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아름다운 도시를 걷고 싶다.

[조경명사특강] 임승빈 교수의 도시사용설명서_12회
라펜트l임승빈 명예교수l기사입력2013-12-03

21세기 들어 도시 야간경관의 중요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지구촌이 24시간 깨어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야간 활동이 늘어나게 됐다. 이로 인하여 야간 경관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야간에는 조명을 통해 주간과는 다른 새로운 가로경관을 연출할 수 있어서, 밤의 도시는 연극무대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한 도시의 경관이 만들어지려면 수 십 혹은 수 천년 걸리는데 비해 야간경관은 짧은 기간 내에 효율적 조명을 통하여 원하는 모습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야간경관은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을 투자하여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화려한 조명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고 시민들의 야간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야간에는 덴마크의 심리학자 루빈이 주장한도형(figure)과 배경(ground)의 역전현상이 일어난다. 밤에는 조명을 비추는 특정 부분이 노출되는 반면, 낮에 잘 보이던 형태(도형)는 어둠에 묻혀 배경이 된다. 또한 건물의 경우에는 실내가 밝아져 건물 속살이 훤히 드러나게 된다. 야간에는 이러한 특성을 잘 파악하여 강조할 부분을 잘 선택해야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의 안경점_ 야간에는 도형과 배경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다. 즉 낮에 잘 보이던 건물 외관은 어둠속으로 사라져 배경이 되고, 조명이 비추는 밝은 실내가 도형으로 드러나서 주간과 역전된 경관이 연출된다.

 

 

서울시청사_ 야간에는 건물의 속살이 드러난다.

 

조명을 무조건 밝고 화려하게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상점에서는 자신의 점포를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무작정 밝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람직한 야간경관연출을 저해한다. 이러한 사례는 주간에 요란한 장식물과 채색으로 자신의 건물만을 돋보이게 하여 가로경관의 질서와 조화성을 저해하는 일부 예식장 혹은 주유소 건물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

 

 

슬로베니아의 야간 가로경관_ 주요 건물에는 벽면조명을 하고 기타는 보행에 필요한 조명만 하여 부드럽고 조화로운 야간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아드리아 해변_ 수변의 방파제 가로등 불빛을 최소화하여 바다수면과 멀리보이는 야경이 드러나게 하고 있다(). 작은 교회건물은 야간에 랜드마크이면서 장소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주변보다 밝게 조명하고 있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고건축 등 문화재가 많이 있고 이들 도시에는 야간 관광객이 많으므로 조명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는 아직도 중세도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데 야간조명과 경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눈부신 형광등이나 원색조명을 지양하고 주요 랜드마크 건물을 강조하면서 부드러운 색조의 조명을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품위있는 야간경관을 연출하면서 동시에 주요 건물의 아름다운 자태를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체코 프라하 가로경관_ 가운데 성당 건물 벽면을 조명하여 강조함으로써 초점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가로 전체가 통일성과 조화성을 보여주고 있다. 좌우의 건물은 저층부만 부드럽게 조명하고, 가로등 불빛으로 인한 눈부심이 없도록하여 중심건물로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지광장의 조명_ 배경에 있는 성당건물의 조명색을 전면에 있는 건물의 조명색과 달리하고 조도를 높여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도록 하였고, 광장바닥은 최소한의 밝기를 유지하고 있다(상단/좌측 하단). 박물관 건물은 제일 높은 부분인 돔을 강조하여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우측 하단).

 

우리나라는 2007년 경관법이 제정되고 지자체의 경관계획이 활성화되면서 야간경관계획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야간 경관에서도 주간 경관과 마찬가지로 조화성과 통일성 부여를 계획의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 즉 요란한 색채의 조명을 서로 경쟁하듯이 밝게만 한다면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경관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성백제 시대부터 계산하면 이천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이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건물이 많지 않아 도시전체에서 역사적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대문 안을 제외하면 높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도시 전체로 볼 때는 현대식 건물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건물에는 과도하게 밝고 자극적인 색조의 조명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청계광장 주변의 조명을 보면 인근 건물에는 빨간색, 노란색, 하얀색 그리고 청계천에는 청색 등 대비되는 거의 모든 색이 섞여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는 가로 전체경관을 하나로 보지 않고 건물과 청계천에 개별적인 조명계획을 하였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가급적 원색을 지양하고 낮은 채도의 동일한 색상을 주조색으로 하면 어느 정도 통일된 가로 경관을 연출할 수 있다.

 

청계광장의 스프링조형물 자체는 적절한 조도와 색감을 보여주는 야간조명이지만, 주변 건물을 포함한 가로 전체를 보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청계광장 및 수로조명을 강조하고 주변 건물은 조도를 낮추어 스프링 조형물 그리고 폭포와 물길이 더욱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계광장의 조명_ 빌딩의 붉은색 조명과 수로의 청색조명이 대비를 이루어 가로 전체 경관의 혼잡도를 높이고 있다(). 스프링 조형물의 조명은 조형물만 볼 때는 문제가 없으나 가로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매력 있는 강변의 야간 경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주변 구릉지나 물과 하늘의 경관이 인위적 조명으로 인해 묻히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야간에는 인공적 디테일을 사라지게 하고 주변 구릉지 지형, 하늘의 달과 별, 그리고 물을 강조시켜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대자연의 파노라마 경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연요소 다음에는 조명을 통해 강조해야 할 대상의 위계를 설정하여야 한다. 우선은 교량을 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교량은 물과 대비되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흥미로운 시각적 초점이 될 수 있고, 기능적 측면에서도 어두운 강변에서 방향을 잡는 기준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는 강변의 공공건물이나 역사성이 있는 건물, 즉 국회의사당, 공연장, 경기장, 기념탑 등을 강조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한강변 야간경관(성수대교)_ 야간에는 인공물의 디테일이 제거되어 하늘과 물이 주가 되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경관을 경험할 수 있다. 가로등, 건물 등에서의 인공조명은 하늘, 달과 별 그리고 물이 드러날 수 있도록 과도한 조명을 제한하여야 한다.

 


2013 9 19일 추석 보름달_ 야간에는 달이 주요한 경관요소로 등장한다. 특히 수변에서는 달과 별이 강조되는 조명계획이 필요하다.

 

한강에는 약 30개의 교량이 있는데 최근 야간경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부분의 교량에 조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교량마다 조명색을 달리하고 있어서 차를 타고 강변로를 지나면, 통일성과 연속성을 느낄 수 없다. 주조색 범위를 정하고 이 범위 내에서 적당한 리듬이 있는 변화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강은 도심을 관통하는 강으로서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규모가 크고 길며, 양안에는 고속화 도로가 달리고 있어 시민들의 시각적 접근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한강의 교량 조명디자인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연속적 교량경관을 감상하는 즐거운 드라이브 경험을 시민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동시에 서울의 브랜드가치가 상승되어 많은 외국관광객이 서울을 찾아올 것이다.

 



반포대교(잠수교)와 성수대교 조명_ 두 개의 교량에 전혀 다른 개념의 조명디자인을 도입하고 있어 강변로를 주행하면서 보는 경관에 연속성과 조화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강에 있는 약 30개의 교량에는 제 각각의 조명을 하고 있어 리듬있는 경관 연출이 필요하다.

 

야간경관 못지않게 일몰 직전의 경관도 아름답다. 햇빛이 약해지면서 경관의 대비성과 선명도가 낮아져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건물이나 구조물의 디테일은 아직 살아있으나 윤곽이 강하게 부각되지 않고 경관요소들이 어슴푸레 전개되어 보는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사색에 젖게 한다. 특히 강변이나 호수에서는 저녁 노을의 끝자락 엷은 분홍색이 경관전체를 물들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완전히 지고나면 달과 별이 새로운 경관요소로 등장하는데, 저녁노을부터 달과 별이 등장하는 야간까지의 연속적 경관변화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독특한 경관체험이 될 것이다.

 



일몰 직전에는 엷은 분홍색으로 물든 아름답고 부드러운 경관이 연출된다._ 동호대교(상), 슬로베니아(하)

 

현대도시는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져 24시간 깨어있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으며, 야간조명의 문제점도 증가하고 있다. 야간조명이 활발해지면서 빛 공해가 문제시되어 주거지역에서는 수면방해 요인이 되고 도로에서는 눈부심 현상으로 운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도시의 상업지 경관은 요란스러운 간판으로 인해 극도로 혼잡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주간의 혼잡한 경관이 야간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손님의 시선을 끌기위한 경쟁으로 자극적 색채의 조명과 높은 조도의 간판들이 난립하여 품위 있고 아름다운 야간경관 연출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주유소 건물과 대형 미디어보드의 과도한 조명으로 눈부심이 생겨 도로가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이고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서울 반포구)

 


우리나라 상가의 과도한 조명이 필요한 것인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주간에 보여지는 상가 간판의 혼잡함과 무질서가 야간경관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대캠퍼스 앞 상가).

 


중심가의 상가 조명은 밝기를 최소한으로 낮추어 눈부심을 줄이고 트램 정거장 쉘터가 잘 보이도록 하고 있다(스위스 바젤).

 

도시에 있어서 야간 조명은 단순히 어둠을 밝히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야간조명을 통하여 도시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노력을 선진도시에서 볼 수 있으며 우리의 도시도 이러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우리나라 도시들에서도 야간경관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음은 바람직한 현상이나 아직은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초보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무작정 화려하고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을 보장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조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 즉 하늘, 달과 별, 그리고 물을 강조함과 더불어 위계 있는 조명계획이 필요하다.

 

도시에서도 달과 별이 있는 밤하늘을 보고 싶다.

조명을 줄이고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드러나는 야경을 만들자!
연재필자 _ 임승빈 명예교수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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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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