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식물학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

[인터뷰] 덕수궁 프로젝트2021: 상상의 정원展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 식물학자·식물세밀화가 신혜우 - 2
라펜트l김기정 녹색기자l기사입력2021-11-17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이 11월 28일까지 덕수궁 정원 및 전각에서 열린다. 이중 신혜우 작가의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은 표본과 그림으로 덕수궁의 식물을 아카이빙하고 있다.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 신혜우 작가를 만나 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작업에 대해 물어봤다.

신혜우 식물학자·식물세밀화가


식물학자, 그리고 식물세밀화가이십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취미처럼 그림을 그렸고, 식물과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교에 들어가고 지도교수님의 소개로 식물분류학 분야가 있다는 걸 알았죠. 공부를 하면서 논문에 필요한 그림을 직접 그렸고, 그것들이 이어져 여기까지 왔어요.

2013년에는 RHS 보타니컬 아트쇼에서 수상을 했어요. 그러나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과학 일러스트 분야가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해주실 교수님도 안 계셨어요. 그저 저 멀리 한국에서 출품을 했으니 기특해서 상을 주는 건가 싶었죠. 실력에 대한 확인을 해보고 싶어 2014년에 또 출품을 했고, 수상했습니다.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심사위원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이 분야에 대한 확신을 가졌어요. 그림을 잘 그리는지, 얼마나 예쁜지가 아니라 과학적인 순간과 그 설명으로서 이 사람이 식물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것이거든요. 저에게 과학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림으로 그려진 논문이에요. 식물학을 공부했기에 식물의 해부학적 구조를 보여주는 방법을 더 쉽게 캐치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저는 그림을 그리지만 미대생보다는 공대생에 가까워요. 80%는 연구에 할애하고, 그림은 주말, 연휴, 휴가, 휴학 등 쉬는 시간들을 활용해서 많이 그렸어요. 식물을 그리려면 정말 많은 조사가 필요한데 이런 걸 평소에 한 셈이죠.


러시아 캄차카반도에서 식물을 수집하는 식혜우 식물학자


식물을 연구하는 신혜우 식물학자


본인의 연구를 위한 그림도 있지만 이번 전시처럼 의뢰도 많이 받으실 것 같아요.

다른 분의 논문에 들어갈 그림, 연구기관 등은 물론이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뢰를 받습니다. 재미있는 경험은 디즈니와 작업한 것인데요. ‘정글 크루즈’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식물학자였습니다. 영화 홍보영상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식물을 조사해서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동안 여러 전시를 하면서 느낀 건 전시에 걸리는 작품만 전시가 아니라 그 작품을 담는 공간도 하나의 전시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그림을 걸고 라벨을 붙이는 단순한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순수미술을 하시는 분들과 그룹전을 개최하며 전시 자체도 하나의 큰 작품이라는 것을 많이 깨달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색다른 공간입니다. 문화재는 여러 장인들이 모여서 만든 예술이고, 세월이 쌓여서 그 깊이와 의미가 더해져요. 이러한 공간에 전시되는 작품이기에 준비를 치밀하게 했습니다. 가구, 조명, 바닥에 까는 소재까지도 모두 고민하고 준비했어요. 예를 들어 당시 고종 황제는 영국의 가구회사 메이플의 제품을 들였어요. 당시 이 회사의 제품이 굉장히 유명해서 전 세계의 유명한 왕족, 귀족이 많이 썼다고 해요. 최대한 비슷하게 고증하고 싶어 1910년까지의 고가구들을 찾았는데 찾기가 어려워 1920~40년대 사이의 영국 가구를 구해 전시했습니다. 공을 들여야 사람들이 전시공간에 오래 머뭅니다. 예뻐서 보러 왔는데 보다보니 의미까지 느끼는 것이 가장 좋은 전시라고 생각해요.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 신혜우 작가의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 신혜우 작가의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


국내에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다른 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초과, 벼과, 양치식물, 귀화식물을 연구하시는 박수현 선생님이 계세요. 식물학자로 공부를 하시면서 그림도 그리셨어요. 이번 전시에는 1세대 식물학자인 도봉섭 선생님을 소개했습니다. 동양화가인 부인 정찬영 선생님이 식물 그림을 그리기도 하셨죠.

식물학자로 과학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은 한국엔 없습니다. 대부분 그림 그리는 분이 따로 계시고 식물학자는 감수를 하죠. 해외에서도 연구와 일러스트 모두를 하는 사람은 손에 꼽힙니다. 영국의 왕립식물원에서 대화를 해보면 몇 사람을 꼽으며 말이 오갈 정도입니다.


설명을 들을수록 전시가 깊게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찾는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식물에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사람들은 돌 틈에 자란 우산이끼를 그냥 지나치지만 그림으로 그려 전시를 해둔다면 한 번 더 보시잖아요.

제가 연구하는 식물분류학의 최종 목적은 ‘환경보존’이에요. 인간이라는 종도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종인데, 우리는 인간이 아닌 수많은 다른 종에 대해서는 모르고 살아요. 무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 알게 되고, 그것이 보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시를 보시고 예쁘다고 느끼시든 학술적으로 꼼꼼히 보시든 저는 다 좋습니다. 그저 전시를 통해서라도 식물을 보시는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고, 많은 분들이 식물을 자주 보시면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展, 신혜우 작가의 ‘면면상처: 식물학자의 시선’
글·사진 _ 김기정 녹색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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