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수]사발의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
조경수 이야기_4회벚나무, 개나리 그리고 진달래 등은 그동안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가로수 수종이지만,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와 송파구 로데오거리, 청계천 모전교와 고산자교 사이의 이팝나무도 눈에 띤다.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교항리는 대구의 대표적 이팝나무 군락지이며, 남구 앞산순환도로, 두류공원, 달성 가창과 청도간 국도(10㎞)에서도 이팝나무를 볼 수 있다.
명칭
봄의 시작을 알린 노란 꽃의 축제가 끝나갈 무렵, 눈처럼 하얀 꽃이 온 나무에 가득한 이팝나무(Chionanthus retusus Lindley et Paxton)는 학명에서도 하얀 눈꽃이라고 표기되어 있는데‘chion’은 눈(雪)을 뜻하고, ‘anthos’는 꽃(花)의 합성어이다.
영명은 ‘Chinese Fringetree’로서‘fring’은 천의 가장 자리에 달아 장식하는 술을 의미하는데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연상한 듯하다.
이팝나무의 한자명은 육도목(六道木)이라고 하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잎을 차대용으로 사용하여 다엽수(茶葉樹)라고도 불린다.
이팝나무의 꽃이 여름에 들어서는 입하(立夏)에 피기 때문에 입하목(入夏木)이라고 부르다가 이팝으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인지 지방에 따라서 전라도 일부 지방에서는 이팝나무를 입하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른 지방에서는 뻣나무라고도 부른다.
또한 늦은 봄에 이팝나무의 꽃송이가 온 나무를 덮을 정도로 많이 달려서 멀리서 바라보면 사발에 가득담긴 흰 쌀밥처럼 보여 이밥나무라고 하였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다. 이밥은 이(李)의 밥을 칭하는 말로서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해야만 임금이 내리는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고 했다하니, 가난한 백성들이 봄의 이팝나무 꽃을 보고 쌀밥을 연상한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팝나무가 쌀밥을 연상시켜서인지 꽃이 많이 피고 적게 피는 것으로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 꽃이 많이피는 해에는 풍년이 들고, 적게 피면 흉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팝나무는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어서 비의 양이 적당하면 꽃이 활짝 피고, 부족하면 잘 피지 못한다. 물의 양은 벼농사에도 관련되는 것으로, 조상님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관찰의 결과로서, 이 나무에 치성을 드리면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어 신목으로까지 받들었다는 전설이 생겼다고 본다.
자생지역 및 특성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이팝나무는 우리나라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경기도에 자생하며 수고가 20m에 달하는 낙엽활엽교목이다. 수피는 잿빛을 띤 회갈색이고, 어릴 때에는 수피가 벗겨지면 코르크질이 발달한다. 어린 가지에는 털이 약간 난다. 잎은 타원형으로 마주나는 대생(對生)이며, 잎의 길이는 3〜15㎝ 내외, 너비는 2.5〜6㎝이고, 잎자루(葉柄)는 길다. 잎의 가장자리가 밋밋하지만, 어린 잎에는 겹톱니가 있다. 잎의 표면은 녹색, 뒷면은 연두색이며 잎자루에는 갈색 털이 난다. 이팝나무의 꽃은 5〜6월에 피는데, 새 가지 끝에 원뿔 모양의 취산화서로 달려 2~3주 정도 지속되며, 은은한 향기가 난다. 꽃받침과 화관은 4개로 갈라지고 꽃잎은 흰색이며 너비 3㎜
정도이다. 열매는 핵과로서 타원형이고 검은 보라색이며, 10〜11월에 익는다. 주로 실생으로 번식시킨다.
하얀 꽃이 아름다운 이팝나무는 노지에서 월동이 가능하다. 양수(陽樹)이므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식재하고, 내염성이나 내공해성도 강해 조경용수로서 공원수 및 가로수 등으로 사용한다.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경관수나 첨경수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이팝나무의 다른 종으로는 이팝나무보다 잎이 더 좁고 긴 피침형의 긴잎이팝나무(C. retusus var. coreana)가 있고, 외국에서 육종된 이팝나무 종류로는 두꺼운 혁질(革質)의 진녹색이며 광택이 나는 잎을 가진 Chionanthus retusus var.serrulatus가 있다.
이야기 하나, 설화
이팝나무에 얽힌 조상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경상도의 어느 마을에 18살에 시집 온 착한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큰 제사가 있어서 며느리는 제사에 사용할 쌀밥을 짓게 되었다. 평소 잡곡밥만 짓던 며느리는 처음 쌀밥을 지으려니 혹시 밥이 잘못되어 시어머니에게 꾸중을 듣게 될까 걱정이 되어 밥에 뜸이 잘 들었는지를 알아보려고 밥알을 몇 개 떠서 먹어 보았다. 때마침 그 순간 시어머니가 부엌에 들어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제사에 쓸 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었다면서 온갖 학대를 일삼았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그 길로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었고, 이듬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서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을 나무 가득피워 냈다. 하얀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 나무가 되었다고 하여 동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이팝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 둘, 천연기념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남 순천‘쌍암면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36호)는 나이가 약 4백살 정도로 추정되며 마을을 보호해주는 신이라고 여겨져 오래 전부터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왔으며, 생물학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전북 고창‘중산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83호)는 수령이 약 250살, 경남 김해‘신천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185호)는 수령이 6백년으로 마을 안을 흐르는 작은 개천의 언덕에 서 있다. 가지와 잎이 풍성하고, 나무기둥 곳곳에 혹같은 돌기가 나 있다. 한쪽 가지는 길 건너 우물을 덮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우물을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에서는 음력 12월 말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는데, 지방말로‘용왕(龍王) 먹인다’라고 말한다.
전북 진안‘평지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214호)는 280살로 추정하며, 지역사람들은 이팝나무를 이암나무 또는 뻣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반도 서해안 내륙은 이팝나무가 살 수 있는 가장 북쪽지역으로서 식물 분포학적 연구가치도 크기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경남 양산‘신전리의 이팝나무’(천연기념물 234호).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보호해 주는 신이라고 여겨 매년 음력 1월 15일마다 제사를 올리며 한해 동안의 평안을 빌고 있다.
전남 광양‘광양읍수(光暘邑藪)와 이팝나무’(천연기념물 235호)는 읍성을 쌓은 후 바다에서 보이지 않도록 숲을 조성한 것으로 마을의 허한 부분을 보호하려고 늪에 못을 파고 수양버들과 이팝나무 등을 심은 것으로 비보림(裨補林) 성격의 전통 마을 숲이다.
- 연재필자 _ 이선아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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