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벽화마을을 보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20회
라펜트l임승빈 명예교수l기사입력2014-08-01

최근 대규모 도시재개발, 뉴타운의 대안으로 중소규모 도시재생 특히 마을재생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벽화마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낙후된 주거지 골목길에 벽화를 도입하여 밝고 친근한 마을을 만드는 것이 마을재생의 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벽화마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6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일정규모 이상의 신축건물에 건축비 1%에 해당하는 예산으로 조각 등 예술작품을 설치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이는 공공미술을 통해 가로미관을 향상시키고 예술작품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작가선정, 작품의 질 등에 있어 문제점이 노출되는 상황에서 2003년 참여정부가 출범하였고, 공공미술의 역할에 대한 반성과 함께 공공미술을 통한 소외지역의 생활환경개선에 기여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방안의 하나로 낙후된 주거지 골목에 벽화그리기를 지원한 것이 벽화마을의 시작이다. 당시 정부는 낙후된 생활환경 개선을 목표로 서울의 이화동을 포함하여 전주, 여수, 대전, 부산 등 전국의 소외 지역 32곳을 지원하였고, 이렇게 벽화를 통한 마을재생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현재는 벽화마을이 전국적으로 1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마을재생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데, 벽화에 그치지 않고 텃밭, 꽃심기, 쉼터, 도서관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골목길 환경개선 및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
이화동 벽화마을은 정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일환으로 2006년 벽화가 도입된 마을로서, 매체 등을 통해 유명해지면서 벽화마을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에는 벽화에 더하여 골목길 빈터에 꽃과 나무를 심고, 텃밭과 쉼터도 조성하고 있다. 페인트로 그린 벽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벗겨지고 흐려져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데, 작년에 벽화를 다시 그리고, 새로운 그림이 추가되어 더욱 화려한 골목길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정한 주제 없이 산만함 혹은 혼잡한 느낌을 주는 것은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작년부터는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이화동 벽화마을을 더욱 의미 있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마을 내 오래된 주택을 수리하여 마을역사와 생활도구들을 전시하는 마을 박물관은 이곳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더 많은 볼거리와 차원 높은 문화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방문객이 늘어날수록 소음 등으로 주민들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요구된다.

 
이화동 꽃계단. 계단에 꽃 그림이 있고 경사가 급하여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원래는 페인트로 그렸으나 작년에 내구성을 고려하여 타일로 다시 그렸다.



이화동 벽화마을. 계단과 벽에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재미있는 그림이 많아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하나 일관성 있는 주제를 찾기는 어려워 자칫 혼잡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마을박물관은 보다 풍부한 문화경험을 제공한다.


관악구 인헌길 13
다세대 주택이 많은 3미터 폭의 좁은 골목길에 별을 주제로 벽화를 그리고 꽃을 심어 골목분위기를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 보다 흥미와 친근함을 주고 있다. 또한 일부 벽화는 타일을 사용하여 내구성을 높였으며, 쓰레기가 자주 쌓이는 곳에는 ‘양심거울’을 설치하여 쓰레기 투기를 방지하고, 동시에 거울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가 되게 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 골목길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에 진행됐다.


이 골목은 폭이 좁아 주차를 할 수 없어 보행자와 꼭 필요한 통과차량만 지나갈 수 있어  다른 골목에 비하여 안전하고 쾌적하다. 따라서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통학 길로 많이 이용되고 있어 골목길 가꾸기 사업의 효과가 크다.


이곳에는 꽃을 심어 골목길을 한결 화사하고 친근한 분위기로 만들고 있으나, 골목이 좁아 화단을 설치할 여유가 없어 벽걸이 화분을 도입하고 있는데 관수 등 주민들의 자발적인 지속 관리가 요구된다.
 관악구 인헌길 13. 낙성대가 인접해있어 별을 주제로 벽화를 그려 넣었으며, 양심거울, 꽃 등이 어우러져 한결 밝고 친근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외부인에게 보여주기 위함 보다는 주민을 위한 소박함이 돋보이는 골목이다.


천안 미나릿 마을
미나릿 마을은 천안 중앙시장에 접하고 있으며, 점집이 산재되어있는 단층 주택지이다. 폭 2미터 내외의 좁은 주택가 골목길에 벽화를 도입하여 밝은 분위기의 골목을 만들고 있다. 초가집, 서당, 한복 등 주로 향토적 소재의 그림을 그렸으며 트릭아트 도입과 황토 바닥길 조성이 특징적이다. 주민보다는 방문객을 위한 벽화 전시장 같은 구성을 하고 있으며 연인들을 위한 사랑의 열쇠걸이도 있다.


골목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있는 노인에게 벽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니,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심심하지 않아 좋다고 한다. 외지인이 많이 다녀 우려되는 프라이버시 침해 및 소음발생 등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 통행이 거의 없던 낙후된 골목이 훤해지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여 골목이 활성화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나, 사랑의 열쇠걸이 등을 보면 주민들보다는 방문객을 의식한 벽화도입으로 보인다.
 
천안 미나릿마을. 벽에서 말, 호랑이가 튀어 나올듯한 착시효과를 보여주는 트릭아트.

 
천안 미나릿마을. 향토적 소재의 그림이 많으며 황토바닥이 특징적이다. 열쇠걸이는 주민보다는 방문객을 위한 시설이다.


중계동 백사마을
중계동 104번지 일대는 1960, 1970년대 철거 이주민들이 정착한 낙후된 마을로서 ‘백사마을’로 불려왔다. 불암산 자락으로서 그린벨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해제되어 개발기대가 높았으나 뉴욕발 세계금융위기 이후의 국내 부동산 경기하락으로 개발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고층과 저층을 혼합한 개발안이 계속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백사마을에는 마을 어귀부터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곳곳에 있는 쇄락한 빈집과 허물어진 담장 등으로 골목 분위기가 매우 썰렁한 가운데 벽화의 밝은 색들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소 완화시키고 있다.


이곳의 벽화는 여러 그룹의 사람들이 시기를 달리하여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토속적 그림이 있는가하면 현대적 이미지의 그림들도 보인다. 벽화는 한번 그린 후 일정 주기로 관리를 해주어야하는데 마을 성격상 관리가 잘 안되고 다양한 성격의 그림들이 섞여있어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곳 주민들은 벽화에 대해서 특별한 호불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으며, 언제 개발이 될지가 최대의 관심사인 듯하다.

중계동 백사마을. 토속적인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관리가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쇄락하고 침체된 골목길에서 다소의 시각적 위안이 됨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중계동 백사마을. 마을 어귀에 그려진 고목은 정자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계동 백사마을. 비교적 최근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백사마을의 역사를 시기별로 나누어 그리고 있다. 철거민이주, 그린벨트 지정, 해제, 재개발 추진 등으로 나누어 재미있는 그림과 함께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어 방문객에게 유익한 정보를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에게도 과거를 회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남아공 케입타운의 보캅(Bo-kaap) 마을
보캅마을은 네덜란드 식민지시절 케입타운 건설을 위하여 강제로 끌려온 노예가 살았던 뼈아픈 역사가 깃든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당시 끌려온 말레이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데 집마다 파스텔조의 강렬한 색으로 벽을 칠하여 독특한 골목 경관을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이 다양한 색의 칠을 한 것은 유색인종 차별정책이 없어지면서 이를 기념하는 의미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가 살던 마을이 화려한 색으로 재탄생되고 활기 있는 마을로 변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케입타운의 보캅마을. 노예가 살던 마을이 화려한 색을 입고 변신을 하였다. 주택가 통로 벽에는 노예의 역사가 그려져 있다. 유색인종 차별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렬한 색으로 표출되었다고 한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근대적 의미의 벽화 시작은 1960년대 시작된 미국의 그라피티(graffiti)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뉴욕의 빈민가에서 스프레이로 그리기 시작한 벽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으며, 초기에는 낙서수준의 그림들이었다. 1980년대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골칫거리로 등장했으며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점차 그림의 수준도 높아지고 사회상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전시회도 여는 등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베를린 도심 슈프레강변과 베를린 교외 공원건물의 그라피티



(좌)보존하여 전시하고 있는 베를린 장벽의 그라피티, (우)프라이부르그시의 체육시설 벽화는 체육시설의 분위기에 맞게 공차는 모습을 그려 단조로운 벽면을 흥미롭게 바꾸었다.



베를린 아트월(art wall) 전시. 새로운 형식의 야외 벽화미술 전시. ⓒ임주원


서구의 그라피티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벽화는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2006년 정부 주도하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으며, 낙후된 마을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외벽에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마을벽화가 서구의 그라피티와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라피티는 남의 눈에 안 띄게 그리고 사라지는데 비하여 우리 마을의 벽화는 주민들과 협의하고 주민들의 동의하에 그린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벽화가 낙후된 마을을 활성화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기존의 벽화마을에서 입증되었다. 집 자체를 수리하는 등의 본격적인 마을재생을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데 비해, 벽화는 적은 예산으로 침체된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어 마을을 점진적으로 활성화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너무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산만하고 이질적인 그림으로 마을에 혼잡한 느낌을 준다든지, 관리가 잘 안되어 그림 색깔이나 형태가 변하는 등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벽화가 그려지면 외부 방문객이 많아지는데 주민의 입장에서는 골목이 시끄러워지고 사생활이 침해되는 등의 문제가 있어 벽화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주민도 있다.


따라서 벽화는 우선적으로 주민들의 정서에 맞고 마을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골목길 경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도입되어야 하며, 지속적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주민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고 다음으로 방문객도 즐길 수 있는 골목환경을 만든다면 소외된 계층의 생활환경개선이라는 본래의 목표에 충실하게 될 것이다.


주민들을 배려하기 위해 벽화 도입과 화분, 쉼터, 텃밭, 도서실 등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함께 강구함으로써 낙후지역 마을재생이라는 목표를 한층 더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주민이 주인대접 받는 벽화마을을 보고 싶다.
벽화, 쉼터, 텃밭, 도서실 등 종합적 지원으로 마을재생을 완성하자!



글·사진 _ 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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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b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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