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괴석이 아름다운 화양구곡의 중심 '괴산 암서재'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18회
溪邊石崖闢 시냇가 바위 벼랑 열렸으니
作室於其間 그 사이에 적절한 집을 지었노라
靜坐灵經訓 조용히 앉아 경서의 가르침 찾음은 물론
分寸欲躋蠜 시간을 다투어 깊이를 이해하고 따르려 애쓴다네”
- 암서재 현판에 걸려있는 우암 송시열의 시 -
암서재에서 본 화양동구곡 좌측(여름: 강충세.2009)
암서재(巖棲齋)는 조선조 중기의 거유(巨儒)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이 은거한 별서이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409번지에 위치해 있다. 송시열은 중국의 무이구곡을 본받아 화양동의 곳곳에 펼쳐지는 승경 가운데 아홉 군데를 골라 화양동구곡(華陽洞九曲)이라 불렀고 이곳의 산수를 즐겼다. 우암은 젊었을 때 영동의 한천정사(寒泉精舍)에 머물렀지만, 더 오래 기거할 장소를 찾아 화양동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화양구곡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서 송면리 쪽으로 화양천의 계곡을 끼고 약 4km에 걸쳐 펼쳐지며, 계곡 안에 넓게 조성된 담(潭)과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단애, 하상면에 발달한 큰 바위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장기적으로 은일하여 지내기에는 최상의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암서재에서 본 화양동구곡 우측(가을: 강충세.2009)
암서재 내원도(김영환.2014)
그 세부내용을 보면 1곡은 경천벽(警天壁)으로 기암이 가파르고 형세가 신비로와서 하늘을 떠받치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2곡은 운영담(雲影潭)으로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곡은 읍궁암(泣弓巖)으로 청나라의 무력 침략을 설욕하기 위해 북벌을 꿈꿨던 효종 임금이 뜻을 이루지못하고 승하한 것을 슬퍼하며 우암 송시열이 매일 새벽마다 활처럼 엎드려 통곡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4곡 금사담(金沙潭)은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가 돋보이는 휴식 장소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5곡은 별보기가 가장 좋다는 첨성대(瞻星臺), 6곡 능운암(凌雲巖)은 큰 바위가 구름을 뚫고 우뚝 솟아올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7곡은 크고 길다란 바위가 용이 누워 꿈틀 거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어 와룡암(臥龍巖), 8곡은 학소대(鶴巢臺)로 청학(靑鶴)이 바위산에 깃들여 새끼를 쳤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9곡 파천(巴川)은 개울 복판에 흰 바위위로 흐르는 물결이 마치 “용의 비늘을 꿰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졌고 , 신선들이 내려와 이곳에서 자주 술잔을 나누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암서재 외원도(김영환.2014)
우암은 이곳에 은거하다가 부름을 받아 조정에 나갔고 사임하고는 다시 돌아오기를 여러 차례 거듭했다. 우암은 화양동의 수려한 산수를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 여겼고 주자와 율곡의 학문과 인품을 숭상하여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다.
암서재(巖棲齋)는 우암이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4곡 금사담 위에 있으며, 소를 이룬 물가에 큰 바위들과 노송에 둘러싸여 있다. 건물은 8작지붕을 가진 목조로 지어졌고 두칸이 방이고, 나머지 한 칸은 마루로 되어있다.
암서재 근경(가을: 강충세.2013)
암서재 내부에서 본 차경(강충세.2013)
“암서재(巖棲齋)란 의미는 암반위의 거처를 가리키는 것으로 마치 산새가 바위속에 둥지를 틀 듯, 화양동의 풍광속에 깃들여져 자연과 더불어 살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암서재의 마루에 앉아 앞을 내려다보면 송면리 쪽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화양천의 맑은 물이 바닥에 부닥쳐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장관을 즐길 수 있다.
암서재는 현종9년(1668)에 처음 지은 것으로 되어있고 제자인 권상하(權尙夏:1641-1721)가 후에 서실(書室)로 개조를 하였다. 그리고 일제말기 후손들이 훼손된 것을 보수하였고, 1970년과 1986년 현재의 상태로 다시 정비하였다.
암서재에서 권상하는 “화양동의 물과 돌은 충청도와 경상도를 통틀어 으뜸(華陽水石之勝甲於湖)”이라며 이곳의 절승(節勝)을 찬양하였다.
山翁歸思不愖 산 늙은이 가고픈 마음 견딜수 없어
屋下淸溪夢裏廻 집옆 맑은 시내 꿈속에도 들어오네
遙想茅儋生瑗氣 멀리 생각하니 초가집에 따뜻함 생기고
黃梅空自一枝開 황매화 부질없이 한가지 피었으리
상기시는 우암이 자신이 기거하던 화양동을 잠시 벗어나 한양으로 왔을 때 읊었던 시로 한양에서 생활하면서도 화양동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암은 물건너의 초당에 살면서 암서재를 갈 때는 읍궁암 앞에 매어둔 조그만 배로 화양 천을 왕래하였다고 한다.
금사담암서재도1
금사담 암서재도2
화양천의 발원은 속리산 국립공원내 대야산과 청화산자락에서 시작되어 달천, 그리고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화양구곡에는 계곡을 따라 자연환경도 아름답지만, 우암 송시열의 사상과 신념을 상징하는 문구들이 많다. 이는 이 지역이 주자의 무이구곡처럼 성리학적 유교관과 자연에 귀의하고자 하는 선비의 뜻이 잘 표현된 구곡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암각자(岩刻字)는 여기를 다녀간 인사들의 관직과 이름까지 하면 122건으로 구곡 중에서는 국내에서 최다이다. 특히 암서재가 있는 금사담 주변은 구곡 중 중심부분으로서 충효절의(忠孝節義), 창오운단(蒼梧雲斷), 무이산공(武夷山空), 천주경혜성로벽(天柱擎兮聖路闢), 고산앙지혜무유적(高山仰止兮撫遺跡), 대명건곤(大明乾坤), 화양수석(華陽水石) 등 암각이 많이 있다.
암서재 원경(가을:강충세.2013)
암서재 원경(여름:강충세.2009)
이외에 암각자로 선비의 마음과 뜻을 잘 나타낸 글씨로는 1곡 경천벽(擎天璧)의 화양동문(華陽洞門), 5곡 첨성대(瞻星臺)주변의 만절필동(萬折必東), 비례부동(非禮不動), 옥조빙호(玉藻氷壺),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 6곡 능운대(凌雲臺) 주변의 금파암(金坡巖), 오봉(五鳳), 9곡 파곳의 대명유민(大明遺民) 등이 있다.
암서재 위치도
읍궁암(강충세.2013)
우암 송시열과 관련된 시문집은 권상하(權尙夏)가 편집한 황강본(黃江本)이 있다. 그리고 1717년 민진후(閔鎭厚: 1659~1720)의 건의에 따라 왕명으로 발행된 우암집(尤庵集)이 있다. 이후 송자대전(宋子大全)은 정조 11년 1787년에 215권 102책으로 저술되었다. 어명(御命)으로 조성된 초기의 송자대전의 판각은 이곳 화양동에 있는 환장각(煥章閣)에 소장되어 있었는데, 순종 무갑년(戊甲年)에 일본군의 침입에 의해 소각되었다. 지금의 송자대전 판각은 1925년 을축년에 그 후손과 전국유림들이 모여 대전시 소제동 기국정(蘇提洞 記菊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는 대전시 가양동 소재 남간정사 옆 장판각(藏版閣)으로 옮겨져 소장되어 있다.
운영담 외원(가을: 강충세.2013)
암서재 측량도(이재근.1991)
그리고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는 우암과 관련되는 유적이 많다. 청전면 청전리에는 우암 신도비와 묘소가 있는데, 이것은 수원 무봉산에 있었던 것을 영조33년(1757)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묘소에는 2개의 묘비와 문인석, 망부석 등이 갖추어져 있다. 신도비는 묘소 아래에 있으며 정조3년(1779)에 세운 것이다. 정면3칸 측면2칸 팔작지붕의 비각안에 정조의 어필로 쓰여져 있는데, “이 비는 특별히 국난이 있을 때에는 비 자체에서 땀을 흘린다”고 전해져온다.
암서재는 충북유형문화재 제175호의 하나로 지정되었으나 1999년12월 사적 제417호인 ‘괴산 송시열유적’으로 승격되어 괴산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암서재를 비롯한 화양구곡은 향후 명승으로 지정 관리되어야 한다.
화양구곡은 단위 문화재로서 암서재와 관련한 화양서원(華陽書院), 초당(草堂), 만동묘(萬東廟)등 이 있어 사적이 되어있지만, 무엇보다 경관이 우수한 우리나라 구곡중 가장 대표성이 있기 때문이다.
화양서원
-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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