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용설명서, 에필로그

[동영상 인터뷰] 임승빈 명예교수(서울대)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4-12-29

2013년 1월, ‘도시사용설명서’ 가 첫 발을 내딛었다. 올 12월, 마지막 24회까지 독자의 높은 관심 안에서 절찬리에 연재를 마쳤다.


임승빈 명예교수(서울대)는 ‘도시사용설명서’를 통해 사람이 주체가 되는 도시경관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그의 글을 인용하는 사례도 있을 정도로, 많은 공감대를 얻었다.


“나 자신이 도시의 모습과 혼연일체가 되어 도시의 진정한 모습과 의미를 경험할 수는 없을까?”


첫 회에서 던졌던 화두가 과연 지금 필자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될지, 임승빈 교수와 지난 2년을 회고하고, 도시의 나아갈 방향을 그려보았다.



2년 연재를 마친 소감


‘도시사용 설명서’를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이번 연재에서는 나름대로 두 가지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했다. 하나는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도시의 모습이 만들어진 배경, 현재 모습의 이해, 그리고 더욱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교과서적 설명보다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사진만 보고도 글의 초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도시사용설명서는 일반인들이 가로를 거닐면서 도시를 보다 비평적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며, 더 나아가 바람직한 도시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데 모두가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게 됐다.


사실 2년 전 대학 정년을 맞아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해방감에 익숙해지고 있던 시점에 라펜트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고 나 자신을 새롭게 추스릴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어 선뜻 수락했다. 그동안 1년 약속을 2년으로 연장했고, 도시의 여러 현장을 다니면서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 즐거운 글쓰기 경험이었다.


처음 1년 연재에 앞서 12회를 과연 무엇으로 채울까 걱정도 됐었는데, 막상 쓰다 보니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담기에는 1년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나 연재를 마친 지금에와서 돌아보면, 역동적인 우리나라 도시의 다양한 장소와 프로그램을 모두 소개하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우리나라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도시지역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노력이 도시인을 위하여 꼭 필요한 작업임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추후 ‘도시사용 설명서2’로 이어가고자 한다.


그동안 졸고를 흔쾌히 실어주신 라펜트에 감사드리고, 격려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연재 동기와 주안점은?


현대의 도시들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얼굴과 속살을 지니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의 도시들도 자기만의 색깔과 모습을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도시의 모습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의 역동성은 멀게는 1995년 지자체장 선출을 직접선거로 전환한 점, 가깝게는 2007년 경관법 제정에 따른 경관계획의 법제화를 주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의 외관뿐만 아니라 도시인의 생활패턴, 여가행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는 하드웨어(건물과 같은 도시형태)보다는 오히려 소프트웨어(행사와 운영 등의  프로그램)의 다양화가 두드러진다.


도시에 살고 있는 개인으로선, 다양한 장소와 이와 연계된 프로그램(행사)을 모두 알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부 장소만을 이용하거나 일부 프로그램에만 참여하게 된다. 이들이 도시 내 장소와 프로그램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를 통해 한층 보람되고 활기찬 도시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시사용 설명서’를 연재하게 된 동기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도시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바람직한 장소와 프로그램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통하여 시민들이 바람직한 도시 만들기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24회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과 에피소드?


‘21회, 음악이 흐르는 거리를 걷고 싶다.’ 주제로 소개된 ‘달려라 피아노 프로젝트’는 가로에 청각적 요소를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보행자가 직접 연주하며, 참여할 수 있으며, 피아노 기증과 입양, 피아노 채색 및 연주 재능기부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의 상보적 나눔을 통하여 창의적 보행문화를 만드는 좋은 사례로서 기억에 남는다. 이와 유사한 창의적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원고를 써 내려가며, 도시에 대한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로수를 도시인의 ‘반려식물’로 대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마치 참선하면서 느끼는 ‘법열’같은 즐거움을 누리는 소득이 있었다. 말없이 묵묵히 서있는 식물이지만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도시인을 배려하는 가로수를 반려자로 대우하고 가꿔나가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연재를 마치며 아쉬웠던 점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글을 쓰다 보니 글 내용이 보다 읽기 쉽고 이해가 쉬워야하는데 전문용어 등을 친근하고 용이한 단어로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국내외 사례를 소개함에 있어서 자료 부족과 지면의 제한으로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한 점도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보행자 배려가 부족한 우리 도시, 나아갈 방향?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도시들은 매우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동력이 난개발로 흐르지 않고 창조적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 눈높이에서 도시개발과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 눈높이에서 도시를 바라보는 대표적 정책이 ‘보행친화 도시만들기’이다. 보행친화적 도시는 보행전용도로의 확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행자 눈에 보이는 가로경관이 개선되어야 하고 보행자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풍부한 프로그램을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 도시들이 지향해야할 방향은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가로경관은 가급적 단순하게, 가로에 담는 프로그램은 될 수 있는대로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다. 즉 복잡성이 극에 달하고 있는 가로에서는 무엇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색채와 형태와 재료 등을 단순화 시키는 ‘빼기 디자인’ 그리고 무미건조한 가로에는 보행자가 즐겁게 참여할 수 이는 ‘더하기 프로그램’을 지향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빼기’와 ‘더하기’를 통한 보행 친화적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정, 전문가, 시민이 함께 노력하여야 한다. 현대 도시가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행정력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전문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한 다자적 협의에 의한 도시문제해결이 필수적이다. 최근 도시개발에 있어서 시민참여가 알면 활성화되고는 있으나 아직도 형식적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보다 효율적 시민참여를 위하여는 실제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행정과 전문가의 시민참여에 대한 보다 많은 배려가 필요하며, 동시에 시민의식 향상을 위한 행정과 전문가의 지속적 투자와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더불어 도시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상호간에 재능기부 등 나눔을 통하여 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된 ‘달려라 피아노’와 같은 자발적 ‘도시만들기’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실천해나가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도시만들기(경관분야)에서 조경계가 노력해야할 일은?


우리나라에 조경이 도입된지 40년 이상이 지났지만 아직도 식물위주의 조경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식물은 조경가가 타전문가에 비하여 비교우위가 높은 분야이지만, 식물은 공간을 만들고 생태환경을 만들기 위한 훌륭한 소재일 뿐이다. 더구나 조경가가 식물의 활용에만 전문성이 있어야하는 것도 아니다. 기상이변 등 기후변화에 대처해야하는 현대도시에서 조경가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히 지나가는 통로가 아니라, 대화를 나누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머무는 장소로서 도시 가로의 이용행태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인의 활동을 친환경적, 효율적으로 지원해주는 조경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조경인들은 서구의 디자인 중심적 조경영역에 머물지 말고 보다 폭넓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시작된 ‘랜드스케이프 어바니즘’도 전통적 조경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혹은 확장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 건축과의 경계 영역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전문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도시재생, 그리고 도시경관 등과 관련한 전문적 역량의 배양이 필요하다. 이들 경계영역은 특정 전문 분야의 고유영역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고, 해당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능력있는 사람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에 경계에 주목하고 능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환경조경나눔연구원의 지난 일년을 회고한다면?


환경조경나눔연구원 설립 원년인 2013년은 재단법인 설립, 운영위원 구성 등을 통한 연구원의 법적, 인적 기초를 확립한 해였다고 한다면 설립 2년차인 올해는 연구원의 활동좌표 설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범적으로 시행해온 해라 할 수 있다.


작년부터 시작한 복지시설의 녹화나눔은 금년에도 나눔연구원 대학생봉사단을 비롯한 회원과 함께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으며 나눔연구원의 기본사업으로서 정착단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와 공동으로 연 2회 개최하는 시민조경아카데미 역시 나눔연구원의 정기적 사업으로 자리잡어 매년 400여명의 시민조경리더를 양성하며, 일반 시민의 조경에 대한 인식제고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주)예건과 공동으로 개최한 ‘예건조경나눔 공모전’은 대학생들이 디자인과 나눔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기회 제공과 나눔문화의 확산을 위하여 기획되었으며, 앞으로도 시대적 요구도가 높은 조경과제와 조경나눔을 함께 주제로 엮어서 매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자 한다.


또한 골목길 가꾸기 사업을 통하여 조경분야의 도시재생 참여가능성을 확인한 해이기도 하다. 금년 말부터는 어린이 조경학교를 보라매공원과 공동으로 개최할 예정으로서 꿈나무들에 대한 조기 조경교육을 실시하여 환경 및 조경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모든 사업은 나눔연구원을 후원해주시는 후원회원, 운영위원, 그리고 조경인 모두의 격려와 성원 덕분에 가능하였다. 한 해 동안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부터는 시야를 넓혀서 국가적으로 조경나눔을 필요로 하는 사업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자한다. 시민 교육의 대상을 성인뿐 아니라 자라나는 미래세대로 넓히는 노력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또한 계층간 평등한 녹색환경복지 실현을 통한 그린유토피아를 지향하는 나눔연구원의 지속적인 활동을 확장시키기 위해 현재 200명 정도에 머물고 있는 후원회원을 2.000명 수준으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자 한다. 조경인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후학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은?


나눔연구원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나눔사업을 진행하면서 최근의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때일수록 움츠려들지 말고 더욱 열심히 일을 하면서 다가올 기회에 대비하여야한다.”면서 적극적 후원을 아끼지 않는 다수의 조경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분들의 말씀과 헌신은 나눔연구원을 운영함에 있어서 정말로 커다란 힘이 되었으며, 이러한 분들이 조경분야에 계시는 한 조경분야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느 분야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침이 있게 마련이며 이러한 변화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자신이 맡은 일, 해야할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다보면 새로운 기회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조경이라는 직업, 자신이 하고싶은 일이고, 그리고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망설이지 말고 이 분야 최고가 되는데 전력을 기울여 노력하기 바란다. 반드시 성공적인 일생이 기다릴 것이다. 조경은 미래세대에 필수적인 친환경적 친인간적 직업이며 절대로 소멸될 수 없는 직업이다.


다가오는 2015년 새해, 희망을 갖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조경인의 모습을 기대한다.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 연재모음(클릭시 이동)



1. 편하게 길을 건너고 싶다

2. 차 없는 길을 걷고 싶다

3. 이웃과 소통하는 골목길을 보고 싶다

4. 녹색이 충만한 가로를 걷고 싶다

5. 하늘과 산이 보이는 가로를 걷고 싶다

6. 가로와 소통하는 건물을 보고 싶다

7. 광장에 머무르고 싶다 

8. 보행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담장을 보고 싶다

9. 물이 흐르는 가로를 걷고 싶다

10.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싶다

11. 강변따라 도시역사와 자연을 보고싶다

12. 밤이 아름다운 도시를 걷고 싶다

13. 밤에는 향토성이 깃든 빛의 향연을 보고 싶다

14. 품위를 지키는 문화재 건물을 보고 싶다

15.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성벽을 보고 싶다

16. 녹시율 100% 도시를 보고 싶다

17. 반려식물로 대접받는 가로수를 보고 싶다

18. 장소의 역사성을 배려하는 건물을 보고 싶다

19. 여름 휴가를 도심에서 즐기고 싶다

20. 주민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벽화마을을 보고 싶다

21. 음악이 흐르는 거리를 걷고 싶다

22. 전통시장에 놀러가고 싶다

23. 보행자와 소통하는 환경조형물을 보고 싶다

24. 간판이 아름다운 가로를 걷고 싶다


2년여의 긴 시간동안 빠짐없이 뜨거운 열정으로 ‘도시사용설명서’를 집필해 주신 임승빈 교수님께 이 자리를 통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글·동영상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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