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시선] 정원으로 만나는 명사들의 삶

성종상 논설위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라펜트l기사입력2016-10-18
정원으로 만나는 명사들의 삶


_성종상 교수(서울대 환경대학원)


얼마 전 시내에 나간 김에 짬을 내어 대형 서점을 들린 적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도시농업과 정원에 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진 듯하여 그 사이에 좋은 책이나 잡지가 새로 나온 게 있는 지 궁금해서였다. 예전과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 낯설기까지 한 서점 정원 및 도시농업 분야 코너에는 아쉽게도 새로 출판된 책도 별로 없었거니와 잡지는 아예 진열되어 있지도 않았다. 반면에 주동선상에 놓인 판매대에는 온통 음식과 관련된 책들만 잔뜩 진열되어 있었다. 여전히 우리는 먹는 화두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씁쓸하게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3년 전 순천에서 한국 최초로 국제정원박람회가 개최된 이후 전국 여러 지역에서 정원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펼쳐지고 있고, 도시농업과 텃밭 관련 행사도 심심치 않게 소개되곤 하지만 정작 대중 속으로 널리 퍼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바라는 것이 있다. 시대를 앞서가거나 영향력이 있는 이들이 정원생활을 즐기면서 신념을 지키거나 구현하고 삶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시범으로 보여 주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특별히 아파트가 주거유형의 대다수인 한국에서 정원을 일상 속에서 즐기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시대를 앞서 살았던 명사들이 어떻게 정원을 가꾸며 자신의 삶을 지켜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흔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은 대통령이면서 정원을 즐겼던 이들이다. 그들이 정말로 훌륭한 정원가 이었는지 알고 싶다면 마운트 버논(워싱턴,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Adams National Historic Garden(애덤스, 매사추세츠 퀸시), 몬티첼로(제퍼슨, 버지니아 샬로츠빌), 몬펠리에(매디슨, 버지니아 오렌지)을 방문해 보라. 특히 워싱턴은 신생국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를 훌륭히 완수하고 나서 다시 한 번 더 대통령직을 맡아 달라는 주위의 간청을 뿌리치고 곧장 달려갈 정도로 자신의 농장 마운트 버논을 사랑했다. 비교적 젊은 67세에 그가 사망한 것도 초겨울 눈비 속에서 정원을 둘러보다가 감기에 걸린 것이 원인이 되었을 정도로 정원은 그에게 각별한 곳이었다. 제퍼슨의 정원에 대한 사랑은 더욱 유별나다. 그는 자신의 집 몬티첼로를 직접 터부터 찾아 설계하여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집과 정원도 여럿 설계해 줄 정도로 일가견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직접 고른 자신의 집터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작은 산꼭대기였다. 몬티첼로라는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작은 산’이란 뜻이다. 지금처럼 수도나 전기시설이 없고 자동차도 없던 당시에 비록 낮은 산일지라도 꼭대기에서 살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 그곳을 택했던 것은 ‘발 아래로 온갖 자연의 변화현상이 펼쳐지는’ 곳이라고 그가 평할 만큼 그곳에서 접하는 자연이 특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사방으로 탁 트인 전망과 경치를 즐길 수가 있다. 특히 저택 동측에 있는 텃밭 가에 그가 직접 디자인하여 세운 작은 파빌리온에 앉아 있노라면 동쪽으로는 망망무제로 펼쳐진 파노라믹 조망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곤 했던 그는 무한히 펼쳐진 전망을 바라보면서 신생국 미국의 미래를 마음속으로 무수히 그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길이 300여 미터가 넘는 텃밭에다 유렵에서 가져온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곤 했다. 텃밭 아래 과수원은 그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했던 포도, 올리브, 석류, 무화과, 아몬드 등 170여 품종의 과수들을 심고 길렀던 곳이기도 하다. 버지니아주가 오늘날 미국 내 두 번째 와인 생산주로 자리 잡게 된 것에도 그의 공이 크다. 그렇게 무수한 실험을 거쳐 선발된 식물들을 산 아래 농가에 배부하여 주었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이념 중 하나인 ‘농업이상국가(Agrarian Ideal)’의 꿈을 엿볼 수도 있다. 정원을 대학이 갖추어야할 필수시설로 간주한 그의 생각은 그가 말년에 직접 설계한 ‘아카데미컬 빌리지’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함께 배우고 실천하는 장으로서 정원만한 곳이 없다고 믿은 그는 대학 캠퍼스를 도서관, 교수 주거지, 학생 기숙사, 강의실과 함께 공동 정원과 공동 잔디밭으로 구성된 공간 모델을 제시하였다. 지금의 버지니아 대학 교정에는 그 당시의 공간구조와 구성요소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퍼슨이 설계한 몬티첼로와 아카데미컬 빌리지는 현재 미국에 몇 안 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몬티첼로 저택과 주정원. 2009. 5. Ⓒ성종상

영국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윈스턴 처칠도 대단한 정원 애호가였다. 2차 대전 중에 타고난 글 솜씨와 언변으로 연합국전선을 이끌어내 결국에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그는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사람을 만드는 것은 집이다.”라고 하면서 집과 정원의 중요성을 갈파했던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집을 고를 때에 직접 땅을 답사하여 관찰한 후 지형과 물이 풍부한 지를 확인하곤 했다. 영국의 대표적 역사 정원 중 하나인 블렌하임에서 태어난 그는 생애 동안에 두 개의 정원을 완성하여 즐겼다. 노년에 40여 년을 보낸 차트웰(Chartwell)은 자신의 책을 판 돈으로 구입한 땅에 조성한 정원이다. 언덕 위에다 저택과 정형식 정원을 배치하고는 그 아래쪽 계곡부 습지와 작은 연못을 활용하여 큰 연못과 수영장을 조성하는 등 지형 조건에 맞추어 정원을 조성했다. 차트웰을 떠나서 보낸 하루는 낭비한 날이라고 할 만큼 그에게 있어서 차트웰은 각별한 곳이었다. 지금도 차트웰에는 그가 즐겨 사용했던 낚시터 의자와 그림 그릴 때 사용하던 이젤과 화구 등이 남아있다. 


윈스톤 처칠이 직접 땅을 고르고 만든 정원 차트웰. 키친 가든을 두르고 있는 담장도 그가 직접 쌓은 것이다. 2016. 7. Ⓒ성종상


처칠과 부인 클레멘타인이 나란히 앉아 있는 동상이 그가 만든 연못을 향해 놓여 있다. 2016. 7. Ⓒ성종상

한 달 전에 영국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에 있는 하이그로브(Highgrove) 정원을 방문했다.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30여 년 전부터 몸소 가꾸어 온 정원을 보기 위해서 두 달 여 전에 미리 예약을 해 둔 터였다. 영국 바스에서 일주일간의 이코모스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을 마치자마자 차를 빌려 혼자서 1시간여를 달려갔더니 입구 건물엔 이미 스무 명 정도 되는 예약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정원 가이드는 맨 먼저 작은 방문자 방으로 우리를 데려가서는 찰스 황태자가 직접 나와서 설명하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내 정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그는 자신과 하이그로브 정원과의 각별한 관계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정원이 “나의 눈을 기쁘게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며, 내 영혼을 살찌워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이그로브에서 시도한 정원가로서의 몇몇 면모에 대해 추가로 설명한 이후 그는 마지막 인사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앞에서 말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내가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내 정원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정원 내 거의 모든 것을 자연 순환과정에 맞춘 유기농으로 관리된다는 것이나 지역에 자생하는 야생화로만 구성된 야생화초지를 갖출 정도로 지역성을 중시한 그의 훌륭한 개념보다도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정원에서 길러 낸 그의 생각이었다.


영국 찰스 황태자의 정원 하이그로브 입구. 원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다. 2016. 9. Ⓒ성종상

사람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길은 여럿이다. 지도력, 지성, 박식함, 원대한 비전, 그리고 지혜와 도덕성까지 겸비한 것으로 간주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원을 국가적 이상의 표상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평생 이사를 다녔던 헤세는 가는 집마다 정원을 가꾸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고, 조선 유학의 큰 선생으로 추앙받는 퇴계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도 매화를 염려했다. 치열하기만 했을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삶에 있어서 정원은 여백이기도 하고 충전소이기도 했다. 인간의 신념과 이상, 도덕과 심미관의 발로 내지 구현의 장이 바로 정원이라는 점에서 필자는 정원이야말로 그 사람의 품성과 됨됨이를 알게 해주는 지표라고 믿는다.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시달리며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 한국에서 감수성과 섬세함, 근면과 기다림, 그리고 도덕과 배려를 갖춘 리더는 과연 어디서 찾을 수가 있는가? 그 답을 정원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자 기대이기도 하다.
글·사진 _ 성종상 교수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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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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