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의 손에 비춰진 일의 원형,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

[전시·문화] 오래된 정원사의 일하는 손가락이 보여주는 미래사회 일 이야기”
라펜트l기사입력2019-04-10

 

‘초록엄지-일의 즐거움’은 현대사회에서 평생 힘겹게 지고 가고 있는 일의 원형을 정원일에서 발견해보고자 하는 전시이다. 

오래된 정원사의 일하는 손가락이 보여주는 미래사회 일 이야기를 그리는 ‘초록엄지-일의 즐거움’ 전시가 오는 4월 13일(토)부터 9월 1일(일)까지 블루메미술관 전관과 야외중정에서 개최된다. 

전시는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사회 일의 속성을 가장 오래된 정원일에서 찾는다.

‘머뭇거림, 타자에 대한 놀라움, 기다림과 무한함’ 같은 정원일의 속성이 직업의 범주를 떠나 미래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될 것이라 예측하며 이를 현대미술작가들 그리고 타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그려본다. 

이 전시는 정원사의 손에 주목한다. 모니터 앞의 작은 손가락으로 축소되어 가는 인간의 모습을 목도하며 정원사의 초록으로 물든 엄지, 그 일하는 손가락은 다가올 새로운 시대 역시 매일 일하며 살아갈 누군가의 모습에 어떤 영감을 주는가? 고된 노동(labor), 비효율적인 행위(action)와 기다림이 긴 작업(work)인 정원일은 왜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 그 기쁨은 인간의 조건인 일하는 삶 자체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할 행복과 겹쳐지는 것인가?

흙일, 식물과의 일을 벌이는 정원에서 정원사는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나 그 움직임에는 언제나 멈춤이 있다. 

땅의 시간에 맞추어 과정적인 시간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기계는 할 줄 모르는 ‘머뭇거리는’ 능력에 주목하는 한병철의 전망과 같이 정원일의 더딤과 고요함, 한가로움은 앞으로 나아갈 사회가 품을 일의 속성에 가 닿아 있다. 

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될 미래사회에서 일은 주어진 틀 안에서 쳇바퀴 돌 듯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위한 여가와 일의 경계가 사라지고 자신이 조정하는 이완과 머뭇거림의 공간 안에서 놀 듯 일하고 일하듯 노는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머뭇거릴 줄 아는 정원사의 모습은 예술가의 일하는 모습에 그대로 겹쳐진다. 대자연의 섭리를 이야기해 온 박혜린 작가는 그 거대한 시간의 원리를 멈춤의 경험, 함께 노니는 소요의 경험을 통해 관객들과 함께 느린 풍경으로 만들어간다.

모든 것이 정량화, 균일화하는 디지털 사회는 어딜가나 똑같은 삶을 목격하게 한다. 세계는 모니터크기로 줄어들고 관계는 사라진 채 경쟁만 남아있다. 이러한 균질의 시대에 정원사는 늘 변화하는 살아있는 것들을 마주한다. 정원의 땅은 몸을 가진 각자를 개별화하고 망막의 감각만 남은 디지털시대에 정원일은 인간이 대지 위에 설 기회를 준다.

그리하여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놀라움을 회복시킨다. 정원사의 걱정하는 손은 자아를 저 자신에 갇혀있는 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함께 걷고 있음을 매일 제 몸으로 경험하게 하며 세상과 관계맺고자 하는 일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줄 것이다.

자신의 손놀림으로 모내기와 같은 연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아리송의 작품과 끊임없는 몸의 노동으로 치우고 가꾸고 돌보는 정원사의 하루 일을 경험하게 하는 슬로우파마씨의 공간은 정량화할 수 없는 온전한 나 그리고 우리가 되어 일하는 모습을 그려낼 것이다. 
 

박혜린, 봄여름가을겨울, 2019, 나무, 가변크기 / 블루메미술관 제공


아리송, Green Wave, Green Weave, 2019, 복합재료, 가변크기 / 블루메미술관 제공


슬로우파마씨, 정원사의 하루, 2019, 나뭇가지, 흙, 돌, 식물, 가변크기 / 블루메미술관 제공


슬로우파마씨, 정원사의 하루, 2019, 나뭇가지, 흙, 돌, 식물, 가변크기 / 블루메미술관 제공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일하는 삶이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비껴가게 만드는 것은 효율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현재적 효능성이 큰 하루를 늘이는데 온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정원에서 하루의 가치는 수치화하고 계획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편입된다. 하루가 닫히며 기능함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긴 미래를 향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원일은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마는 소모적인 사회가 곧 그 스스로 거대한 생명의 원리에 속함을 알며 보다 길고 멀게 나아갈 줄 아는 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질 미래사회의 일터에 많은 부분을 내다보게 만든다. 

파종에서 수확까지 인간의 행위를 받아들이는 간척지 땅의 흙을 전시장으로 들여오는 김도희 그리고 미술관의 중정에 자연이 그 스스로 만들어가고 가꾸어가는 지속가능한 생태정원을 일구는 제주 베케 더가든의 작품은 예측불가능의 무한한 흐름안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회복하는 인간 본연의 일의 원형을 찾아갈 것이다. 


김도희, 체온을 닮은 산, 2019, 다양한 지역의 흙, 가변크기 / 블루메미술관 제공


베케 더가든, 블루밍 메도우Blooming Meadow 2019, 식재용토, 다년생초본 / 블루메미술관 제공


베케 더가든, 블루밍 메도우Blooming Meadow 2019, 식재용토, 다년생초본 / 블루메미술관 제공

전시는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정원에서 초록빛으로 물든 엄지는 일 가운데 깊은 심심함에 빠지기도 하고 거대한 흐름 안에서 나를 발견하며 타자에 대한 놀라움을 회복하게 하는 일하는 손가락이다. 미래를 향해있는 그 일하는 손가락을 지금의 정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블루메미술관 제공
글_김지혜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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