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FO 정원_중국 국제 정원 엑스포

글_조용준(전 JCFO, Associate), 전진현(JCFO, Project Designer)
라펜트l기사입력2017-01-24

 

JCFO 정원_중국 국제 정원 엑스포



_조용준(전 JCFO, Associate),      
전진현(JCFO, Project Designer)


China International Garden Expo (전진현)

‘Garden of Many moons’는 2016년 제10회 중국 정원박람회(2016 10th China International Garden Expo)에 초청된 다섯 해외사의 작품들 중 하나이다. 매년 개최지를 옮기는 박람회의 특성상 영구적인 공간이 아닌 5년간 지속 가능한 정원 조성이라는 전제가 있었고, 제곱미터당 1000위안(한화 약 18만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예산이 주어졌다. 그만큼 기본계획단계에서 투입됐던 인원도 중국 코디네이터 이외에는 한 명 뿐이었지만  단기간 동안 구속 없이 다양한 옵션들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기회이자 필드 오퍼레이션스(Field Operations)라는 회사의 디자인 스타일 내지는 철학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끔 하게 된 계기가 됐다.








Quick study (전진현)

프로젝트 초기, 대나무를 새 둥지처럼 엮어 터널을 만들고 이를 통과하는 체험이 강조되는 안을 바탕으로 기본계획 보고서를 80% 완성했다. 그러나 그 체험이 너무 단순하고 대나무 구조물의 시공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프로젝트는 백지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날 제임스 코너(James Corner, Founder and Director of Field Operations)는 나에게 몇 가지 ‘Quick study’를 다음날까지 해보라고 하며 회의를 마쳤다. ‘Quick study’라는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단어는 필드 오퍼레이션스라는 회사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안을 만들어 그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이를 수정해가며 디자인을 진행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위에서 하나의 안을 결정해 일사천리로 프로덕션을 진행하기보단, 다양한 안을 두고 결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보류하는 편이어서 시간 소모가 다소 큰 편이다. 때론 버려질 것을 알면서도 옵션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시간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좋은 안을 탄생시키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도 장기적으로는 장점이 많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초기 아이디어 디자인

‘대나무 터널’ 안은 완전히 접고 새로운 안을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다. 하나의 정원 안에 다양한 성격의 ‘방’들을 조합하여 배치하는 아이디어를 기본으로, 방들을 나누는 방식과 이들을 구성하는 콘텐츠에 대한 아이디어,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출입구에 대한 아이디어를 위주로 스터디를 진행했다. 이들은 모두 대나무 터널에서 보였던 체험의 단순성/일차원성에 대한 반동으로 다양한 체험을 통일된 디자인 안에서 극대화시키기 위한 전략들이었다.

제임스 코너는 위의 드로잉들에서 보이다시피 다소 파편화 되어있던 스터디들을 한데 아우르는 개념과 디자인 언어를 제시한다. Garden of Many Moons, 중국의 전통공간 구성요소 중 하나인 원형문(月亮门, moon gate)을 재해석하여 공간을 구성한 안으로, 보통 경우의 출입구는 공간과 공간을 나누고 연결하는 장치에 불과하지만, 본 정원에서는 그것이 전체적인 공간의 흐름을 결정하고 이용자의 행태를 유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Garden of Many moons (전진현, 조용준)


달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동안 태양과 이루는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는 달의 모양은 시시각각 변한다. 제임스 코너는 28개 원형 파이프의 배치를 섬세하게 조정함으로써, 마치 달의 모양이 변화하듯, 방문객들 또한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방문객들은 여러 개의 원형 파이프를 통과하게 되고, 이러한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5개의 닫힌 테마 정원과 마주치게 된다. 이는 문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중국정원의 세계관과 닮아 있다.

필드 오퍼레이션스 디자인의 특징 중 하나는, 단순하지만 강한 형태를 일정한 규칙하에 배열한다는 것이다. 특히, 동선의 흐름을 가장 많이 고려하는데,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도, 세심하게 고려된 동선계획에 의해 그 형태나 배치가 다양하게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용자의 다양한 경험이 유도된다. 숨겨진 테마정원들이 (Hidden Moon Gardens) 회전하는 필드(Rotational Field)위에 나열되는 제임스 코너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참고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제임스 코너의 콘셉트 드로잉

필드 오퍼레이션스의 다른 프로젝트들의 경우에도 비슷한 방식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의 경우, 한쪽 끝이 좁아지는 널(plank)을 규칙적으로 배열하는 식이다. 이는 역시 계획된 동선의 흐름을 바탕으로 한다. 독특한 패턴의 포장과 녹지는 세심하게 배열되어, 선형의 필드를 만들며, 주변 콘텍스트에 따라 다양한 전망 및 휴게 공간이 조성된다.


도면 속 담겨진 의도 (조용준)

대부분의 설계가 그러하듯, 도면과 현장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숙련된 디자이너일수록 도면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시킨다. 의도되지 않은 좋은 결과는 디자이너에게 뜻밖에 주어진 행운의 선물일 뿐이다.

공원 전체에 일정한 각도를 따라 회전하면서 배치된 지름 3m, 길이 5m의 콘크리트 파이프는 토목하수관으로 사용하는 기성품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적정 크기를 찾지 못해 제작했다. 그리고 기초 다짐과 기초 콘크리트 위에 철물 받침대를 사용하여 고정했다.

원형 벽돌 쌓기로 구성된 5개의 테마가든에서 보이는 벽돌의 크기(현재 시공된 벽돌의 크기는 400×200×100이다)와 쌓는 방식은 여러 번의 3D 모델 테스트를 거친 결과물이다. 벽돌 색의 경우, 푸른빛이 도는 짙은 회색을 사용하여 회색 콘크리트 파이프와의 강한 대비를 의도했다. 이에 맞는 벽돌을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한 색보다 옅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5개의 테마가든 중, 물의 정원의 경우, 부수식물인 수련을 심어 수면 위에 잎과 꽃이 떠다니는 풍경을 연출하고자 했다. 최종 CD 도면에서 확인했을 때까지 변함없던 수련은 갑자기 시공과정에서 정수식물인 연꽃으로 바뀌었다. 더벅머리처럼 정리되지 않고, 수면을 덮은 들쭉날쭉한 연잎들 때문에 의도했던 물의 반사나 투영효과가 사라졌다.

콘크리트 파이프 사이를 지나다 보면, 하단부에 설치된 두 개의 H형강을 볼 수 있다. 콘크리트 파이프 내부의 간접조명을 원했던 제임스 코너의 아이디어다. 거친 콘크리트 파이프와 H형강과의 이질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눈에 거슬리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마치며. (조용준)

이 프로젝트의 콘셉트와 디자인은 전진현 디자이너의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많은 노력이 바탕이 되어 제임스 코너의 명쾌한 설계 방식으로 재탄생 됐다. 그리고 실시경험이 있던 내가 전진현 디자이너와 함께 DD작업을, 그리고 홍(Hong Zhou, Principal)과 함께 그 이후 과정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전진현 디자이너가 입사하기 전, 내가 잠시 컨셉 디자인을 진행했었다. 다른 프로젝트로 바쁜 시기여서, 하루 동안 정리한 여러 개의 안을 들고 제임스 코너의 방에 모였다. 항상 그랬듯이, 짐은 39가에 위치한 뽀모도로라는 작은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시킨 토마토 스프와 빵으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있었다. 출력된 여러 계획안을 회의 테이블에 펼쳤다. 가장 맘에 들어 하는 디자인은 짐이 직접 그린 대나무로 만든 튜브통로다. 하지만 리치(Richard Kennedy, Senior Principal)와 홍은 회의적이다. 나 역시 적은 예산과 짧은 기간을 고려한다면, 좋은 시공결과를 가져오기 힘든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결론 없는 토론으로 어느덧 1시간이 지나고, 방은 정적만이 남았었다.

큰 눈을 뜨고 한 사람씩 쳐다보는 제임스 코너에게 순간 난 항상 궁금해 왔었던 질문을 던졌다. ‘JCFO 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제임스 코너의 철학을 이 정원에 담아야 된다고 제안했다. 그 순간 정적은 더 무거운 침묵이 됐다. 몇 초 후 대답대신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라는 질문이 나에게 되돌아 왔다. 정확한 스트레이트를 날렸다고 생각했으나, 강력한 어퍼컷이 나의 턱을 강타했다. 두서없는 나의 대답이 드라마의 OST처럼 지나갔다.

또 다시 침묵. 갑자기 리치가 ‘우리 제임스 코너의 동상을 정원에 전시할까?’하는 농담을 던졌다. 농담이 더해져, 제임스 코너의 반짝이는 머리를 이용하여 주변을 투영하고, 화난 짐, 웃는 짐, 춤추는 짐의 동상을 정원에 배열하자는 말도 나왔다. 제임스 코너도 함께 한바탕 크게 웃었다.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가벼운 농담과 함께 사라지고, 현실 속의 디자인으로 되돌아왔다.

그때 난 제임스 코너의 생각을 듣지 못했다. 대신 난 여러 해 동안 짐과 함께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그의 철학과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됐다. 경험을 통해 습득해 온 지난 시간들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글_조용준 어소시에이트 ·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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