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실이가 그리는 협업의 기술(下)

[국민책방 인터뷰] 유승종 대표 - 권병준 작가
라펜트l나창호 기자, 전지은 수습기자l기사입력2014-04-01


 

권 작가님은 조경가와의 작업으로 조경에 대한 인식도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어떠세요?


권: 조경하시는 분을 처음 만나본거예요. 이전까지 조경은 마당에 나무심거나 건물 주변을 꾸미는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조경이라는 것이, 미디어가 될 수 있고, 음악적 아이디어가 되기도 하는... 새로운 어떤 것들과 결합한 열린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을 작업을 통해 하게 된 것 같아요.


평소 자연과 풍경을 다룰 땐 진지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어쩌면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해왔었죠.

 

제주도엔 야자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있진 않았겠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제주도의 야자수를 익숙하게 바라봅니다. 그런 지점인거 같아요. 자연에 인간이 개입하면 바꾸기 힘이 들어요. 그런데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이게 뭔지 잘 모릅니다. 단지 익숙해지면서  그렇게 같이 사는거죠. 그냥 맞다 틀리다 정도로 생각할게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을 대할 땐 한 없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유 대표님과의 일련의 작업을 겪으며 ‘조경가의 손길이 닿음으로써 더 나은 풍경도 가능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권 작가님은 건축과 도시계획 분야의 작가들과도 작업을 해오신줄 아는데요?  


권: 어떤 프로젝트로 사람이 모이면 그 프로젝트로 열심히 협업을 하고, 생각을 하곤 하는데, 항상 잘 떨어지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다들 바쁘다며, 실질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워요. 건축하시는 분 중에는 굉장히 진취적이신 분들이 많으시고, 다른 유형의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서도 제각기 성향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떤 분은 다른 사람의 건물을 부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자신의 건물도 같은 상황에 처해질 텐데 말이죠. 단순히 자기 이름이 박힌 작품이라는 프라이드에 매몰된 그런 사람을 보면 참 바보스럽다고 느낍니다. 건물을 부술 때 찡하는 마음, 원 설계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런 기본적인 마음자세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렇게 건축물을 자신의 치적으로 생각하시는 분과는 협업이 안되더라고요. 저는 건축가 누가 했다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 뒤에 담긴 생각과 이야기를 반추하고, 그 건물이 왜 지켜져야 하는지 이유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결국 부셔질 건물’이라고 처음부터 받아들인다면, 만드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물론 모두가 그렇진 않습니다. 그래서 얻는 것도 많고,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이것도 악기일까요?' 프로젝트에서 권병준 작가(http://blog.naver.com/livescape)

 



그렇다면, 협업 상대로서 유승종 대표는?


(유: 잠시 자리를 피해야 겠네요. 웃음)
권: 배려심이 많으시죠.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고 아이처럼 전혀 다른 분야의 것들에 대해서 스펀지처럼 흡수하려고 하세요. 꿈이 많으신 분 같아요. 그래서 열려있으시고, 좋은 에너지를 주변에 퍼뜨리시는 분이시죠. 생각도 재미있으셔서, 궁금함에 항상 질문을 던지고 싶게 만드는 분입니다.


반대로, 협업 상대로 권병준 작가는?


(권: 전 진짜 나갔다 오겠습니다. 웃음)
유: 저보다도 더 조경을 알고, 자연에 대해 민감해 하세요. ‘우리가 우리를 이렇게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반추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셨죠. 이 분을 만나면서, ‘그동안 난 새로운 것만 붙이려 했구나.’란 자기반성을 했습니다. 붙인다는 것은 자신의 것에 자신없어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협업 상대로, 권 작가님은 상대방을 배려해 주십니다. 열려있기 때문에 작업에 끝을 두지 않아요. 악기만들기 프로젝트에서도 디렉터로서 절대 다른 사람을 푸시하며 결과물을 만들라고 하지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주는 쪽에 가깝죠. 아이디어를 만들어주는데 자기의 전문성으로 기꺼이 헌신하시지요. 그런 면에서 많이 열려 있으시죠. 무엇보다 저와 다르기 때문에 안심이 되요. 전 계획에 따라 컨트롤이 되어야지 직성이 풀리지만, 권 작가님의 끝은 항상 열려있거든요.


이제 협업이란 키워드가 점점 수면 위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시대의 협업이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유: 재능기부처럼 협업이란 단어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죠. 협업은 계약관계가 아니라 서로에게 배우는 관계, 그 자체로 인식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어마어마하게 성공해야지’라는 생각으로 결과에 집착하면 안된다는 말이죠. 협업으로 다른 전문가로부터 직접 배우는 것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하고 같이 일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결과로 가는 방향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이 되거든요. 협업이란게...


 ‘내 공정은 이거니까, 당신은 이 일을 맡아’ 이건 협업이 아니라, 갑을병 계약관계 입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협업은 비빔밥 같은 것입니다. 다 같이 먹는 거죠. 그것이 즐거움이 되고, 에너지로 표출됩니다. 협업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탁월하면 좋겠지만, 그것에 연연해하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는 것 같아요.
 
테이크어반 때 처음 그런자세를 익힌 것 같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느슨하게, 하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열정을 존중하고 가는 것이 올바른 협업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가 원하는 방향을 오픈하는 것에서 출발해 받아들이려는 열린 자세가 협업의 시작이죠. A와 B가 만나 AB가 나오는게 아니라, 무엇이 나올지 몰라야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예측을 안하고 가는 것도 좋은 출발일 것 같네요.


디자인하는 사람은 컨트롤 증후군이란게 있습니다. 계획과 예산범위 안에서 ‘우리는 여기까지’로 선을 긋죠. 그러나 협업에 있어서는 그런 사고가 없는게 좋지 않나 생각됩니다. 잡는 것보다 펴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많이 담을 수 있으니... 저도 방금전 권 작가님이 말씀하신 유형의 건축가가 싫어요. 이젠 마스터의 시대가 아니에요.


이제는 집단 지성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뉴스를 보니 개미의 노동법칙을 카피해 로봇을 제작했다고 하는데요. 효과적인 협력을 통해 더 큰 힘이 발휘된다는 알고리즘이 적용된 사례입니다.

 


 

유 대표님은 학부에선 건축을 전공하시고, 조경공부는 해외에서 하셨죠?


유: 이제 사무실 개업한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어요. 사무실을 열기 전에는 조경을 하는 사람과 같아지려고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죠. 그러다 ‘왜 그래야 하지? 난 건축도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저의 캐리어가 조경의 다양한 관점을 표출하는데 필요하다는 믿음같은 것이 생겼습니다.


제 모토는 호로조경 입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건축을 했었고, 조경도 하고 있잖아요. 태생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사람, 그게 저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다른사람과 같아지려고 했던 거죠. 저 자신이 저로 안 보아준 거죠. 그런 정체성의 방황을 겪고 저를 저로서 받아들이자, 진정한 즐거움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사무실을 열었죠. 오히려 좋은 시작이 됐다고 봐요. 새로운 시도에 대해 힘들다고 생각 한 적 없어요.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는게 좋아요. 어쩔 땐 너무 좋아서 잠을 안잔 적도 많아요.


성공지침서 같은데보면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는데, 정말 그 말이 맞아요. 하고 싶은 걸 해야 잠도 안자가며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야 발전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운좋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아왔어요.


개인사이의 협업도 있겠지만,  분야와 분야가 손을 잡기위해선 각자의 전문성을 가진 상태에서 시작하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 전문 영역이 있어야 협업에 파트너가 되지 않겠어요? 내가 우리세계에서 줄만한 것이 있어야 다른 분야에서 끌어올 수 있는 시야가 생기기 때문이죠. 분명한 자기 것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분야의 새로운 질서에 자기의 이상과 방향이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능동성도 갖추어야 합니다. 결국 자신의 전문영역에 대한 신뢰가 구축되어야 ‘난 이런 것도 할 수 있어’라고 받아들이면서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편의 요구에 ‘조경은 이렇게 일안해’라고 하면, 협업의 준비가 안됐다고 봐야죠. 마음의 준비, 실력의 준비가 안된거죠.


악기를 만들 때 사람들은 계속 해보면 무언가 나올 거라 하는데, 저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저는 방법을 정한다음 일을 해왔습니다. ‘그렇게도 할 수 있구나’라고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내가 컨트롤하며 다른 사람과 만든다는 생각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권: 전문성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기본입니다. 저는 그 분야에서 경지에 오르면, 그 안에 담긴 철학과 가치관을 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문성이 표현되는데 있어서, 구조화된 사고로 표출될 때가 많아요. 전문성에 도달하는 논리 말이죠. 그 논리를 가지고 협업자에게 대입을 시키려고 하는 그런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구조화된 사고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전문성을 유지시키는 지지대 같은 것으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협업에선 건드릴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문성이 농익으면, 포용으로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더 말랑말랑해지는 것이지요.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더 넓은 가치로 치환하는 순간 협업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문성은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전문성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함도 갖추어야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유: ‘조경이 이런 모습이 될 수 있구나.’란 인식을 심어주는게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잠시 호로조경이라고 말했었죠? 그게 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 같아요. 욕이 아닌 것 같아요. 근본이 없는 것이 제 캐릭터고, 펼칠 면적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열정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뒤쳐질 생각이 없습니다. 동시에 조경계 시선을 다른 쪽으로 넓히는데 기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조경이 만날 것들은 굉장히 많이 있어요. 건축, 도시, 친환경... 또 그 사이사이 빈틈을 채우는 조경도 있어요.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란 거죠. 그게 목표입니다.


: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할려고 합니다.

 

앞으로 두 분은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유: 좋은 일이 생기고 서로 도움받을 일 있다면, 언제든 하고 싶어요.
권: 저도 물론 그렇습니다.

 

인터뷰 이후, 유승종 대표가 복실이에 구현될 소리장치에 대한 영상을 보내줬다. 바로 스프링드럼이다. 스프링의 떨림이 얇은 막을 통해 울림을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글·사진 _ 나창호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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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iente 조경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 계기...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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