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생태문화] 잉카의 신비로운 비밀, 잃어버린 도시 (Lost City)
남미생태문화 탐방, 세상에 없는 경험,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 - 27라펜트l기사입력2017-06-16
Human Nature & Culture 남미생태문화 탐방기
세상에 없는 경험, 우연히 발견한 즐거움 - 27
잉카의 신비로운 비밀, 잃어버린 도시 (Lost City)
글·사진_박미옥 오피니언리더
나사렛대학교 교수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추픽추... 실제로는 마추픽추산 기슭에 감춰진 신비의 도시를 말한다. 산 아래에서는 도시가 보이지 않아 공중도시라고도 부른다.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군대도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감춰진 신비의 도시이며 잉카의 후예들이 숨어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두 사라졌다.

마추픽추의 잃어버린 도시

잉카의 신비, 잃어버린 도시는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 사이에 우르밤바강으로 둘러싸여 숨어있다
아침 일찍 오얀따이땀보를 출발하여 우루밤바강을 따라 쿠스코철도 열차를 달린 끝에 마추픽추마을 아구아 칼리엔테에 도착한 일행들은 비지터센터를 비롯한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본 후 버스를 타고 잃어버린 도시를 향했다. 열차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잉카트레일과 베로니카산을 지나 2시간만에 아구아 칼리엔테에 도착하였다. 해발 2천m정도의 저지대에 도착한 일행들은 고산병에서 벗어나 한결 수월해진 일정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잉카의 신비, 잃어버린 도시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탐험가이자 역사학자인 하이럼 빙엄(1875년-1965년)이 잉카 최후의 수도 빌카밤바를 찾던 중 우연히 우르밤바 계곡에서 발견하였다. 원주민 농부로부터 고대 도시 이야기를 듣고 우르밤바 강 일대를 조사하던 중 마추픽추 산기슭에서 농사짓던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꼬마아이를 따라 산 위에 숨어 있는 잃어버린 도시를 발견한 것이다. 잉카제국이 침략자들에게 짓밟힌 이후 약 400년동안 침략자들조차 알지 못한 채 비밀을 감추어왔다. 마추피추는, 정확하게는 마추픽추산 기슭의 잃어버린 도시는 안데스 산맥의 해발 2,700m의 마추픽추산 봉우리에 숨겨진 약 2,280m 높이의 고원 평지에 자리잡고 우루밤바강의 계곡에 의해 둘러싸인 채 지금도 그 옛날 남미 안데스 일대를 호령했던 잉카제국의 영광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잃어버린 도시 유적은 면적 약 13k㎡, 돌로 지어진 건물이 약 200호 정도 된다. 여러 시대 양식으로 건설된 궁전, 사원, 요새, 가정집, 광장 등이 있으며 관개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잃어버린 도시 중심부 전경

고도 2437m 잃어버린 도시에 선 잉카의 후예들.
뒤 높은 산이 와이나픽추(2693m), 왼쪽 낮은 봉우리가 우추이픽추(2497m)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 개요
1983년 꾸스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7년에는 세계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하루 방문객 수를 2500명으로 제한하며 입구에서 입장객들의 여권검사를 한다. 그리고 방문 스탬프를 찍어준다. 와이나픽추의 경우 500명으로 제한된다.
그런데 세계의 배꼽, 잉카의 중심지 꾸스꼬로부터 약 113km 떨어진 잃어버린 도시, 대략 1천 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도시는 무슨 목적으로 건설되었을까? 침략자들은 이곳의 존재 자체를 알고 있지 못했고 더구나 잉카제국 정복 이전에 도시는 버려졌다. 오얀따이땀보나 삭사이우먼처럼 수도 쿠스코를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인가? 아니면 잉카제국의 황제가 신과 직접 대면하기 위한 곳, 혹은 천문학적 관찰을 위한 곳인가? 어떤 이들은 이곳이 일종의 수녀원으로서 태양신에게 바쳐진 처녀들이 살던 곳이라고도 하며, 우르밤바강의 범람이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를 피해 만든 피난처라고도 한다. 또한 잉카제국 저항운동의 마지막 근거지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한다. 또 다른 견해에 의하면 이곳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고도 한다. 또한 발굴유적의 성분조사 결과 잉카 이전 시대 흔적이 나타나고 있어 어쩌면 잉카문명 이전부터 존재했을 수도 있다.

입구 설명판
가장 유력한 설은 태양신의 후예로 숭배 받은 ‘세상의 개혁자’ 파차쿠텍(재위 1438∼1471년)이 마추픽추를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반면에 망코 카팍이 ‘내가 태어난 곳에 새 개의 창이 있는 석조 벽을 세우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에 근거하여 이곳에 축조된 ‘3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으로 미루어볼 때 망코 카팍이 세운 잉카 최초의 수도로 추정하기도 한다.
도시가 버려진 이유에 대해서는 물과 식량부족으로 여자와 어린이를 버리고(생매장 설이 있음)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설과 전염병 설, 그리고 사제가 신성한 아크랴(태양의 처녀) 한 사람을 범했기 때문에 몰살당했다는 설 등이 있다. 후자의 경우 제니퍼 웨스티우드가 가르시라소 데라베거(잉카왕비와 스페인인 사이에 태어남)의 기록에 근거한다. 아크랴를 범한 사람은 누구든 본인은 물론 그의 신하, 친척, 이웃에서부터 그가 사는 마을의 주민과 가축까지도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마을은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어느 누구도 그 장소를 찾아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175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그중 80퍼센트는 여자, 20퍼센트는 어린이와 사제들의 미라였다고 한다. 그런데 잉카문명의 상징인 도자기, 금속, 섬유 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전략적으로 이곳을 버리고 이동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잃어버린 도시는 위에서 보면 잉카의 영혼 콘도르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며 반대로 보면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라고 한다. 또한 와이나픽추는 앞에서 보면 잉카의 상징인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옆의 작은 봉우리들은 역시 잉카의 상징인 콘도르가 날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와이나픽추를 옆으로 보면 잉카의 황제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 잉카의 슬픔을 지켜보고 있다.

(좌)중앙 광장(central plaza) 주변. 위의 왼쪽은 중앙광장, 오른쪽은 마을. 아래 왼쪽은 수로. 가운데 원형 태양신전 / (우)도시 입구 문(그림 출처 https://formentinatura.wordpress.com)

식물원

파차쿠텍 왕이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전구역(Sacred Plaza). Temple of 3 windows, Principal Temple, Intihuatana

주 신전

3창문 신전
신전구역(sacred plaza)은 잃어버린 도시를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파차쿠텍 왕이 다른 왕족들과 함께 머물렀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3창문 신전, 주 신전, 인티와타나 등이 분포한다.
주 신전(pricipal temple)은 광장 방향에 벽체가 없이 3면을 벽체로 둘러싸고 있다. 중앙벽에 7개 측벽에 5개씩의 벽감(niche)이 새겨져 있다. 잘 다듬어진 돌들로 쌓았으나 지진에 의해 무너지고 있는데 이 부분만 잉카의 전통 공법을 따르지 않고 돌만 쌓아 올렸다. 아마도 어떤 사정으로 급하게 마무리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앙벽 아래에 덩그마니 놓여있는 큰 바위는 책상 또는 주 제단으로 보인다.

인티와타나(해시계)
신전구역 한쪽 인티와타나(Intihuatana,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와이나픽추 봉우리 모양을 닮은 피라밋 위에 해시계가 자리잡고 있다. 1.8m 높이로 다듬어진 돌기둥으로서 마추픽추 유적에서 가장 높은 위치이다. 태양이 두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는 잉카인들의 믿음에 따라 인티와타나는 북쪽 주의자와 남쪽 보조의자가 있고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잡는 하지가 한 해의 시작이라고 한다. 거대한 돌덩이를 깎아 만든 해시계는 돌기둥 그림자를 통해 시간을 측정한다. 돌의 모서리가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대각선 방향으로 태양이 통과한다. 동지날 제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하지에는 정오에 태양이 돌 위에 위치해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고 있으며, 마추픽추 잃어버린 도시 유적에서 가장 신비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마름모꼴 바위는 남십자성(Crux / Southern Cross)을 상징한다. 북반구에서 방향을 살필 때 북극성을 중심으로 찾아간다면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남십자자리)를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곤 한다. 북위 33도 이남에서만 보이며 고대에는 북반구에서도 볼 수 있어 그리스인에게 알려졌지만, 세차운동이 진행되면서 북반구 지평선 밑으로 고도가 낮아졌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천 년경에는 아테네의 위도에서도 남십자성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으나, 기원후 400년경에는 대부분 아테네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센타우루스의 일부로 여겼으나 1679년 프랑스 천문학자 어거스틴 로여(Augustin Royer) 및 1613년 페트루스 플란치우스 등이 남십자자리를 분리할 것을 주장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북십자성은 백조자리(고니자리)를 일컫는다.

남십자성을 상징하는 바위. 나침판으로 방향을 살핌

태양의 신전 (Temple of the Sun)

잉카의 샘(Fountains)
태양의 신전은 자연석 바위위에 세워진 반원형 구조물로서, 자연석 형태에 따라 정교하게 돌을 쌓아 올렸다. 탑 아래 왕의 무덤이 있으며 잘 다듬어진 벽에 2개의 창문이 하나는 동쪽, 하나는 남동쪽 방향으로 나 있다. 원형의 탑은 천체관측소로 알려지며 동지날 태양이 중앙 창문과 일직선으로 떠오른다. 입구 아래쪽 둥근 구멍이 돌 안을 돌아 안쪽으로 떨어지는데 일명 독사의 통로로 불린다. 태양의 신전은 잉카의 황제만 출입할 수 있었으며, 꾸스꼬의 코리칸차와 비슷하게 동지에 위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건기와 우기, 작물의 파종시기 등을 파악한다. 참고로 서로 대비되는 달의 신전은 와이나픽추 중턱에 위치하는데 천연 동굴을 이용해 다섯 군데의 벽감을 만들고 부조를 장식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바위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옥좌가 있다.
태양의 신전과 콘돌의 신전 사이에 있는 잉카의 샘은 마추피추에 있는 17개의 급수대의 하나로서 파차쿠텍왕이 사용했다고 한다. 쿠스코와 성스러운 계곡의 잉카 수로들은 대부분 일년 내내 물이 흐른다. 잉카인들은 잃어버린 도시를 지을 때 마추피추 산에 있는 바위에 물이 고이는 것을 발견하고 바위 아래쪽에 흐르는 물을 고이게 해서 마추피추로 수로를 연결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지하에 여러 개의 제단이 계단식으로 설치되어 있고 벽의 패인 공간에 미이라가 발견되었다. 2단의 제단에는 공물을 둔 것으로 추정된다. 좁은 입구 안으로는 반원형 공간이 좁게 나 있고 삼각형 석실에 옛글자로 문장을 새겨진 돌기둥이 있다.

왕의 무덤(Royal Tomb)

콘돌신전(Temple of the Condor). 오른쪽 위 : 콘돌 날개, 아래: 콘돌 부리

잃어버린 도시의 여러 얼굴들
콘돌은 잉카의 부활을 상징하는데 콘돌 신전 앞에 콘돌 부리모양 부조가 자리잡고 있으며 신전 지하 감옥 입구는 콘돌 날개모양으로 조각되었다. 콘돌신전 지하는 감옥으로서 지하에서 죄수들은 독거미에 물려 죽거나 돌의자에 앉아 죽기도 하였다.
- 글 _ 신혜정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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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키워드l남미생태문화, 박미옥, 나사렛대학교, 남미, 국제생태문화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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