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도서

영산홍이여....
비공개l2003.06.18l1260
저겨 궁금한데여...
영산홍이 상록인가여??? 낙엽인가여???
수목학책에는 상록인데... 가끔 수목도감에는 낙엽으로...
어떤게 맞나여???
- 영산홍이여....
비공개l2003.06.18>상록입니다. 영산홍과 관련된 내용이니 참고 바랍니다. ^^ (영산홍은 식재설계에 많이 쓰이는... 다진마늘과 같다고 할까요?) 1. 영산홍은 1개종을 지칭하기 보다 서로 유사성이 있는 여러 수종을 총칭한 것으로 주로 외래종이며 일본산이 많고 대부분 상록성이다. 봄의 꽃이 곱고 다양하다. 잎은 곱고 가늘며 잔잔한 털과 광택이 있다. 내한성이 다소 약해 충남이남에서 월동이 가능하다. 2. 영산홍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어린 아이 키를 넘지 못하는 작은 키에 분홍빛 꽃잎을 달고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고 있는 영산홍은 1910년도 이후에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추정되는 사즈키철쭉, 기리시마철쭉 등을 포함해 일본에서 육종한 원예종이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옛 문헌들을 들추어보면 고려시대의 기록에서부터 이미 영산홍이란 말을 찾을 수 있다. 이 영산홍에는 빛깔과 몇가지 특색에 따라 고려영산홍, 궁중영산홍, 조선영산홍 등으로 나뉜다. 고려영산홍은 반낙엽성으로 전체적으로 털이 많으며 궁중영산홍은 고려영산홍과 거의 비슷하나 수술의 수가 열 개에서 조금 모자라고 반상록성이란 점이 다르다. 다소 과장된 듯하지만 영산홍 가운데는 빛이 너무도 찬연해 밤이면 마치 형광을 띤 듯 빛나는 종류도 있었다고 한다. 시에 능한 기생 영산홍은 “映山紅對映山紅”이라고 읊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꽃나무 영산홍에 비유해 노래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외간 남자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안채의 뒤뜰 경사진 면을 계단형으로 다듬고 담을 쌓아 꽃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화계라고 불렀다. 이 화계의 가장 아래쪽에는 어김없이 영산홍을 즐겨 심어 가까이 하였고 그 외에 약용으로도 이용했다 하니 우리의 선조들과 매우 친숙한 꽃인 것이다. 3. 경춘가도의 봄 풍치를 사랑해 늘 퇴계원 사거리쪽의 샛길을 택해 오가는 사람들 중에는 사릉쯤에서 야산 기슭 한 면이 담홍, 분홍, 자주 등 오로지 붉은색 계통의 온갖 무늬로 모자이크된 듯한 꽃동산을 본 적이 있으리라. 처음 본 이는 아마 자신이 무슨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으로 한번쯤 눈을 비볐을 것이다. 꽃동산 안에 발을 직접 들여 놓게 되면 말 그대로 천자만홍(千紫萬紅), 그 현란한 빛깔과 향기 때문에 진정 아찔한 현기증에 잠시 사로잡히게 된다. 수종은 모두가 영산홍 종류다. 영산홍은 진달래나 철쭉처럼 꽃이 무더기로 무리지어 피어나므로 그렇듯 유난스레 현란한 것이다. 이 영산홍 동산은 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사릉1리에 있다. 적잖이 이 길을 오간 사람이라도 절정일 때의 꽃동산 구경을 해 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연중 꽃이 만발한 기간은 고작 일주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영산홍 동산의 주인이자 직접 가꾸어 온 사람은 김돈식 옹(金頓植·78)이다. 그는 중곡동에 400여 평 화원을 마련해 40년 전쯤부터 영산홍을 모아 오다가 86년 이곳에 1만 1000여 평을 마련, 모두 이식했다. 두 손바닥을 펼쳐 합친 모양의 골짜기 양쪽 사면에 영산홍이 심어져 있다. 그 한가운데에 산책로가 나 있는데, 이 산책로로 들어서기 무섭게 그 진한 빛이 온몸을 휘감는다. 오른쪽 산비탈을 바라보니, 그 붉은 빛이 하늘로 번져나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영산홍이 그만큼 밀집돼 있다. 산책로 북쪽의 산비탈에는 담홍빛의 대왕 영산홍과 희디흰 영산백, 그리고 분홍색 영산홍이 한 줄씩 뒤섞여 긴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를 상징해 그렇게 꾸몄다고 한다. 영산홍 동산 곳곳에는 해태, 효자비, 돌거북, 석사자, 석등, 불상, 문·무관석 등 석물이 놓여 있다. 김 옹은 이 석물들을 수집하다가 ‘이것들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석물 대신 결코 인위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꽃, 그 중에도 유난히 아름다운 영산홍을 모아 가꿀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뿌리나누기며 휘묻이, 씨뿌리기로 탄생시킨 것만도 수백 그루이니, 이 모두 몇 그루나 되는 지는 나도 잘 몰라요. 한 평에 평균 세 그루씩 잡아 계산하면 한 3만 그루 될까. 다만 몽땅 국내가 원산지인 고려 영산홍이고, 또 거의가 전라도산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경상도쪽에는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서인지 영산홍이 없더군요. 분재는 물론, 가지치기도 일절 해 주지 않고 자연상태 그대로 키우는데, 일본산은 추위에 약해서인지 모두 얼어 죽고 한 그루만 남았어요.” 이 농장 봉래산의 영산홍은 수령 250년 된 것을 비롯해 1000만 원대를 호가하는 100년 이상이 된 것만도 수백 그루가 넘는다. 수십 년생 정도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영산홍이 어떤 종류의 수목인가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란다. 영산홍은 수령이 수십 년만 돼도 값이 이미 100만 원대를 넘고, 그나마 돈 주고 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조 때 영산홍은 양반 집안에서 주로 가꾸던 꽃나무다. 대개 집 앞뜰에 많아야 서너 그루 정도만 대를 물려 키우던 수종이다. 때문에 탐심에 못 이겨 자칫 서툴게 접근했다가는 재수 없다고 소금 세례나 받기 십상이다. 조상대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좀 있었기에 김 옹은 돈 문제보다는 이렇듯 소유자들마다 단순한 수목이 아닌 가보, 아니면 심지어는 떨어질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영산홍들을 사들이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고 돌이킨다. “몇 년씩 공을 들여야 했어요. 어디 누구네 집에 좋은 영산홍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우선 그 집안과 통하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경조사 때마다 인사를 합니다. 서로 친해질 때까지는 영산홍 얘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지요. 그러다 기회를 봐서 저 앞뜰 영산홍 처분해야 할 일이 생기면 기왕이면 저에게 팔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 둡니다. 저기 고창의 김성수 씨댁에 있던 자산홍을 비롯해서 조금 오래 묵은 것들은 모두 그렇게 정성들여 모은 것이지요.” "보는 이들의 즐거움이 보람" 이 곳의 꽃나무들은 수십 종이어서 정통한 식물학자가 아니면 정식 학명을 알기 어려운 것들이 적지 않다. 30년 이상 이 수목들을 대해온 김 옹도 그저 세간에서 부르는 대로 십여 가지로만 구분할 뿐이다. 그러나 영산홍의 생태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통달한 그다. 6년 전 이곳 사릉리로 대대적인 이식 작업을 할 때 죽인 것이 거의 없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의 영산홍 식재기술이 어떠한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해 모으고 가꾸어 온 이 영산홍 동산이지만 김 옹은 어느 누구에게든 돈 한푼 받지 않고 꽃구경을 시켜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와서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보람이라고 한다. * 교 통 퇴계원사거리에서 동쪽(금곡방면)으로 간다. 진관교→진관사거리→47번 국도 아래의 굴다리를 지나면 새로 난 신도로로 올라선다. 이 도로는 최근에 개통되어 올해 개정된 도로지도책에도 표기되지 않은 신도로로서, 이 도로로 들어서서 언덕배기로 올라가자마자 왼쪽으로 진건면 갈림길목이 나온다(도로 안내표지판이 서 있음). 이 길로 내려서서 사릉 건널목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석화촌(石花村 0346-574-8671)이란 음식점 팻말이 보인다. 이 골목 입구에서 100m만 가면 영산홍동산 입구다. 앞에 주차장이 있으나 5월의 휴일 낮에는 초만원이다. 그러므로 도로변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 - 영산홍이여....
비공개l2003.06.19감사합니다!!! >>상록입니다. >영산홍과 관련된 내용이니 참고 바랍니다. ^^ >(영산홍은 식재설계에 많이 쓰이는... 다진마늘과 같다고 할까요?) > >1. 영산홍은 1개종을 지칭하기 보다 서로 유사성이 있는 여러 수종을 총칭한 것으로 주로 외래종이며 일본산이 많고 대부분 상록성이다. 봄의 꽃이 곱고 다양하다. 잎은 곱고 가늘며 잔잔한 털과 광택이 있다. 내한성이 다소 약해 충남이남에서 월동이 가능하다. > >2. 영산홍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어린 아이 키를 넘지 못하는 작은 키에 분홍빛 꽃잎을 달고 있다. > >우리가 흔히 부르고 있는 영산홍은 1910년도 이후에 우리 나라에 들어왔다고 추정되는 사즈키철쭉, 기리시마철쭉 등을 포함해 일본에서 육종한 원예종이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옛 문헌들을 들추어보면 고려시대의 기록에서부터 이미 영산홍이란 말을 찾을 수 있다. 이 영산홍에는 빛깔과 몇가지 특색에 따라 고려영산홍, 궁중영산홍, 조선영산홍 등으로 나뉜다. > >고려영산홍은 반낙엽성으로 전체적으로 털이 많으며 궁중영산홍은 고려영산홍과 거의 비슷하나 수술의 수가 열 개에서 조금 모자라고 반상록성이란 점이 다르다. >다소 과장된 듯하지만 영산홍 가운데는 빛이 너무도 찬연해 밤이면 마치 형광을 띤 듯 빛나는 종류도 있었다고 한다. > >시에 능한 기생 영산홍은 “映山紅對映山紅”이라고 읊어 자신의 아름다움을 꽃나무 영산홍에 비유해 노래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외간 남자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안채의 뒤뜰 경사진 면을 계단형으로 다듬고 담을 쌓아 꽃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화계라고 불렀다. 이 화계의 가장 아래쪽에는 어김없이 영산홍을 즐겨 심어 가까이 하였고 그 외에 약용으로도 이용했다 하니 우리의 선조들과 매우 친숙한 꽃인 것이다. > >3. 경춘가도의 봄 풍치를 사랑해 늘 퇴계원 사거리쪽의 샛길을 택해 오가는 사람들 중에는 사릉쯤에서 야산 기슭 한 면이 담홍, 분홍, 자주 등 오로지 붉은색 계통의 온갖 무늬로 모자이크된 듯한 꽃동산을 본 적이 있으리라. 처음 본 이는 아마 자신이 무슨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으로 한번쯤 눈을 비볐을 것이다. > >꽃동산 안에 발을 직접 들여 놓게 되면 말 그대로 천자만홍(千紫萬紅), 그 현란한 빛깔과 향기 때문에 진정 아찔한 현기증에 잠시 사로잡히게 된다. 수종은 모두가 영산홍 종류다. 영산홍은 진달래나 철쭉처럼 꽃이 무더기로 무리지어 피어나므로 그렇듯 유난스레 현란한 것이다. > >이 영산홍 동산은 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사릉1리에 있다. 적잖이 이 길을 오간 사람이라도 절정일 때의 꽃동산 구경을 해 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연중 꽃이 만발한 기간은 고작 일주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이 영산홍 동산의 주인이자 직접 가꾸어 온 사람은 김돈식 옹(金頓植·78)이다. 그는 중곡동에 400여 평 화원을 마련해 40년 전쯤부터 영산홍을 모아 오다가 86년 이곳에 1만 1000여 평을 마련, 모두 이식했다. > >두 손바닥을 펼쳐 합친 모양의 골짜기 양쪽 사면에 영산홍이 심어져 있다. 그 한가운데에 산책로가 나 있는데, 이 산책로로 들어서기 무섭게 그 진한 빛이 온몸을 휘감는다. > >오른쪽 산비탈을 바라보니, 그 붉은 빛이 하늘로 번져나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영산홍이 그만큼 밀집돼 있다. > >산책로 북쪽의 산비탈에는 담홍빛의 대왕 영산홍과 희디흰 영산백, 그리고 분홍색 영산홍이 한 줄씩 뒤섞여 긴 줄무늬를 이루고 있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를 상징해 그렇게 꾸몄다고 한다. > >영산홍 동산 곳곳에는 해태, 효자비, 돌거북, 석사자, 석등, 불상, 문·무관석 등 석물이 놓여 있다. 김 옹은 이 석물들을 수집하다가 ‘이것들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석물 대신 결코 인위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꽃, 그 중에도 유난히 아름다운 영산홍을 모아 가꿀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 >“그동안 뿌리나누기며 휘묻이, 씨뿌리기로 탄생시킨 것만도 수백 그루이니, 이 모두 몇 그루나 되는 지는 나도 잘 몰라요. 한 평에 평균 세 그루씩 잡아 계산하면 한 3만 그루 될까. 다만 몽땅 국내가 원산지인 고려 영산홍이고, 또 거의가 전라도산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 >경상도쪽에는 기후 조건이 맞지 않아서인지 영산홍이 없더군요. 분재는 물론, 가지치기도 일절 해 주지 않고 자연상태 그대로 키우는데, 일본산은 추위에 약해서인지 모두 얼어 죽고 한 그루만 남았어요.” 이 농장 봉래산의 영산홍은 수령 250년 된 것을 비롯해 1000만 원대를 호가하는 100년 이상이 된 것만도 수백 그루가 넘는다. 수십 년생 정도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영산홍이 어떤 종류의 수목인가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놀란다. 영산홍은 수령이 수십 년만 돼도 값이 이미 100만 원대를 넘고, 그나마 돈 주고 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 >조선조 때 영산홍은 양반 집안에서 주로 가꾸던 꽃나무다. 대개 집 앞뜰에 많아야 서너 그루 정도만 대를 물려 키우던 수종이다. 때문에 탐심에 못 이겨 자칫 서툴게 접근했다가는 재수 없다고 소금 세례나 받기 십상이다. 조상대부터 물려 받은 재산이 좀 있었기에 김 옹은 돈 문제보다는 이렇듯 소유자들마다 단순한 수목이 아닌 가보, 아니면 심지어는 떨어질 수 없는 가족 구성원의 하나쯤으로 여기는 영산홍들을 사들이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고 돌이킨다. > >“몇 년씩 공을 들여야 했어요. 어디 누구네 집에 좋은 영산홍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우선 그 집안과 통하는 사람들을 동원해서 경조사 때마다 인사를 합니다. 서로 친해질 때까지는 영산홍 얘기는 입 밖에도 내지 않지요. 그러다 기회를 봐서 저 앞뜰 영산홍 처분해야 할 일이 생기면 기왕이면 저에게 팔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 둡니다. 저기 고창의 김성수 씨댁에 있던 자산홍을 비롯해서 조금 오래 묵은 것들은 모두 그렇게 정성들여 모은 것이지요.” > >"보는 이들의 즐거움이 보람" > >이 곳의 꽃나무들은 수십 종이어서 정통한 식물학자가 아니면 정식 학명을 알기 어려운 것들이 적지 않다. 30년 이상 이 수목들을 대해온 김 옹도 그저 세간에서 부르는 대로 십여 가지로만 구분할 뿐이다. > >그러나 영산홍의 생태에 대해서 만큼은 누구보다 통달한 그다. 6년 전 이곳 사릉리로 대대적인 이식 작업을 할 때 죽인 것이 거의 없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의 영산홍 식재기술이 어떠한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 >그렇게 온갖 정성을 다해 모으고 가꾸어 온 이 영산홍 동산이지만 김 옹은 어느 누구에게든 돈 한푼 받지 않고 꽃구경을 시켜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와서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그에게는 보람이라고 한다. > >* 교 통 > >퇴계원사거리에서 동쪽(금곡방면)으로 간다. 진관교→진관사거리→47번 국도 아래의 굴다리를 지나면 새로 난 신도로로 올라선다. > >이 도로는 최근에 개통되어 올해 개정된 도로지도책에도 표기되지 않은 신도로로서, 이 도로로 들어서서 언덕배기로 올라가자마자 왼쪽으로 진건면 갈림길목이 나온다(도로 안내표지판이 서 있음). 이 길로 내려서서 사릉 건널목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석화촌(石花村 0346-574-8671)이란 음식점 팻말이 보인다. 이 골목 입구에서 100m만 가면 영산홍동산 입구다. > >앞에 주차장이 있으나 5월의 휴일 낮에는 초만원이다. 그러므로 도로변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들어가는 것이 차라리 속 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