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용산공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시는 ‘용산공원’, ‘한성백제유적’, ‘성균관과 문묘’ 3건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추진대상으로 최종 선정했었다.
세계유산분야 전문가들은 용산공원을 우리나라를 둘러싼 19세기 말에서 20세기까지 식민지 열강과 냉전체제의 현장이자, 반드시 기억하고 보존해야 하는 공간으로서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서울시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용산공원의 세계유산적 가치 규명 학술대회’를 24일(금) 14시 서울시립미술관 세마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학술대회는 전문가 기조강연 및 주제발표, 자유토론을 4시간에 걸쳐 심도 있게 진행된다.
발표는 ▴조광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을 필두로 ▴신주백 연세대학교 교수 ▴김인수 서울시 공공조경위원회 위원장(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 대표) ▴김종헌 배재대학교 교수 이렇게 각 분야 전문가 4인이 나선다.
시는 학술대회를 통해 규명되는 가치들이 용산공원 조성에 반영돼 과거의 기억, 흔적들이 유산으로써 보존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 용산과 용산공원 약사 -
1. 고려시대
- 고려 숙종 6년(1101년) 용산이 남경의 후보지로 거론
2. 조선시대
- 성저십리(城底十里) 관할 구역
- 호구총수(『戶口總數』)의 용산방에 오늘날의 청파동, 원효로, 신창동, 용산동, 서계동, 산천동, 청암동, 만리동, 도화동, 공덕동, 마포동, 토정동, 용강동 등이 포함
- 한강을 통해 들어온 전국 각지의 목재와 세곡 등 물자를 집적하던 곳,
군자감, 별영창, 별고 등 국가에서 세운 여러 창고가 집중
3. 대한제국기
- 1884년 일본의 개시장으로 결정
-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숙영지이자 묘지로 사용
4. 일제강점기
1) 광복 이전
(1) 제1시기: 일본군 주둔기지의 상설화(1906~1915)
1904년(러일전쟁) 이후 : 300만평을 철도기지 및 군사기지화
1906년 5월 11일 : 임시건축부 개설
1909년 8월 : 병영시설 구축
1090년 10월 : 필동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용산으로 이전(2) 제2시기 : 전투지에서 침략적 전진기지로 전환 및 부대재배치(1916~1942)
일본의 조선군 상주군화 : 1915년에 조선에 2개 사단 신설
제20사단의 완성과 부대의 재배치(1919~1931)
중국 침략과 전시 동원 기지로 확장(3) 제3시기 : 지원기지로의 변화(1942~1945)
태평양 전쟁과 용산기지의 공동화(1942~1944)
일제의 본토결전 지원부대(1945)2) 광복 이후
(1) 1945년 미군 제24군단 인천을 통해 한국진입, 용산 접수
(2)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 소련군의 숙소 사용
(3) 18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미군군사고문단 500명만 남고 철수
(4) 1950년 6ㆍ25전쟁: 미8군 사령부 설치(대구)
(5) 1953년 8월 15일 : 용산의 군사기지화(용산)
(6) 1957년 7월 동경 소재 유엔군사령부가 서울로 옮김. 주한미군사령부 신설
(7)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 신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