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의 외연확장에 힘써온 개척자, 양병이 명예교수

[인터뷰] 양병이 대한민국 조경인상 수상자
라펜트l기사입력2018-11-01

 

조경계의 발전과 품격 있는 국토조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조경가 1인을 선정해 시상하는 ‘대한민국 조경인상’의 첫 번째 수상자로 양병이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양병이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와 명예교수로 40여 년간(1977~ ) 재직하며 조경분야 제1세대 학자로서 조경학의 학문발전과 우리나라 조경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더불어 한국조경학회 회장과 한국생태환경건축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를 설립하면서 건축분야의 친환경적 생태건축 전환, 옥상녹화 및 벽면녹화사업 활성화 등을 이끌어 환경・조경분야의 학문과 산업발전에 큰 공헌을 해왔다. 또한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대표로 역임하면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

그의 조경인으로서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최초’로, ‘처음’으로 행했던 일들로 가득하다. 조경의 외연확장을 위해 끊임없이 블루오션을 향해 항해했던 개척자의 삶이다.

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제1회 대한민국 조경인상에 선정되셨습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감은 세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감사’와 ‘영광’과 ‘송구’이다. 우선 하나님께 감사하고, 대한민국 조경인상 선정위원회, 그리고 대한환경조경단체총연합의 총재님과 연합에 속하신 각 단체의 장들, 그리고 활동하면서 많은 도움을 줬던 제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저 혼자의 힘이 아닌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분들께 감사드린다.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조경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처음 받았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한편으로는 저보다 훌륭한 업적을 쌓으신 분들이 있으실 텐데 먼저 받게 되어 송구한 마음이 있다. 특히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받아야 할 텐데. 그런 의미에서 송구하다.

조경인으로서의 지난날들을 회고해본다면?

우리나라 조경의 태동기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 조경학과가 생겼다. 조경을 가르칠 교수를 충원해야 하는데 조경을 공부한 분이 극히 소수였기에 가르칠 교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교수양성 차원에서 UN장학금을 받고 최초로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에 있던 학교는 조경학과 창설 이래 한국 사람이 유학생으로 온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조경을 공부하러 해외로 나간 것이다. 유학 이후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교수로 채용이 되고 쭉 교육자의 삶을 살았다. 당시만 해도 오휘영 한양대 명예교수님이 청와대 비서관을 하실 정도로 우리나라가 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터라, 많은 대학에서 조경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길 때였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졸업생들 대부분은 교수로 임용되거나, 혹은 기술사로 활약하며  조경의 초석을 닦았다. 조경 부흥기였기에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제가 기술사시험 출제를 많이 한 줄 알고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저의 강의노트나 논문 등을 공부한 적도 있었다. 사실 제가 그렇게 많이 출제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개발시기였던 70년대에는 공장이 많았고 환경오염도 심각했다. 환경정화를 목적으로 공장에 조경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공장조경 경진대회’라는 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실시했다. 여기에 심사위원으로 참여를 했는데 대회의 규모가 상당했다. 심사를 위해 심사위원들이 공장이나 공업단지에 가는 길을 경찰차가 에스코트를 하고 공장 종업원 모두가 나와 줄서서 박수를 쳤을 정도였다. 이 공장조경 경진대회에서 1등을 하면 대통령상을 받았는데 부상이 좋았다. 당시 공장에서는 쿼터제도에 의해 각 공장마다 할당받은 양만큼만 수출할 수 있었는데 1등을 하면 할당량을 늘려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두가 치열하게 조경을 잘 하려고 애를 썼다.

공장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국토조경운동을 하면서 사방에서 조경을 하는 일들이 많았다. ‘전국토 조경화사업’의 일환으로 각 시도의 조경을 평가했는데, 이때도 심사위원을 맡아 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1993년 한국조경학회장을 역임할 시절에는 한중일간의 교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의 ‘한중일 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일본이 중국을 조금 꺼려해서 한일, 한중 따로 진행했었고, 시간이 지나며 3개국이 함께 교류하게 됐다. 학생들의 방학기간을 위한 ‘조경디자인캠프’도 시작했고 여러 가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시작했다.

20년 전 아무도 옥상녹화에 대해 관심이 없을 때, ‘옥상녹화연구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옥상녹화에 관심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세미나를 하며 연구하는 모임이었다.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다 보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늘고, 정부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옥상녹화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이후 서울시에서는 옥상녹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서소문별관에 시범사업을 시행했으며, 민간건물에 옥상녹화를 할 경우 서울시가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 연구회는 2003년에 법정단체로의 변모를 위해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라는 공식 단체로 환경부에 사단법인등록을 했다. 이후에도 협회가 활발히 활동하다보니 정부에서 공무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서울시가 인센티브제도를 시행하니 점점 인공지반녹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당시 서울시가 인센티브를 주는 예산이 처음에는 10억 내외정도로 적었다. 이명박 전 시장 당시에는 그마저도 깎으려고 하더라. 이후 오세훈 시장 때에는 인공지반녹화협회장도 하면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을 때였다. 그래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차원에서 새로운 사업으로써 옥상녹화 사업을 내세웠다. 한 번은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차원에서 행사를 치렀는데, 시장과 시의원 다 초청해 옥상녹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옥상녹화를 함으로써 대기질이 좋아져 ‘시민의 수명이 5년 늘어납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장과 시의원을 설득했다. 그때 10억이었던 예산이 100억으로 대폭 늘어났다. 서울시가 활성화되니까 각 지자체로 파급이 되기 시작했다. 오세훈 시장이 구상했던 것은 남산 가시권에 있는 빌딩옥상 모두를 녹화하는 것이었고, 가시권역은 특별히 70%를 지원하자는 정책을 펼쳐서 옥상녹화사업이 많이 일어났다.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지속될 수 없었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지상에 녹화를 하기가 어려워진 이 시대에 옥상녹화는 예산은 적게 들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업인데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우리분야는 건축분야와 밀접하다. 산업차원에서는 건축에서 하도급 받는 일을 많이 하기도 한다. 그런데 건축분야와 교류하는 기회는 없다. 그 기회를 만들고자, 2001년 건축분야에서 생태환경건축학회를 만들 때 참여해 함께 창립했다. 학회는 건축, 조경, 환경, 실내건축까지 같이 손을 잡고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교류하자는 의도로 학회 2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학회 프로그램 중에 특강을 만들어 박명권 그룹한 대표를 초청해 조경에 대한 특강을 하기도 했다. 다들 조경에 대해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고 좋아했다. 처음에 학회에 참여하며 시도한 바가 건축과 조경이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을의 입장에서만 있지 말고 동등한 입장에서 교류하자는 차원에서 학회를 만들었고 활동해왔는데 조경분야의 참여율이 적어 안타깝다. 건축인들에게 조경분야를 소개하고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그동안 해왔던 내셔널트러스트운동도 초반에 들어가 기반을 닦았다. 자연환경, 문화재 보존문제 등에는 조경이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서울그린트러스트에 참여한 이유도 우리나라의 공원관리와 운영에 조경인들이 계속 참여해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과 함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조경의 영역을 넓혀보자는 취지로 활동을 전개해왔다. 한국인공지반녹화협회나 생태환경건축학회, 내셔널트러스트운동 모두 조경분야 외연확장의 일환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조경이 하는 일을 타 분야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까지 인식하도록 한다.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조경의 활동영역이 더 이상 넓어질 수가 없다. 우리가 울타리를 그어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파이가 커지지 않는다. 매년 조경 인재들이 배출되는데, 이들을 기존 시장에서만 활동하도록 두면 각자 가져가는 몫이 적어질 것이다. 앞에 가는 분들이 영역을 넓혀주면서 후배들이 따라오게 만드는 역할을 해줘야 발전을 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되면 안 된다.



저는 석사를 조경과 도시계획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안에 도시계획학과가 처음 생겼을 때 1회로 들어갔다. 현재는 환경대학원에 있다. 올해가 도시계획학과가 생긴지 50주년 되는 해다. 도시계획학과가 만들어진 것 또한 개발시대였기에 전문가가 없으니 학교 다닐 때부터 도시계획 일을 하곤 했다.

도시계획 업무를 위해 현장에 나가면 절대 손가락질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자가용이 없던 시대라 현장답사를 위해서는 관용차를 탔어야만 했는데, 관용차를 보면 동네사람들이 개발하려나보다 하고 눈치를 챈다. 거기에서 어느 방향이든 손가락질을 하면 그쪽으로 땅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말도 하지 않고 보고만 와야 했다.

조경은 도시를 만드는 일에도 필수적인 분야이다. 화성동탄1신도시를 시작으로 위례신도시, 인천 검단신도시 등에서 마스터플래너(MP)를 맡고 있다. 마스터플래너는 도시전체를 전부 다루는 일로 도시계획, 도시설계, 교통, 환경, 건축, 조경 등을 다 컨트롤한다. 

마스터플래너로서 도시를 하나씩 만들어보니까 도시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훤히 알고 있다. 신도시가 하나 완성되려면 5-6년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자문을 해야 한다. 설계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안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고 질이 좋아지는 것을 봐야 한다. 엉터리 같은 자문은 금물이다.

마스터플랜제도는 화성동탄1신도시 조성시 처음 도입됐다. 화성동탄1신도시는 처음 도입되는 것이다 보니 반발이 많았다. 이곳 같은 경우는 건물의 색채와 로고, 조망축, 스카이라인, 보행축, 녹지축까지 꼼꼼하게 다 살폈다. 도시의 색채까지 조화롭게 계획된 도시다. 이 사례는 LH사옥이 지방으로 이전되기 전 사옥의 1층 로비에 동탄신도시 모델을 전시해놓기도 했다.

위례신도시에는 ‘휴먼링’이라는 보행 네트워크가 있다. 차량과 사람이 입체적으로 분리되는 공간으로 언제나 보행으로 자전거로 통행할 수 있는 보행 전용공간이다. 휴먼링은 당초 없던 아이디어를 MP위원들이 반영한 것이다. 휴먼링은 인기가 많아 집값도 휴먼링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조경은 환경분야와도 관련이 깊다. 처음으로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도입됐을 때도 조경학회에서 이 제도에 대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누구든지 새 의자에 앉는 사람이 임자이니 우리가 앉으면 우리분야가 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별로 관심이 없어서 남의 분야가 되어버렸지만. 생태도시 이런 얘기도 아무도 관심 없을 때 열심히 이야기했다. 당시 조경분야에서는 환경을 이단시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항상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이 좋았다. 뭐든지 처음을 시작해야 남보다 앞서갈 수 있다. 남이 안하는 것을 먼저 시작하기 위해 지속해서 블루오션을 찾는 일들을 해왔다.

사회변화, 분야의 변화. 그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그 흐름을 캐치하고, 거기에 맞춰 우리분야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예측해서 빨리 변신해야 한다. 계속 발등에 떨어진 불 끄듯 해서는 절대 발전할 수가 없다.


현재 산업혁명의 물결과 함께 조경분야 또한 다양한 변화에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교수님의 혜안으로 조경분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신다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소위 말하는 4차 산업혁명이다. 그 흐름을 빨리 캐치해서 변신을 해야 한다. 인공지능부터 3D프린트, ICT, 블록체인, 그야말로 우리가 새롭게 접하는 것들이 물밀듯이 도래하고 있다.

지금 앞서가는 업체들은 신기술과 결합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조경분야 또한 따라가지 않으면 분야 자체가 낙후되고 심화되면 소멸될 수도 있다. 

우리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융합과 혁신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흐름이 왔을 때 얼른 흡수하고, 우리분야에 어떻게 도입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에 스타트업을 장려하고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지금도 어떤 분야는 소멸되고 있다.

분야가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 혼자의 힘으로는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조경업계는 한 사람, 한 기업이 돌파구를 마련하기 굉장히 어렵다.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구조, 개개인으로 활동하는 학계 등 집약해서 활동하지 않기에 취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있는 조직 중 한 조직이 나서서 체계적으로 새로운 혁신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긴 안목으로 스터디를 하고, 어떻게 준비해 나가야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도나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미룬다면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분야의 도태를 막기 위해서는 단체가 중심이 되어서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럿이 힘을 합쳐서 중지를 모으는 집단지성을 이용할 때이다. 많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 해결책을 마련해나가야지, 개인 혼자생각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단체는 플랫폼을 만들어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지속적으로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모아 로드맵을 만들고 방향성을 계속 제시해줘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둘레길, 올레길 등 걷는 길과 관련된 단체인 ‘길과 문화’라는 단체에서 이사장을 맡고 있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코리아둘레길민간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민간추진위원회에서 ‘코리아둘레길’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길과 문화라는 단체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한 ‘코리아둘레길’은 지난해 11월 조성을 선포했다. 1단계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동·서·남해안 및 비무장지대(DMZ) 인접 지역 등 우리나라 둘레의 길들을 연결할 계획이다. 이후 2단계에서는 구축된 길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의 운영과 안전하고 걷기 좋은 길을 위한 민관협력 유지·관리 방안의 지속적 운영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올해는 코리아둘레길 서해안 지역의 노선을 선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둘레길은 각 지역마다 연결이 되기 때문에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기에 지자체마다 보행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을공원시민모임에서는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몇 가지 구상하고 있는 내년도 사업 중 하나는 서울에 청소년 환경교육 센터를 조성하는 것이다. 아직은 구상단계이다.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가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할 수 있는 한 사회를 위해서, 또 우리 분야를 위해서 기여하는 활동들을 해나가려고 한다.





글·사진_전지은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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