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희영 현대산업개발 前 상무

“새로운 길 위에 서서”
라펜트l기사입력2013-03-24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의 '고향' 중에서

 

짙은 녹색의 편안한 복장이 여유로워 보였다. 처음 평상복을 입고 인터뷰를 갖는다는 오희영 前 상무(현대산업개발)이다. 대형 건설사 조경직으로서 30년여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그가 2012년을 끝으로 회사생활을 마감했다. 누구의 권유가 아닌 자신의 결정이었다. 맡은 업무량도 상당했고, 사내에서도 두터운 신망을 받는 그였기에, 모두가 퇴사 결정에 의아해 했다. 그러나 오희영 前 상무의 대답은 명료했다. '조경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모든 건설공종의 마침표는 조경이 찍는다. 조경으로 이용자가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더 남아 있어도 되지 않는냐는 말씀을 하신다. 건설사 내에서도 아직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조경쟁이답게 정갈하게 마무리 하고 싶었다. 멋진 마무리라고 응원해 주는 주변분도 있어 마음이 한결 편하다"

 


 

쉽지 않던 건설사 입사초기

건설사 조경직에게 오희영 이름 석자가 의미하는 것은 크다. 그는 대형 건설사 최초로 조경직을 독립시켰고, 임원 자리까지 오른 장본인이다. 건축, 토목에 비해 조경의 사업적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오 前 상무가 대기업에서 조경직을 독립시킨 것은 조경뿐만 아니라 인접분야에서도 하나의 사건이었다. 다른 건설사 조경직도 그의 행보를 보며 희망을 그렸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건설사 조경직의 대부'라는 수식이 따라붙는다.

 

그런 오희영 前 상무지만, 경력직으로 현대산업개발에 입사한 1982, 그의 앞에 닥친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전 회사에서 현장소장(숭인공원, 석촌호수 등)하던 사람이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 하였고, 조경 관련 사무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회사에서 유일한 조경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개발이 붐을 타며, 그의 앞에 놓이기 시작한 생소한 해외설계설명서와 도면더미는 좌절감까지 맛보게 했다. 하지만 오희영 前 상무는 관련 전문가를 수소문하고, 발로 뛰며 직접 찾아다니며, 새로운 해외 조경프로젝트를 완수해 냈다.

 

"입사 초기, 사실 후회를 많이 했다. 국내 조경공사만으로도 충분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일이 있으면 알아보고, 직접 찾고야 마는 성격이어서 해외건축부 당시의 기억이 많이 남고 보람도 있다. 새로운 길을 찾는 산사람 기질이 배인 것 같다."

 


1990년 4월 회사에서(좌), 미사리 국가대표 연습구장 준공식에서 공로패 수상(우)

 

산과 조직에서 배운 이치

오희영 前 상무의 강력한 리더십과 업무 추진력의 바탕에는 ''이 있다. 오희영 前 상무와 ''은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전문 산악인'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니 이제 45년이 됐다. 유럽의 최고봉인 엘부르즈와 남미 최고봉 아콩가구아 등 4대륙 최고봉을 정복하였고, 내년에는 북미 매킨리봉 등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상악화와 미비한 준비로 정상을 밟지 못했던 중국 청해성의 강스카봉이 더 강렬히 각인되어 있다.

 

" 산은 언제나 많은 가르침을 준다. 산행에 많은 준비를 했다하더라도 날씨가 급변하고, 몸의 무리가 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욕심부리다 자칫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비한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 포기라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아콩가구아 정상, 엘브르즈 정상, 불암산 경수사 빙벽폭포, 강스카봉
 

 

오 前 상무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에 더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도 강조했다.

 

"요즘 젊은 사람 중에는 명석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상대방에게 '예의범절' '도리'를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을 갖추었을 때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오희영 前 상무가 친구 집에 방문하면, 친구 부모님께 큰 절부터 올렸다고 한다. 윗사람이건 아랫사람이건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키면, 나빠질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생활에서도 적용됐다.

 

"직장생활의 전부가 조경영역 확장에 대한 시간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경직이 신설되고 유지시키는 것도 상급자와 동료직원들에게 '조경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긴 과정을 통해 이룰 수 있었다. 독립된 영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 부하직원이 바로서야 했다. '역시 조경, 잘했다'는 공감대 형성을 위한 부서간 협조도 중요하다."

 

그래서 그가 강조한 것이 '정직' '역량'이었다. 부정과 무능은 신뢰를 져버리기 때문이다. 조경의 파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갈고 닦아야만 했고 그래서 그는 직원 한명 한명이 13역을 하도록 독려했다. 이는 비단 기업조직에 국한되는 원리가 아니라고 오 前 상무는 강조한다. 그래서 앞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것도 후배들과 공유하면서 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 2, 나눔과 공유

"인생에서 하나의 변곡점을 지나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앞으로 사업을 할 것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지금은 토목, 건축 등을 섭렵하며 경험했던 지식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후배에게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지금까지 진행하던 대학과 대학원 강연은 지속적으로 가질 예정이다. 자연공원을 주제로 한 집필도 준비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희영 前 상무에게는 회사생활에 묶여 가보지 못했던 ''에 대한 목표가 크다. 단순한 등산이 아닌 전문 등정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산을 즐기기 위한 지속적인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사학위 수여식. 가족과 함께

 

조경인에게

마지막으로 그가 조경인에게 하고 싶은 말도 산 속에 있었다.

 

"무릇 자연환경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자연을 닮아야 한다. 자연스러움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작은 것에 매여 경계를 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우리 조경인들은 명분과 대의를 놓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믿을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깊이 있는 큰 산이 되어야 한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과거 새로운 길을 찾는 데에서 즐거움을 찾았다는 그이다. 지금껏 오희영 前 상무가 찾고 걸어온 새 길이 단순히 물리적 길만은 아닐 것이다.

 


 

글·사진_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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