자연을 병행 경영했던 지혜를 널리 알리고, 21세기 조경의 방향을 이끌어 가는 선도국가가 되어야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단지 아쉬움은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선배 연구자들이 가시밭길을 헤치며 발굴한 연구업적을 무시하거나 표절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루 빨리 고산의 뜰들뫼 가꾸기 터가 제 모습으로 복원되어 세계적 명원으로 각광받기를 기대해 본다”고 전했다.
_ 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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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8709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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