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녹색공간의 사회학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7-10-12

 

녹색공간의 사회학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지금 한국사회는 힘들고 아프다. 사회 전반에 걸쳐 쌓인 갈등이 혐오와 분노로까지 심화되고 있다고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헬조선, 김치녀, 맘충, 노인충, 노키즈카페 등 사회나 타인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가득한 용어가 언론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된 지도 이미 오래이다. 그렇잖아도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터에 근래 매스컴이나 인터넷 등으로 정보의 전달과 확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에 반해 그것을 차분히 소통하고 나누는 훈련이나 기회를 별로 갖지 못한 탓일 것이다. 성적 취향, 정치적 신념, 문화적 개성 등에 있어서의 차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인터넷은 그 공격 언어나 방식을 악화시키는 온상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상대방에게 혐오와 분노를 쏟아내다 보면 자신도 상처를 받기 마련이다. 
힘든 세태에 대한 심층 진단이나 해결책 모색은 필자 몫이 아니다. 대체로 그것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와 복잡하게 엮어 있기 마련이어서 개인적 차원에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조경이라는 전문분야의 한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애당초 사회적 문제 해결 혹은 필요 충족이 전문분야의 성립요건이라는 사실을 유념하고 보자면 이렇게 한국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전문가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조경분야가 할 수 있는 바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정신사회학, 심리학, 사회복지학, 보건학 등과는 다른 조경만의 해법을 필자는 녹색이 갖는 사회적 효용에서 찾을 수 있을 걸로 믿는다.

아파트는 단연 한국인의 대표적인 주거이다. 80년대 이후 형성된 신도시나 신시가지에 만들어진 주거지는 거의 다 아파트로 채워져 있다. 내로라하는 건설사들의 기술과 공법 경연장이 된 아파트 단지에는 조경도 잘 되어 있다. 특히 단지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들로 이뤄진 숲이 들어서 있다. 수종은 대체로 한국인이 선호하는 소나무, 느티나무 등이면서 초대형목들도 많이 보인다. 더러는 제주도 등지에서 옮겨온 팽나무 거목들도 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그저 사진발 효과를 위해 건설사가 만들어준 보기 좋은 숲일 뿐이다. 일견 우리네 옛 마을 앞에 자리 잡은 마을숲처럼 보이지만 조성목적이나 쓰임새는 자못 다른 셈이다. 마을숲은 다양한 기능 내지 효용으로 근래 들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바람이나 습도 등의 미기후를 조절하거나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도 예방하고 저감시켜 준다. 새나 곤충 등 생물체 서식처가 되기도 하고, 부족한 기운을 더해주는 풍수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마을숲이 지닌 만남과 소통의 장으로서의 효용이다. 마을숲에서는 연중 절기 행사는 물론 주민들의 친목회나 각종 대소사 모임이 펼쳐지곤 했다. 마을의 효자효녀나 열녀, 혹은 큰 인물을 기리는 비석이 있는가하면 당집이나 돌탑 등 신앙요소도 함께 있다. 말하자면 마을숲은 그 마을의 역사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전시장인 셈이다. 그런 역사나 정신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사람들은 마을숲을 수시로 드나들거나 머무르면서 함께 삶을 나누고 소통해 왔다. 살면서 생기는 불화나 갈등은 만나고 소통하다보면 저절로 줄어들거나 치유가 되기 마련이다. 마을숲이 지닌 이 같은 사회적 효용성은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 전통 마을에 있었던 다른 오픈 스페이스, 예를 들자면 앵두나무 우물가나 시냇가 빨래터도 그 정도는 다를지 모르겠으나 유사한 효용을 발휘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녹지나 오픈스페이스가 그런 사회적 효용을 과연 얼마나 발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삶의 방식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대체로 그곳은 볼거리 혹은 존재녹지이상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녹색은 대개의 경우 ‘시각에의 봉사’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 모 아파트단지 입구. 어디선가 가져온 소나무 거목들로 숲을 이루고 있으나 그곳은 만남이나 소통의 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귀한 나무로 만든 보기 좋은 녹색공간일 뿐이다. ⓒ 성종상. 2002년 4월


남원 운봉면 신기리 마을숲. 지금부터 270여년 전 산줄기가 끊겨 지맥이 약한 곳을 돋우고 느티나무 등을 심어 조성된 숲으로 지금도 마을사람들에게 중요한 모임과 만남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박찬열. 2015년 8월

근린 생활권 내의 녹지공간이 주민간의 사회적 관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증거는 많다. 다양한 자료와 방법론을 동원한 관련 연구들이 십 수년 전부터 서구사회는 물론 일본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최근 들어와서는 중국발 연구성과도 부쩍 늘고 있다. 대체로 그 핵심은 녹지가 주민들의 비정규적, 일상적 만남의 장이 됨으로써 소통을 증진시키고 사회적 활동을 촉발시켜 결국은 공동체적 연대감과 정체성을 강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근린 생활영역 내에 녹지가 부족하게 되면 거주자의 고독감과 사회적지지 결핍감을 초래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Maas 외 2008) 일상 생활권 영역 내에 적절한 수준의 오픈스페이스를 갖춘 주거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성 사건이 일어나도 한결 수월하게 대응한다는 연구도 있다. 1996년 미국 일리노이대학 조경학과 교수 Sullivan은 시카고 시내 공동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흑인 가정의 사회적 행태를 집 주변 환경과 연결시켜 분석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가 자못 흥미롭다. 잘 다듬어진 나무나 녹지 주변에 사는 집보다는 그렇지 못한 집에서의 가정폭력이 현저히 더 자주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집 주변에 좋은 나무나 녹지는 구성원들간의 사회적 접촉을 증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폭력성이 감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농무부 연구원 Geoffrey H. Donovan은 포틀랜드시에서 일어난 범죄사건들과 주거환경간의 상관성을 분석하고는 큰 나무를 갖고 있는 주택이나 잘 관리된 가로수가 있는 지역에서 범죄가 덜 일어났다는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큰 나무가 있는 집이나 잘 관리된 가로수가 있는 지역은 그 자체가 관리 정도를 드러내는 징표로 간주되므로 그만큼 잠정적 범죄자들에게 기피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사회학자 James Q. Wilson과 범죄학자 George L. Kelling이 주창한 ‘깨진 유리창 이론 broken windows theory’을 연상시킨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얼마 안가서 그 일대가 무법천지처럼 변하고 마는 것이나 잘 다듬어진 나무 한 그루가 있는 집에 범죄가 덜 일어난다는 사실 이면에는 묘한 사회심리학이 숨겨져 있다. 깨진 유리창이나 잘 가꾼 나무가 그 장소 내에서의 환경관리 수준을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됨으로써 잠재적 범죄행위 발생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환경상태→지각 및 인지→의식 및 행태 변화’로 이어지는 환경의 사회심리적 효용 내지 기작은 오늘날 조경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경가가 만드는 공간으로 사람들의 의식과 행태를 바꿀 수 있다니… 근사하지 않은가?


역삼동 모아파트 단지 내의 수령 750년이 넘은 느티나무 정자목. 이곳에 살던 옛 토박이들이 중심이 되어 마을의 안녕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동제를 매년 열고 있다. 이미 마을은 사라졌고 주민도 오래 전에 뿔뿔이 흩어진 상태이지만 아파트 사이에 살아남은 나무 한 그루가 여전히 사람들을 모으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 성종상. 2005년 9월

나무를 심는 뜻은 그것이 보기에 좋아서 만은 아닐 것이다. 꽃이나 열매와 같은 실용을 넘어 그늘과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그 아래로 모여들게 할 수가 있다. 도시에서 공원은 푸른 자연 요소들의 집합처 이상이어야 한다. 단순히 푸르거나 보기 좋게 하는 것을 넘어 녹색공간을 여러 생명주체들이 찾아오고 머물면서 소통하는 장소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곤충이나 새든 사람이든 간에…. 특별히 인공이 지배하는 도시인 경우에는 더욱 더 그렇다. 한국 사회에 갈등과 분노가 만연된 데에는 사람들 간의 관계 부재 내지 단절이 중요하게 작용하게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사실 ‘관계’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가장 중시되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참조: 한국인의 관계지향의식과 생태, 라펜트 2017년 2월 9일자) 그같이 중요한 관계가 근래 들어와 훼손되고 깨어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진 셈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 내 각종 공원녹지를 관계 회복의 장으로서 기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 생태적 기능이나 환경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효용까지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녹색공간의 성능을 개선해야 한다. 마치 우리네 옛 마을숲이 그러했듯이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만남과 소통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일상환경 속 녹색공간이 지닌 사회학적 효용가치를 제대로 되살려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어렵고 힘든 동시대에 조경가에게 부여된 특별한 사명이 아닐까?
글·사진_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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