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농오교수, 해양관광개발도 조경인의 몫!

[대학조경학과 연구실 탐방⑪] 목포대 연안환경연구소
라펜트l기사입력2012-06-07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생각이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환경문제해결의 최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곳을 다니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어야 하며, 내가 사는 지역의 조경사업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장 속에서 경관개선의 지혜를 얻는 데에도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목포대 김농오 교수가 평소 수업시간에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스스로 보고 느끼고 배우며, 조경인이 국토환경을 명소화, 명품화 시킬 수 있는 경영마인드도 가지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5 20일 전라남도 공공디자인위원회 내에 7개 분과위원회가 출범했다. 기존의 공공디자인위원회 6개 디자인분과위원회(광고물디자인분과, 문화상품디자인분과, 포장디자인분과, 도시경관디자인분과, 가로시설물분과)에 조경분과가 새로 편성되면서 녹색디자인 전남 비전선언식과 아울러 경관개선토론회도 개최됐다. 전라남도만의 특성을 가진 친환경적이고 창의적인 공공디자인, 경관디자인을 창출을 기원하며 출범된 것이다.

 

지자체 내 하나의 분과로조경이 구성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특히나 지방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여기에는 김농오 교수의 노력이 컸다. 2012 5월부터는 공공디자인 분과 위원 100명을 대표하여 부위원장직을 맡아 전남도지사를 대리하며 전남경관 개선에 앞장을 서겠다는 그다.

 

11번째 대학조경학과 연구실 탐방의 인터뷰이 김농오 교수는 1982년부터 현재까지 목포대학교 조경학과에 근무하면서 광주전남지역, 도시계획, 건축, 문화관광, 공원, 광고물, 경관, 환경, 건설 등 여러 전문위원활동을 비롯해, 최근에는 국토해양부 4대강사업과 문광부가보고 싶은 섬자문 등 국책사업에도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김농오 교수

 

조경이란 학문을 하게 된 계기는?

이름농오에서자는 한자로 농사 농農이며, ‘자는 오동나무 오梧자이다. 서울대학교 농생대학 조경학과를 선택한 동기기도 하다. 상상의 동물인 봉황새는 이 오동나무에만 깃들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동나무는 귀한 나무로 인식되어 왔고, 때문에 관상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목포대도 나무 목木자를 쓴다. 캠퍼스가 있는 무안군 천계면 道林里에는 나무木이 두개나 있다. 뭔가 이름에서부터 인연이 있었던 듯 하다.

 

1974년 서울대 농생대에 입학한 뒤 안건용 교수님 등에게서 수학을 했다. 이후 디자인, 관광레크레이션, 여가공간계획 등을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유병림 교수님 등께 배웠다.

학자의 길로 들어섰을 때 안 교수님께서는조경 불모지 호남땅에 조경을 잘 가르치라는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서울대 후배들의 석박사 논문을 챙겨주시는 자상함에 신임 교수시절부터 큰 힘을 얻었다. 

 

관심분야가 있다면?

현재 목포대 연안환경연구소장을 4년째 맡고 있으며 전라남도의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비롯한 해양관광 프로젝트 수행과 아울러 해양관광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제자들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전남발전 연구원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의 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중국제학술교류 협력체계를 구축 중에 있다.

 

수행한 해양 프로젝트에는 관매도 개발계획안, 진도군, 홍도·신안군·완도군 관광계획, 완도군 해양바이오 클러스터 기본계획, 광대섬(진도) 관광개발 계획안 등이 있다.





 


지역사회의 많은 부분에 관여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1982년 목포대 교수로 부임하기도 전에 유달산 공원화 사업에 관여한 것이 첫발걸음이었다고 본다. 1981 11 28일 결혼하여 신혼여행을 일부러 목포로 왔고 당시 목포시 도시국장과 함께 눈보라가 휘날리는 유달산 정산에서 일주로 등 레이아웃을 했던 일까지, 유달산 공원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첫 결실이었다.

 

두 번째는 1988년부터 시작된 삼학도 공원화 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했던 점이다. 공업용지 10만평을 공원용지로 용도변경하고 1999년 국가를 움직여 삼학도 공원화사업을 실현시켜 조만간 개장을 앞두고 있는데, 좋은 기록으로 남겨졌으면 한다. 

 

1991년에는 광주천이 복개될 위기에 놓였던 적이 있다. 당시 영산강 살리기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광주천은 영산강의 상류 오염원이기도 했다. 영산강은 목포앞 신안 앞바다로 흐르는 강이었고 영산강이 맑아지기 위해서는 상류천인 광주천부터 정화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광주광역시 녹지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 기본 계획에서 광주천 복개를 반대했다. 이후 시민운동이 일어났고 현재, 광주천은 환경친화형 하천으로 거듭나고 있다. 1993년에는 광주 5,18기념사업과 관련하여 도청이전 부지공원화 상무지구 내 5·18기념공원조성 등의 가시적 성과를 제시한 기억도 난다. 당시 공원이 조성된 후 광주시민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홍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제자들과 함께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1988년부터 연구하면서 관심을 가진 섬, 홍도가 있다.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록할 만한 섬으로 다도해상 국립공원이자 천연기념물 170호이기도 하다.

 

홍도는 천혜 자연이 숨쉬는 곳으로서 관광객은 꽤 있었으나 법적으로 제한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홍도의 주민들은 섬 내에서의 활동에 제한을 받기 시작했고, 외부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와 숙박업을 하게 되면서 불법으로 주택 등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불법건물이나 인공건축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대규모 선착장도 들어서게 되었다. 난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로인해 주민들 대부분은 범법자가 되었고 주민들의 원성은 극에 달했다.

 

1999년 당시 대학원생과 함께 논문발표 준비차 홍도에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홍도 주민들과 함께 개최한 홍도천연생태공원 공원화방안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떡도 만들고 마땅한 호텔이나 장소가 없어 나이트 클럽에서 플랜카드를 걸고 주민들의 한을 달래기도 했다. 심포지엄을 통해 해결책을 제시했을때 주민들의 박수를 받았던 것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다행이 그해 연말 국회 도서분과 위원회에서 섬 특강강사로 갈 기회가 생겼다. 홍도를 예로 들며 제도적인 문제점을 제기했고, 우리나라 전체 국립공원 구역을 재조정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2008년에는 전라남도 생태공원화 방안 심포지엄에서 갯벌자원의 공원화 방안을 제시했던 일도 있었다. 이후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갯벌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계속 이러한 가시적 성과가 서해안 곳곳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큰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목포대학교 조경학과 창설 30주년을 기념하며, 졸업생들이 기금을 모아 교내에 기념공원도 조성했다. 학과 백서도 발간했고 장학기금도 확보해 가고 있다. 학과 강의실 및 연안환경연구소, 대학원실, pc, 계획설계제도 실습실 등의 혁신으로 학습효과를 드높이고 졸업생들의 동문기업 및 조경학과 가족회사들과의 산학협력을 통한 현장실습을 강화하고 있다.

옥상녹화를 통한 조경소재 전시공간 및 학생 휴식공간의 확대 및 복도 상설전시관의 리모델링을 통한 교육여건개선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보면 지난 2년 간 한국조경학회 호남지역 학회장을 맡았다. 중책을 맡으면서 느낀바가 있다면 조경분야가 너무 분산되어 있다는 것이다. 분산되다 보니 전문가들의 융합이 어렵고 조경인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도 알았다.

 

그러나 사회의 분위기도 통합을 요구하는 시대로 흘러가고 있다. 조경이야말로 융복합의 중심에 서야한다. 특히, 업계와 학계의 협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학교 내 교육시스템도 보다 실무적으로 바뀌어야 하며, 취업의 문도 열어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7차 산업이라고 하는 봉사, 선교, 신앙 활동도 잘 하고 싶고, 선교활동도 최선을 다해 보고자 한다.



 

30주년 기념공원에서


10
년 넘게 추진했던 삼학도 공원의 개장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주변 사람들은 세계조경역사에 기록될 만한 업적이라고도 한다.

학계나 국토조경발전을 위해, 또 지금 생활하고 있는 전라남도의 경관개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김농오 교수 자신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경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영호남, 서울지방을 초월해서 삼천리 금수강산의 명품화, 브랜드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또 남한땅 뿐만 아니라 금강산이나 개성 등의 북한땅의 조경도 꼭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또 봉사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김농오 교수의 미래는 여전히 즐겁다.

강진솔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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