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와 소통하는 환경조형물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23회
라펜트l임승빈 명예교수l기사입력2014-11-02
대형 건물 앞에 설치된 환경조형물은 일반 대중의 예술품 접근성 향상과 가로경관 향상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어왔다.

대형 건물(연면적 1만㎡ 이상) 신축 시에는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건축비의 일정 비율(0.5~0.7%)에 해당되는 미술장식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대형 건물 앞에는 미술장식품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사람을 주제로 한 환경조형물이 늘어나 보행자의 눈길을 끌고 있으며 대부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음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환경조형물은 대비적 구성이 요구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눈에 잘 띄는 화려한 색깔이나 반사율 높은 유리, 알미늄 등의 재료 보다는 보행자에게 보다 친근한 느낌을 주는 색깔이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태에 있어서도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보다는 의미를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익숙한 유기적 형태를 주제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환경조형물은 순수 예술작품과는 성격이 달라서 주변 환경과의 조화 및 보행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

사람을 주제로 한 조형물은 보행자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고 조각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 건물 형태와 조화되고 장소 특성이 잘 표현된다면 성공적 환경조형물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주제로 한 조형물에는 실제 크기의 사람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큰 크기로 만드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사람크기의 조형물은 좁은 가로 혹은 작은 규모의 광장에서 볼 수 있으며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람보다 훨씬 큰 크기의 조형물은 넓은 간선도로변, 혹은 큰 규모의 광장에서 볼 수 있는데 기념비적 규모를 지니므로 시각적 초점을 형성하고 복잡하기 쉬운 넓은 공간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서울 방배동 ‘삼성출판사 앞의 책 읽는 사람’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와 잘 어울리는 조각이다. 건물 앞의 거창한 소위 문패조각과 달리 소박하면서도 친근하여 고등학교에 접한 가로의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이와 같이 보행자에게 친근감과 볼거리를 주고 가벼운 호기심을 일으킬 수 있는 가로는 시민의 사랑을 받는다.


서울 방배동 삼성출판사 건물 앞의 독서하는 사람_ 고등학교에 접한 가로와 출판사 건물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조형물이다. 건물과 조화되는 색채와 규모를 지녔다

인천 송도의 쇼핑몰(NC Cube) 가로 중앙에 위치한 수로에는 ‘다양한 자세의 사람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앞서의 독서하는 조형물과 같이 보통사람의 크기를 지녔으며, 생활에 바쁜 도시인들 모습을 지녀서 보행자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특히 물 한가운데 위치하여 조형물과 함께 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면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복잡한 쇼핑몰에서 정적요소인 물과 함께 사람 모습의 조형물은 보행자의 시선을 끌고 흥미 있는 경관을 연출한다.


인천 송도 커넬워크 쇼핑몰(NC Cube)의 사람 조형물_ 물에 투영되는 그림자와 함께 독특한 경관을 연출한다. 생활에 바쁜 나 자신의 모습을 닮아있어 친근감을 느끼며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사람을 주제로 한 조형물의 크기가 매우 클 경우 시선을 모으는 힘은 극대화 되어 주변 장소의 시각적 초점이 된다. 큰 규모의 조형물은 건물의 일부분이 되기보다는 건물과 대비되는 형태를 갖게 되어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마련이다. 

서울 퇴계로 5가 네거리 ‘CJ빌딩 모서리에 위치한 사람 조형물’은 작은 블록을 붙여 만든 듯 보이는데, 하얀 색채와 사람형태가 CJ빌딩과 대조를 이루며 크기도 보통 사람보다 훨씬 커서 주변 환경과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매우 두드러져 보인다. 이와 같이 강한 대비를 지니는 조형물은 복잡하고 산만하기 쉬운 네거리에서 시각적 초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전체 공간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CJ빌딩 모서리의 사람 조형물은 앞서 언급한대로 시각적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만, 조형물자체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혹은 사거리의 장소성과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등 도시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서울 퇴계로5가 사거리 CJ빌딩 앞 사람 조형물_ 건물과 대비되는 색채와 형태 그리고 커다란 규모를 지녀서 혼잡한 사거리에서 시각적 초점이 된다. CJ빌딩 모서리에 위치하여 모서리의 날카로움과 위압감을 완화시킨다. 이러한 대형 조형물은 보행자에게 친근감 보다는 상징성 혹은 비일상성을 느끼도록 해준다.

서울 이화동 사거리 ‘홍대 건물 앞의 인체 조형물’은 8m 높이로서 실제 사람 크기보다 훨씬 크며, 앞서 퇴계로의 조형물과 마찬가지로 형태에 있어서 캠퍼스 건물과 대비를 이루나 색채에 있어서는 회색조의 캠퍼스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조형물은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흥미를 돋우고 있으며, 비교적 복잡한 입면을 지닌 홍대 건물의 전면 광장에서 구심점 역할을 한다. 


서울 이화동 사거리 홍대 건물앞 인체 조형물_ 사람 조형물은 다른 조형물에 비해 시각적 인지도가 높으며 기억에 오래 남는다.

서울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앞 광장에는 ‘세 개의 인체 조형물’이 광장의 대각선 방향으로 줄지어 서있다. 조형물들은 양재사거리 방향을 보면서 각자 다른 움직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어 보행자가 많은 양재역 쪽으로의 방향성을 암시하고 있는듯하다. 조형물은 보통사람의 3내지 4배 크기이며, 앞서의 조형물만큼 크지 않은 대신 세 개의 조형물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집합적으로 시선을 끌어주며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이는 낮은 편이나 보행자들은 이러한 집합적 형태의 공간 안에서 기존의 일상적 도시가 주는 경험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도시와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앞 인체 조형물_ 일렬로 배치하여 방향성을 주고 있으며, 한 가족의 구성원같이 보여 가정법원의 성격과 부합되고 있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앞에 있는 보로프스키(Borofsky)의 작품인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은 망치를 든 오른손이 오르내리며 망치질하는 조형물로서 천천히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여 보는 사람의 흥미를 끌고 있으며 흥국생명 건물의 인지도를 높여 준다. 사람 키의 10배가 넘는 크기(20m)로 보행자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검은색 철제 조형물로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노동에 시달리는 도시 근로자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차가운 도시에서의 차가운 조형물은 역설적으로,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잊고 지내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어 보행자로 하여금 조형물의 의미를 음미하도록 만든다.


서울 흥국생명 건물 앞의 인체 조형물(Hammering Man, Borofsky)_ 오른팔로 망치질하는 움직이는 조형물이어서 보행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보로프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은 시애틀, 바젤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가로변 건물 입구에 인접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규모와 형태의 독특성으로 인해 입구의 인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 가는 외국 도시에서 눈에 익숙한 조각을 보면 반가움과 더불어 친근감마저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명하다고해서 건물 형태와 재료, 가로의 특성이 다른 장소에 동일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은 맞춤이 아닌 기성복을 입은 것과 같아 예술성이 저감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미술관 실내에는 어느 도시에서나 동일한 조각 작품을 전시할 수 있으나, 도시가로의 특정 장소에 놓이는 환경조형물은 다른 장소의 조형물과 차별화되는 고유성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미술관 앞(좌)과 스위스 바젤시 UBS 건물 앞의 ‘망치질하는 사람’_ 순수 예술작품으로서의 조각과 달리 환경조형물은 장소의 특성에 부합되어야한다면, 맥락이 다른 장소에 동일한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환경조형물로서의 인체조형물은 보행자에게 익숙한 형태여서 보행자에게 친근감을 주고 풍부한 의미를 전달 할 수 있어 긍정적 측면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인체조형물이라 할지라도 주변 건물 및 가로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더불어 장소의 특성에 부합되어야 환경조형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게 된다. 

환경조형물이 의미를 전달한다는 말은 보행자와 소통한다는 뜻이며 소통을 통해서 보행자와 환경이 하나가되고 도시의 장소성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규모, 동일한 건물, 동일한 지리적 맥락을 가진 곳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영화촬영세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하므로, 서로 다른 장소에서 동일한 조형물이 환경조형물로서의 역할을 동등하게 충실히 수행한다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환경조형물 본연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고려한다면 환경조형물은 장소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고유한 창작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행자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환경조형물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장소의 고유한 특성과 부합되는 환경조형물 창작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자!

연재필자 _ 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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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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