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생각_경공환장으로 그리는 ‘생각’ 계단(下)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_마지막회
라펜트l기사입력2013-11-22

생각시대의 삶터 단상

 

명심할 것은 생각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지난 시대 생각들을 수입하여 마치 누가 우리에게 베풀듯 심어준 것으로 착각하며 우리 도시를 만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생각 없이 가져다 쓴 생각(이론)인 것 같아도 의도되었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만의, 우리 실정만의 생각들을 우리 삶터에 적용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의 본질적 특성 때문이다. 생각이란 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도 그러지 않았던가, 생각하는 나, 내가 생각한다는 것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그만큼 생각이란 나라는 주체와 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 시대의 생각들이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우리가 가져보지 못한 생각, 신기해 보이는 생각들에 맹목적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관성이 아직도 남아 생각의 주체가 나임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생각에 익숙해진 문화의 시대를 우리가 함께 걷고 있기 때문이고 그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야 우리 삶터의 바른 모습을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힘 있는 누구 하나만의 강력한 생각과 흔히 못 본 낯선 생각만으로 우리 삶터를 실험해서는 안 된다. 모두 사는 삶터이고 모두의 생각들이 담기는 삶터이기 때문이다. 생각할 부분이 참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생각의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많다는 것.

 

그런 면에서 갓 설계를 배운 사람들의 공모전 당선과 그것의 실현에 신중할 필요를 느낀다. 그들 생각의 참신성이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생각들이 현실의 단계들과, 우리만의 자생적 사고들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을지, 얼마나 그것에 트레이닝 되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설계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생각만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나, 그 생각이 대체로 자신만의 방식이거나 투철한 진정성의 산물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지난 세기 우리 도시를 만든 것은 그런 서툰 생각들이지 않았나 싶다. 고도성장이라는 사회적 부흥에 따라 생각의 기회와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특유의 저돌성으로 우리 도시와 삶터를 개발하기 바빴던 것이다.

 

우려와 개선의 지적들은 작은 목소리일 수밖에 없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개발들이 우리 주변을 지배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이 이제 우리에게 도시재생이라는 또다른 개발을 부르고 있는 셈이다. 언제쯤 우리는 충분한 생각 속의 삶터를 그려볼 수 있을까.

 

다행인 것은 국가 차원이든 개인의 차원이든 삶터에 대한 생각 주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민이 깊어지는 만큼 실천과 반성도 다각도로 나타나고 있다. 가끔은 생각지도 못하였던 창의적인 도전과 결과들이 보고되기도 한다. 각종 주민주도 사업들은 그것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심지어 생각의 주체들이 스스로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해 줄 전문가와 사례를 찾아 고심하는 것도 쉽게 목격된다. 생각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분화 되어 각자의 길 위에서 헤매고 있는 전문 분야들은 이 점을 잘 살펴야 한다. 생각의 주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 말이다. 지난 시대 충분하지 못하였던 생각의 깊이들이 이런 식으로 다시 제 방향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말이다. 이제 전문가로서 그 생각들을 지원할 책무가 모든 전문가에게 있다. 생각의 주체들이 올바른 생각의 계단을 밟도록 한발 물러나 자생적 생각들을 지원해야 한다.

 


 

생각을 담는 전문가를 위하여

 

사실 생각이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생각을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우리 문명은 그 어려운 생각들을 특별한 사람들에게 위임하면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채워가기 바빴다. 생각을 한데 모으고 있는 그 특별한 사람들이 위계를 나누고 권력을 형성하며 역사와 문화가 성장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 시대 전문분야들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검증된 생각이 모이면 그것으로 개념을 만들고, 개념들끼리 새로운 생각을 위한 도구들을 구상하게 된다. 생각은 그 동력이 시간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개념으로 만든 도구들은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며 한 시간이 걸리던 생각의 도약이 1분이면 가능하게 도와준다. 생각의 도구들이 모이고 개념이 커지면서는 그 부산물이 우리 일상에 하나 둘 응용되기 시작한다. 지금 우리의 삶터는 그렇게 하나하나 진화해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도 실천의 하나이다.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앎을생각, 행동, 제작세 가지로 나눈 것처럼, 생각은 그 자체로 실천의 중요한 축이었다. 생각이 있어야 이론과 행동이 가능하며, 그것들을 응용한 제작도 가능하다.

 

살펴보면 조경도 그렇게 역사 속에서 특별한 생각 주체들에 의해 형성된 개념이자 기술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위대하고 특별한 생각들은 또 다른 차원을 형성하며 일상과 현실을 벗어나 우주를 날게 된 지 오래다. 그렇게 남겨진(만들어진) 생각의 계단들에 다양한 생각 주체들이 발길을 두고 있다. 아직 현실과 일상에서 한발을 딛고서 보다 나은 우리 삶터를 위해 그 계단을 하나 둘 오르고 있는 것이다. 시민참여, 주민주도에 관련된 모든 활동들은 그 일환이다.

 

여기에 현대 조경(전문가)의 길이 있다. 조경이 우리 도시의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 개념과 이념을 다루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하고 작은 경관들에 먼저 작용하기 때문이다. 조경은 여전히 일상에 뿌리를 둔 실행 전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삶터의 주인들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단계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음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이 현대 조경의 또 다른 도약을 보여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조경이 본래의 실천 영역으로 안착할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생각의 주인공들과 함께 그들의 생각에 동참할 때이다.

 

 

연재를 마치며: ‘경공환장’에 뛰어들기

 

생각의 흐름은 행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띄엄띄엄 하는 연관 없는 생각들이라도 전체를 살펴보면 일정한 흐름 속에 있는 것이었음이 드러나곤 한다. 생각이란 그런 것이다. 일상과 몰입 사이, 활성기와 휴지기를 반복하는 생각이고 결국 나라는 토대 위의 일이라지만, 생각은 또 물리를 벗어난 세계를 가지므로 나를 뛰어넘는 미지의 영역을 맛보게 해주기도 한다. 생각이 깊어지고 정돈되면 그것이 실행으로 이어지기 쉽지만, 미처 생각할 겨를 없이 시작되는 움직임이 생각을 깊게 도와줄 때도 있다. 경공환장은 그렇게 띄엄띄엄의 흐름을 좇아 시작되었다.

 

우리시대에는 그러나 생각하지 않는 실천, 더군다나 함께하지 않는 생각들이 많다. 그래서 각자의 그릇과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실천들이 반성 없이, 공유 없이 각자의 고집으로만 침잠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생각의 다른 이름이자 실천의 다른 양식인 설계가 생각의 집합이자 생각의 표현인 문화와 엇갈리는 경우가 많고 삶터를 불우하게 하지 않나 한다.

이 연재는 그런 관점에서 출발했다. 모두가 각자의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는 시대에 그래도 중요한 몇 가지만은 함께 공유하고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으면 했다. 여기서는 그 기본이 되는 개념어들을 살펴보았고 그것이 그리는 몇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짚어보고자 노력하였다. 개념어의 기본 설명보다는 그것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함의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소기의 결과가 이번 연재로 통하였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연재로 분명해진 것이 있다. 이제 전체를 전제했던 동양의 지혜가 전방위적으로 재발견되어야 할 때라는 점이다. 자연과 사회로 이해했던 포괄적인 시야를 재탈환해야 하고, 요즈음 시끄러운 통섭이라는 것도 이러한 입장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그러할 때 너무 깊어져버린 생각과 너무 고집세져버린 분석, 너무 커져버린 사람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분석은 종합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종합은 통합을 이기지 못한다. 나아가 통합은 의지를 꺾지 못한다.”

 

전체를 놓고 보니 때로는 급진적인 경우도 있었고, 때로는 사변적이거나 초점을 벗어난 듯 보이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개념어가 내포하거나 지향하는 문제들이 동시대를 배경으로 교차하고 있음은 연재를 통해 명확해지지 않았나 자평해 본다. 이 연재를 통해 지금여기에 초점을 둔 보다 풍부한 사고가 펼쳐졌기를 기대하며 1부를 마친다. 2부에서는 개념어의 확장이 어떤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지 새로운 방식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013. 10. 청평시대를 지나며,
- NewtWork.net

 

빅데이터의 시대라고 합니다. 정보의 홍수속에 살고있다지만, 정작 필요한 내용은 검색으로도 쉬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공환장은 동시대 경관, 공간, 환경, 장소를 둘러싼 사고의 이산집합을 선명히 하기위해 핵심으로 접근하는 하나의 의미있는 발자국으로 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경공환장' 1부를 집필해준 안명준 조경비평가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편집자주

 

 

경공환장: 다시 보는 일상, 느껴 보는 도시

 

연재를 시작하며_ 경공환장’에 환장하기

 

01 .정원

번째 정원: 우리와 우리 도시의 경작본능()

번째 정원: 우리와 우리 도시의 경작본능()

 

02. 공원

공유하는 일상: 우리 도시의 진화하는 공원()

공유하는 일상: 우리 도시의 진화하는 공원()

 

03. 조경

옴스테드와 보의 사잇생각: 테크네 ‘조경’()

옴스테드와 보의 사잇생각: 테크네 ‘조경’()

 

04. 풍경

‘전체에 대한 통찰’: 당신과 나만을 위한 “풍경”()

‘전체에 대한 통찰’: 당신과 나만을 위한 “풍경”()

 

05. 경관

 ‘그리드락 쏘싸이어티’: 카오스모제의 ‘경관’()

 ‘그리드락 쏘싸이어티’: 카오스모제의 ‘경관’()

 

06. 공모

디자인 경쟁시대: 신사들의 잔치 ‘공모’()   

디자인 경쟁시대: 신사들의 잔치 ‘공모’()

 

07. 자연

아비투스 지구 ‘자연’: 이야기 정원의 숭고미()

아비투스 지구 ‘자연’: 이야기 정원의 숭고미()

 

08. 예술

생각의 에코톤: 테크네의 장소성, ‘예술’()

생각의 에코톤: 테크네의 장소성, ‘예술’()

 

09. 도시

경관 ‘도시’: 포스트시대의 풍경()

경관 ‘도시’: 포스트시대의 풍경()

 

10. 장소

뿌리뽑힌 이야기, 우리만 모르는 ‘장소’()

뿌리뽑힌 이야기, 우리만 모르는 ‘장소’()

 

11. 공간

사유의 실로(失路), 근본없는 거주: ‘공간’()

사유의 실로(失路), 근본없는 거주: ‘공간’()

 

12. 환경

어울려 즐거운 ‘환경’: 분절없는 삶터()

어울려 즐거운 ‘환경’: 분절없는 삶터()

 

13. 전통

빌려온 미래, 언제나 지금인 ‘전통’()

빌려온 미래, 언제나 지금인 ‘전통’()

 

14. 통합

삶터 가꾸기의 전술, ‘통합’()

삶터 가꾸기의 전술, ‘통합’()

 

15. 생각

경공환장으로 그리는 ‘생각’ 계단()

경공환장으로 그리는 ‘생각’ 계단()

 

연재필자 _ 안명준 조경비평가  ·  서울대
다른기사 보기
inplusgan@gmail.com
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다른기사 보기
ch_19@hanmail.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인포21C 제휴정보

  • 입찰
  • 낙찰
  • 특별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