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미래, 조경학도가 말한다

건진법부터 조경면적까지, 조경학도 생각은?
라펜트l나창호 기자l기사입력2014-11-02


“미래에 대한 막막함, 불안함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었다.”


건진법 사태와 조경기준, 그리고 조경면적...
법과 제도 개정소식이 연일 라펜트 조경뉴스 앞머리를 채운다. 그리고 일련의 소식에 누구보다 가장 큰 목소리로 반응한 것은 실무자가 아닌 조경학도였다.


이들은 라펜트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 소식을 접하며, 조경가로서의 미래를 썼다 지우고, 다시 그리고 있다. 한국 조경 미래 주역인 조경학과 학생들은 건진법에서부터 조경면적 폐지까지의 조경분야가 법제도의 부당함을 경험하면서, 과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펜트 녹색기자단이 조경학도로부터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자연과 환경, 그리고 사람의 관계와 조화를 생각하는 ‘조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한 조경과 여학생은 대한민국의 미래 환경에 대해 걱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과 사람과 환경의 관계, 생물과 무생물의 조화를 생각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과를 창출해내는 일을 ‘조경’이 아니고서 할 수 있을까? 바탕이 없는 곳에서 탄탄한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조경과 조경설계를 무시하는 작금의 현실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 눈앞의 경제논리를 통해 법과 기준을 바꾸는 정부와 정책 결정권자들...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이 미래에 재앙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조경복원법을 다시 만들 계획인지 묻고 싶다. 인간이 훼손하는 지구 위에서 또 다시 살아가는 후손을 위해서라도 조경은 그 어떤 분야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그릇이 작다고 불평하는 건축, 토목, 그리고 산림에 계신 분은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몫을 다 하고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


같은 맥락에서 또 다른 여학생은 부실한 설계와 시공으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그에 반해 법률은 거꾸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 조경에 첫 발도 디뎌보지 못했는데, 이러한 일이 벌어 졌다는 것이 억울하다. 조경은 다른 디자인 분야와는 다르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설계되고 시공됨을 익히 알고 있다.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공부하고 고민했다. 이번 일은 정말 맥이 빠진다. 부실한 설계와 시공으로 인해 많은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높은 수준의 조경 전문가를 요구하는 법을 만들어 질 높은 시공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이처럼 학생들은 자연과 환경이 배재된 정부의 일방적 규제완화 정책에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도시와 자연, 그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조경의 역할과 당위성을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왜 인지하지 못하는지, 학생들은 답답해 했다.


불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로 향하던 화살은 조경학과 교수님과 기성세대로 향했다.


“우리에게 조경이라는 학문을 알려주신 교수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교수님들은 이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막막함은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저 이 법안에 대해서 결과만 통보 받은 우리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나.”


조경 법규가 사라지면 많은 조경회사가 문을 닫게 되고, 결국 학생들은 취업전선에서 방향을 잃게 된다. 모든 것은 조경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로 향하는 불만의 목소리는 라펜트 토론방과 페이스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건진법 사태가 하나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이 곳에 등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조경분야내 세대와 계층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높게 쳐져 있었음을 살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뭘 했나?”라는 짧은 문장 안에는 ‘지금까지 조경을 배워온 과정에 대한 부정’과 ‘기성세대에 대한 원망’이 뒤섞여 있었다.


“학생들 취업까지 책임져주지 못하더라도 본인이 가르친 학생들이 그 역량을 펼쳐볼 장을 마련해주는 건 교수의 책무가 아닐까? 학생들 사이에 불안감이 팽배한 이 사안을 모르는 교수님이 상당하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어느 조경과 학생은 조경단체를 중심으로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항상 타 분야에게 입지를 뺏겨오면서도 손쓰지 않고 방관했던게 큰 문제가 아닐까 한다. 다른 분야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도 모두가 분노만 했지 그에 대해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 작금의 사태에 이르게 만든 것 같다. 더욱이 힘이 약할수록 내부적으로나마 똘똘 뭉쳐야하는데, 내분과 끼리끼리가 횡행한 작금의 조경분야 모습은 실망스럽다.”


“갈수록 낮아져만 가는 기사합격률도, 진지하게 전과를 권유하던 선배들의 목소리도 지금 이 순간만큼 내 숨통을 죄지는 못하였다. 한번 물렸으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언젠가는 또 물릴 것이다. 갈수록 조경은 다른 분야에게 또 틈을 내줄 것이다.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늘 좁은 우리 안에서 싸우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


그러나 라펜트로 전달된 의견 속에는 후배의 미래를 걱정하며 조언하는 선배 조경인도 다수 있었다. 조경관련 단체에서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기관과 국회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어느 조경시공 종사자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시선에서 오히려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라펜트 페이스북에 남긴 학생들의 댓글을 보았다. ‘조경을 떠나자. 다른 일을 알아보아야 하나? 선배들은 무엇을 했나’로 채워졌다. 어느 것이 잘못됐고, 과연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찾기는 힘들었다.”


적어도 조경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일희일비해서도, 수동적이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어른들 일이라며, 참여없이 비판만 하는 것도 좋아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 딱딱하기만 했던 법률이 학교와 멀리 있지 않다는 인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준 것이다. 조경과 학생들은 건설기술진흥법과 건설기술용역업을 들추어보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이어진 조경기준과 아파트 조경면적 폐지 소식에 귀를 기울이며 조경계 어려움을 인지하게 됐다.


이러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 SNS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펜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lafent)이 진원지였다. 댓글로 친구를 불러오는 ‘@’ 태그기능이 정보공유 확산 방법으로서 특히 빛났다. 정보공유 범위도 확대되었고, 토론내용을 뉴스로 피드백하고 확산하는 토론문화의 가능성까지 점칠 수 있었다.

 

조경분야가 어려움을 겪으며 학생들의 생각들도 하나 둘씩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제는 조경계의 변화를 이끄는 당당한 주체로서 요구하고, 나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결집된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8년만에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전국 조경학과학생 연합회(전조련)’가 학생들의 참여부족으로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막막함과 불안함은 자발적인 현실참여로 깨뜨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얽힌 실타래를 푸는 첫 움직임이다.


전조련에서 참여한 산림조합법 개정안 철회 시위(ⓒ박명권)


취재:라펜트 녹색기자단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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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_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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