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 1872~1945)는 1938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를 출간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놀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를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
전 교수는 "삶의 공간인 도시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류의 문명은 누적되면서 도시를 탄생시켰다. 근대에 들어서면 원근법과 통계학 등의 발달로 도시는 인간의 오감 가운데 유독 시각에만 편중되게 된다. 시각적 지배가 권력의 근원이자, 권력의 본질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전 교수는 "언어, 욕망, 추억, 사랑 등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매년 수백만 명이 모이는 이스탄불은 오십 년 동안 같은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의 추억과 문자, 색깔, 이미지가 공존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는 시각 도시가 아니라 오감 도시로 전반적인 사고 체계가 바뀔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간은 오감적인 존재이며, 지금의 시대는 전례 없는 감각혁명 시대라는 설명이다.
샤론 주킨(Sharon Zukin)은 도시의 진정성은 어반 테루아(Urban Terroir)라고 주장했다. 각각의 포도밭에서 각각의 와인이 생산되듯, 도시는 공상품이 되어서는 안되고 비슷해서도 안된다는 의미이다.
요즘은 경제구조도 점차 상업경제에서 체험경제로 바뀌고 있다. 전 교수는 "오감을 잘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도시, 오락적이고 일탈적인 도시가 되어야 한다. 특히 보행과 친화력을 가진 걷기 좋은 도시에서 오감은 가장 극대화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젠가 서울도 고유의 바탕음과 바탕색, 특유의 냄새와 향기를 찾아야 한다. 도시를 관리하고 계획하는 사람은 거기까지 신경 쓸 수 있어야 한다."며, "그때 그때 변경할 수 있는 임시 가변적인 공공 공간, 즉흥적으로 바꿀 수 있는 놀이공간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