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지구환경문제를 윤리적·종교적인 접근을 통해 개선하려는 ‘세계상상환경학회’가 출범했다. 어떻게 지구환경을 윤리적·종교적인 관점에서 개선하려는 것일까?
창립총회 다음날, 「종교와 지구환경보전연합(ARC)」의 마틴 팔머(Martin Palmer) 사무총장과 세계상상환경학회의 심우경 초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Martin Palmer ARC 사무총장, 심우경 세계상상환경학회 회장
한국과의 인연은?
마틴 팔머(이하 팔머) : 반기문총장이 ARC 모임에 축사를 하러 왔는데, “80개국 중 왜 한국이 없느냐”고 물었다. 지난해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는 중국 도교협회 학술회의에서 최병주 세계금선학회 회장을 만나 심우경 교수와 인연이 닿았다.
심우경(이하 심) : 지난해 영국 바스(Bath)에서 개최된 ARC회의에 한국을 대표해 초청받았으나 마지막 학기라 참석할 수가 없었고, ARC와는 그동안 이메일로만 연락을 해왔다.
한국을 첫 방문한 소감은?
팔머 : 80개국이 활동하고 있는 ARC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심우경 교수라는 분께서 '상상환경학회를 창립하니 이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의아했다.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왔지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도착 다음날 마니산 참성단에서 개최된 개천절 행사에 참가하게 됐다. 심 교수가 메일에 참성단에 올라가는 계단이 가파르고 힘드니 특별히 헬리콥터를 준비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성스러운 곳은 걸어올라 가겠다’고 답했었는데 무척 힘들게 올라갔다. 참성단에서 제복을 갈아입고 엄숙한 제례에 참여했는데 외국인으로는 역사상 처음이라는 설명에 소름끼치는 감격을 맛보았다.
내려와서 481년에 창건됐다는 전등사에 들렸다. 아름다운 사찰건물이 감동적이었다. 특히 대웅전 뒤편에 위치한 삼성각이라는 건물에 불교와 관련 없는 신들을 모시고 있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계는 각 종교들의 파워게임으로 전쟁이 멈출 날이 없는데 한국에서 각종 신앙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접하고 나니 전 세계가 배워야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4일은 하루 종일 행사가 개최되었는데 매우 빡빡한 일정에 시차까지 겹쳐 힘들었지만 빈틈없는 행사 진행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내가 심 교수를 위해 중국 최고의 서예가에 부탁해 ‘세계상상환경학회’ 휘호를 선물했는데 매우 잘 한 일이라 판단된다. 참석자 대부분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오후 7시 늦게 까지 경청하는 모습을 보고 또 감동을 받았다. 특히 이번 행사에 함께 초청된 미국인 그레이(Gray)씨는 전부터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만나게 되어 매우 반가웠다. 그레이는 전 세계의 성지만을 찾아다니며 취재하고 찍은 사진을 엮어 『성스러운 지구(Sacred Earth)』라는 책을 출간했다.
기조연설을 한 최광식 전 장관이나 하버드대 커크우드 교수, 네팔 룸비니동산계획에 상상환경복원 취지를 반영한 곽영훈 회장의 발표도 매우 인상적이었고, 간간히 도입된 아름다운 한국 전통음악 연주도 다른 국제행사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국제학술회의였다.
오늘 오전, 창덕궁 후원을 관람했는데 그 아름다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월요일이라 휴무임에도 불구하고 소장님의 특별 배려로 입장할 수 있었다. 곳곳에 담겨진 상징성, 평화롭고 아름다운 창덕궁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출국시간에 쫓겨 일부만 보았지만 다음에 기족과 꼭 다시 오고 싶다.
이번 한국 출장을 찰스황태자나 필립공에 보고하니 매우 궁금해 했다. 다녀와 자세히 보고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자랑할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내년에 국제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고 싶다.
10월 3일 개천절행사 ⓒ심우경
ARC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팔머 : 세계은행은 빈곤퇴치와 동시에 지구 생물다양성 보호에 애쓰고 있다. 이런 목표를 함께 수행하고 많은 경험을 가진 단체를 찾는 과정에서 세계은행은 주요 종교계와 손을 잡았다. 1986년 세계자연기금(WWF)의 회장인 HRH The Prince Philip(에든버러 공작, 필립공)은 세계 5대 종교(기독교, 불교,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환경운동 지도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이 모임이 계기가 되어 생태적인 관점과 개발문제를 다루는 주요 종교단체를 연계시킨 것이다. 당시 나는 WWF 종교자문관으로 필립공을 도운 게 인연이 되어 종교를 통한 지구환경보전에 동감하고,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
Assisi; 이 도시는 ‘생태학의 아버지(father of ecology)’라 불리는 성 프란시스코(1182~1226)의 고향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성 프란시스코는 프란시스코회의 창시자로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그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가장 헌신했던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 교황의 이름도 이 성인의 이름을 따랐으며, 지난 5월 지구온난화에 대한 소견을 80페이지에 걸쳐 기독교인들도 지구환경보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호소한 바 있다.
종교를 통한 지구환경보전을 아시시에서 만나 논의하기 시작한 10년 후인 1995년, 이 모임에는 9개 종교로 늘어났고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동참했다. 그해 필립공은 비정부단체인 ‘종교와 지구환경보전연합(Alliance of Religions and Conservation, 이하 ARC))’를 결성했다. 단체는 WWF, 영국방송협회, 세계은행 등 다양한 단체들과 협조 하에 주요 신앙단체가 환경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ARC는 영국 Bath에 기구를 두고 있으며 직원 4명이 운영하고 있는데 기구를 늘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예산은 전 세계 80개국에서 지원해주고 있고, 각 나라에는 1명씩 책임자가 있다.
ARC는 UN산하의 가장 영향력 있는 NGO단체로, 우리가 아우르는 종교는 현재 12개 이다. 종교지도자들에게 지구환경의 중요성과 지구환경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밖에 투자기관, 환경단체, 정치인들도 생태적으로 건전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조언을 한다.
전 세계적으로 내가 저술한『종교와 자연보전』 책이 여러 언어로 번역해 출간했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학생용 『종교와 자연보전』도 127개국에 번역이 됐으나 한국어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심우경 교수가 2003년 아내와 함께 집필한 『지구환경보전과 신앙』을 한국에서 번역 출간해줘 매우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
지구환경을 지키는 방법으로 왜 종교를 택했는지?
팔머 : 세계적으로 지구환경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과학의 발달로 지구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 자연을 파괴시키고 있기 때문에 지구환경을 보존하기 위해서 사람의 정신을 바꾸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 해답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관이고, 존경할 필요가 있는 지혜를 가진 종교단체에서 찾자는 것이다.
ARC가 아우르는 12개 종교 인구는 세계 인구의 2/3에 해당한다. 이들은 지구상의 생물서식지 7%를 소유하고 있고, 모든 학교의 54%를 이끌고 있으며, 이들 기관이 세계투자시장의 6~8%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같은 경우는 도교가 국교이다. ARC는 도교사원 입장료의 10%를 친환경적으로 사원을 개조하도록 설득을 하고 있다. 각 종교마다 가지고 있는 종교부지가 있다. 이것이 지구면적의 7%를 차지한다. 이것을 관리하는데 생태적으로 건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 : 지구보전을 생태학적으로, 과학적으로만은 안 된다는 사실을 UCLA White교수가 1967년 『Science』에 실은 ‘지구생태 위기의 역사적 근원(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al Crisis’라는 글에서 알 수 있다. 유일신 종교들이 인류의 보편적 문화인 토속종교와 각종 성지를 우상숭배 금지 차원에서 파괴시켜온 것이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파격적인 기사를 올린 것이다. 그는 마음을 개조하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자연을 어머니(Mother Earth 사상, 이 사상은 인류의 보편적 사상이었음)라고 믿는 동양적 신앙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동양에는 불교의 불살생, 도교의 무위자연, 유교의 대동사상, 제신을 모시는 일본의 신도, 유‧불‧도를 합친 한국의 풍류사상이 있다. 그에 반해 서양인들의 자연정복사상과 자연을 경제 대상으로만 보는 태도는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이 같은 사실의 파악은 굉장히 중요하다.
창덕궁 후원 부용정
세계상상환경학회는 ARC와 함께 어떤 일을 하는지?
심 : ARC는 지구환경보전문제를 정치적으로 전 세계인들을 설득하고 있지만 나라마다 상황이 달라 기술력을 보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실천적 기술은 없는 단체이다. 세계상상환경학회(Research Institute for Spiritual Environments; R.I.S.E.)는 지구환경을, 특히 종교적 聖地[sacred place, sacred mountain, sacred grove, sacred rock, sacred well, sacred grotto, sacred tree]를 어떻게 보존하고, 보전하고, 개발해야 할지에 대해 특화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범세계적인 조경인들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게 됐다.
학회는 우선 기존의 종교 부지를 대상으로 한다. 사찰림, 도교림, 신도림 등 고등종교에서 가지고 있는 숲이 있고, 토착신앙에 의한 마을숲, 당산숲도 있다. 우리학회는 그곳을 지키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며, 어떻게 보전‧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 설계기법을 개발할 것이다.
신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고, 숲을 지키면 그 파급효과로 지구가 지켜진다. 핵심은 신앙적으로 성스러운 곳, 각종 종교에서 관리하는 숲을 지키는 일이다. 그밖에도 도시재생사업 속에 토속신앙 공간을 도입하도록 해 주민들의 공동체 형성의 중심장소가 될 수 있도록 연구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구환경보전에 대한 특화된 전문교육을 진행한다. 산하에 교육기관인 오라이즈 아카데미(O'RISE Academy; Academy of OBONG Research Institute for Spiritual Environment, 五峯은 심 교수의 호)를 두어 다양한 전공자 중 지구환경문제에 관심이 큰 인재를 모아 각 분야의 교수들이 실제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과 기술을 교육한다.
교육은 각 나라의 민속 문화 이해를 강조하고 각 나라에 맞는 교육내용과 방법으로 고유성을 지키며 신앙적으로 중요한 장소를 대상으로 계획‧설계 방법을 특화된 교육방법으로 교육할 것이다. 여름‧겨울 방학을 이용해 기숙강의로 1개월간 12과목을 이수하게 한다. 국제적 교수진을 최고의 대우로 초빙하고 수강생도 국제적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당분간은 한국에서 강의하지만 각 나라 지부를 돌아가며 이론 강의, 실습, 현지답사를 병행한다. 전 과목은 영어로 진행되고, 수료증은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ARC회장이나 UN으로부터 받아낼 계획이다.
ARC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전폭 지원해주기로 했으며, 함께 협조해 지구지킴이 전문가가 되도록 연구하고 실천할 계획이다.
조경인에게 한 마디.
심 : 조경의 대상은 지구전체이다. 국립공원은 보존을 해야 하고, 비옥한 논밭은 보전을 해야 하며, 보존, 보전가치가 부족한 그 외의 땅은 개발도 해야 한다. 즉 PCD개념(preservation, conservation, development concept) 지키면 지속가능한 개발이 된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전공분야는 조경밖에 없다. 건축‧토목은 인간만을 위한 자연 파괴이고, 도시계획, 국토계획 분야는 2차원적인 토지이용계획 정도이다.
보존과 개발은 서로 반대개념이지만 지속적인 개발을 하자는 것이 세계적인 주장이다. 개발을 하되 지구를 살리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1,500여 년 전인 고려시대「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을 설치해 개발목적 맞는 장소를 풍수지리적으로 택하고, 부족한 부분은 돋워주고, 너무 강한 부분은 눌러 주는 국토이용정책을 도입한 바 있는데 이 같은 자세나 정책이 지속가능한 개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상환경을 조경영역에 도입하는 것은 조경의 업역을 무한대로 크게 키우는 일이다. 하드웨어적인 설계는 물론이고, 문화적인 소프트웨어를 추가한 종합적 설계를 시행해야 하는 것이다.
조경인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일거리를 창조해야 한다. 정부가 다 만들어서 주고 대기업이 하도급 주는 일만 받아먹는 안일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뉴욕의 하이라인, 영국의 가든 브릿지, 곡성에 천사장미원처럼 조경인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일거리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지금처럼 어설픈 예술실력을 동원해 아름답게만 치장하는 조경만을 해서는 안 된다.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지만 우리나라 조경은 전문성 부재가 심각하다. 지금 인접분야가 살기위해 발버둥 치며 조경의 업역을 뺏는 것도 조경이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강사 초빙, 장소 물색, 프로그램 개발, 홍보, 재정문재를 혼자서 힘들게 추진했는데, 다행히 성공적인 결과라는 평가를 받게 되어 그간의 노고가 위로 받게 됐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 조경인들 참여가 전무한데 대해 분개심을 느낀다. 물론 상상환경이라는 낯선 용어를 사용한 탓도 있겠지만, 그간 조경에서 상상환경복원의 중요성은 이미 2008년 전통조경학회에서 발표한 바 있고, 고려대 대학원에는 역시 2008년부터 과목을 개설해 강의해 왔는데 한국 조경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안이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안 간다.
이번 행사를 통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고 ARC 사무총장 팔머 씨가 방한 중 바로 영국 사무실에 연락해 11월 17, 18일 런던에서 개최되는 ‘지구환경보전과 신앙’ 워크숍에 공식초청장을 보내게 했다. 이 회의에 참석해 상상환경학회의 향후 5개년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필립공이 개회사를 하는 중요한 국제회의인데 개인적으로는 영광이고, 한국도 이런 국제환경단체에 가입할 수 있게 된 데에 대해 고생의 보람을 느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우리나라 조경인들의 동참을 호소한다.
나는 40년 동안 조경업계와 학계를 위하여 국내외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또 퇴직 후에도 조경계를 위해 사력을 다해 뛰고 있는데 발목을 잡는 후배들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니산 ⓒ심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