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첼시에서 볼 수 없었던 플랜팅 기법과 디테일”
2012년 첼시 플라워쇼를 찾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황지해 작가의 ‘고요한 시간 : DMZ 금지된 화원’의 감상이다.
6월 12일(목) 서울대학교 농생대 9층 맨 끝의 작은 강의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에게 황지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환경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장식적 개념과 무생물에 대한 한계에 부딪혔다. ‘무언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그녀는 늘 생각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조경’이었다.
2007년 어느 날, 러시아를 횡단한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CD에 담긴 한 조형물로 그녀는 ‘첼시 플라워쇼’에 대해 알게 된다. 회사는 동생에게 맡기고 무작정 런던으로 떠난다.
2010년까지 첼시의 동향을 살피던 그녀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하고 이듬해 ‘해우소 : 마음을 비우는 곳’이라는 작품을 내놓는다.
해우소 : 마음을 비우는 곳 (2011)
화장실. Toilet. 이것이 정원의 주제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장실이 주는 이미지는 더러움, 냄새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미지와 대조되는 향기로운 꽃. 분뇨가 땅을 비옥하게 하고, 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을 인간이 먹는 순환구조를 통해 그녀는 인간의 겸손에 대해 느꼈다고 말한다. “게다가 해우소 : 마음을 비우는 곳이라니!”
시공 시 에피소드가 있다. 해우소의 돌담은 자연스럽고 오래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그녀는 전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계곡에서 돌을 공수했다. 전시가 끝날 때까지만 쓰고 다시 가져다놓는 조건 하에.
우리나라에 해우소를 시공할 때도 알맞은 돌을 찾기 위해 그녀는 시골을 찾았다. “진짜 예술가들은 시골에 다 있다” 는 그녀는 시골할아버지와 담장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돌을 쌓는 것도 굿거리장단을 치듯 쌓다보니 바람 불면 무너질 것 같은 멋진 돌담이 완성됐다. 여담이지만, 돌담의 안전성에 대해 지역 공무원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돌이 굴러 떨어지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그녀가 습식쌓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시멘트를 발라 고정시키지 않은 것은 산에서 공수해 온 돌들도 하나의 비오톱이며, 돌 틈에 무수한 생물들이 둥지를 틀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제로 삼각형구도에 담 하부에 무게중심이 있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고요한 시간 : DMZ 금지된 화원 (2012)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고민을 했다. 피상적이지 않고 내면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정원 말이다.
해외에 있으면서 동방의 고요한 나라는 존재감이 없으며 전쟁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것을 느낀 그녀는 우리나라의 존재감을 알리고 이미지를 전환하기 위해 DMZ를 선택한다. 60년 동안 봉인된 상자 속에서 ‘자연의 재생력’을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런던에 있는 참전용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동안 땅속에 있다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아지랑이가 피더라. 이미 죽은 친구와 내가 죽인 중국 군인이 있었다. 그 상처와 공포를 여태껏 단 한 번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첼시를 통해 멋진 정원을 만들어 달라” 80세가 넘은 노인의 말이었다.
그녀는 공간과 식물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한국에 들어와 민통선을 따라 산꾼이 다니는 코스를 다니며 DMZ를 이해했다.
DMZ정원을 통해 그녀가 보여준 디테일은 모두가 찬사를 보냈다. 편지더미에 사용된 편지는 직접 이산가족에게 편지를 구해 사본으로 꾸려졌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친동생의 군화를 구해 걸어두고, 집시촌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서 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공수해온 머루와 다래 덩굴을 휘감아 두루미천남성 등 음지식물 위에 덮기도 했으며 바위 위에 뻗은 나무뿌리 하나에도 원래 있었던 것처럼 세심한 손길이 닿았다.
시공당시 그녀는 온 몸에 카메라가 달려있다 생각하고 모든 앵글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한 부분만 봐도 정원 전체를 느낄 수 있도록. 이러한 그녀의 노력은 그해 새로 생긴 ‘회장상’ 수상의 영예로 이어졌다.
DMZ와 해우소, 트렌드를 만들다
우리나라의 꽃박람회와 개념이 다르다는 첼시 플라워쇼는 그녀의 말에 의하면 조경의 경계를 약간 넘은 전시회이다. 단 5일 동안 열리며 15만7천명만 들어갈 수 있다. 표는 3개월 전에 매진된다고 하는 권위 있는 전시회다.
첼시를 통해 스타가 배출되고, 뽑힌 정원은 한 해의 정원 트렌드를 만든다. 그녀의 두 작품 이후, 첼시에는 ‘자연주의로의 회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3 수상작을 보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터널 끝의 빛, △자연의 재생력 등 DMZ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과 해우소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화장실 정원이 출품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는 데 있다”며 “자연을 돕는 일을 하는 우리의 일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한편, 2013년 첼시에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젊은 조경가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다. 이들에게 부족한 자금을 위해 올해부터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 BBC와 RHS가 공동으로 기획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나라의 K-pop star와 같은 정원서바이벌로, 가장 멋진 정원을 뽑아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10X12m의 일반적인 쇼가든 규격이며, 학생 등 아마추어여야 한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평면도와 스케치, 식재리스트를 6월 20일까지 보내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대학교 농생대 조경과(02-880-4670)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