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낯선 도시를 향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30년전 잃어버린 나의 기억을 찾기 위함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으로 부터 시작하여 사회적인 사건의 모호한 경계에 섰을 때, 나는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열 다섯 살, 체르노빌과 나의 인연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비가 오면 나는 또래의 친구들과 밖으로 나가 몸을 적시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 빗물을 받아들였다.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은 우리가 비를 맞지 못하도록 했다. 먼 곳으로부터 날아온 먼지가 빗물에 섞여 내린다는 게 이유였다. 그 후로 나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다녔고, 비를 맞지 않았다. 천구백팔십육년 사월 무렵이었다.내가 체르노빌에 가서 찍은 대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사모셜르(Samosely) 즉 체르노빌의 원주민 분들이었다. 이 분들은 강제 이주되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방사능의 위험에도 고향집으로 돌아온 분들이다.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는 비를 맞지 못하고 다닌 모든 기억이 사모셜르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저지른 큰 재난 속에서도 다시 자라나는 체르노빌의 수풀처럼, 이분들은 자신의 터전에서 견디며 살아가시는 분들이다.프리피야트Pripyat.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의자들, 아무렇게나 열려있는 창문들, 군데군데 벗겨져 마치 생선의 비늘을 연상케 하는 빛 바랜 벽지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위로 두텁게 쌓인 먼지들. 이런 풍경 사이로 유령처럼 방사능이 떠다닌다. 첫 번째로 찍은 대상이 사모셜르라는 사람이었다면, 두 번째로 찍은 대상은 프리피야트라는 공간이다.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만만치 않는 방사능 수치는 마치 우리에게 결코 이러한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방사능이라는 경고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