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입구 연못 풍치가 아름다운 봉화의 도암정(陶巖亭)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7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4-20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암정 (강충세, 2010 여름)

余嘗登黃 田之松亭 數株長松 列於奇巖 小塘之上
溪山拱揖環抱 自作別天地 亦文殊山下一勝地也
 나는 일찍이 황전(黃田)의 송정(松亭)에 오른 적이 있는데,
몇 그루의 큰 소나무가 기암과 작은 연못가에 늘어져 있었다.
계산(溪山)이 두 손 모아 포옹하며 스스로 별천지(別天地)를 이루니,
문수산(文殊山) 아래의 승지(勝地)를 이루었다.
 - 문소 김진동(聞紹 金鎭東:1727-1807)의 송정회음록후서(松亭會飮錄後序)-
 
이것은 문소 김진동이 도암정 송정회(陶巖亭 松亭會)에서 여러 현자들과 대화를 나눈 “시(詩)를 읊조리며”라는 시(詩)의 일부이다.
 
경북 봉화 교차로에서 915번 도로를 따라 300m 길을 걷다보면 직사각형 형태의 연지에 접해있는 정자를 만나게 된다. 바로 도암정(陶巖亭)이다. 도암정 입구에서 보면 마을 앞에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가을 누런 들판에는 오곡이 풍성하여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주고 있고, 앞산에 사는 황학(黃鶴)이 들판으로 내려오면 황학 떼가 장관을 이룬다. 이 마을이 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2리 황전(黃田)마을이고 앞길은 황전(黃田)길이다. 


도암정 위치도

육중한 팔작지붕이 계자난간 위에 살짝 내려앉은듯한 정자는 거대한 느티나무에 걸쳐있는 듯하고, 제철 만난 연꽃은 연못 안을 가득 메우고 있으며, 둥근 섬 안의 늠늠한 소나무는 도암정의 존재가치를 분명히 해준다.


도암정 근경(여름)

도암정 앞 연못은 가로 세로의 비가 5:1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의 보기 드문 형태로, 담장은 전면으로 쌓지 않고 세 방향만을 쌓게 하여 확 트이게 했으며, 좌우측 담장에는 연못 쪽으로 출입문인 사주문(四柱門)이 설치되었다.


도암정의 내원 (김영환작. 2014)

마을 입구에 위치한 도암정에서 마을 안쪽으로 200 m 걸어 들어가면 경암헌(耕菴軒)을 비롯한 도암정의 본제(本第)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이곳 본제에는 지금도 의성김씨 종손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로서 도암정은 별서터임을 알 수 있다.


도암정의 본제(경암헌: 畊菴軒)

도암정의 작정자는 황파 김종걸(黃坡 金宗傑, 1628-1708)이다. 김종걸의 본관은 의성, 자는 국경(國卿), 호는 황파(黃坡)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다. 1708년 통정대부부호군(統政大夫副護軍)에 임명되었고, 사후에는 지방 사림(士林)의 추천으로 동지의금부사 가선대부(同知義禁府事 嘉善大夫)로 추서되었다. 또한 김종걸은 효심이 높았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소태산(小太山) 하늘에 기도하는 기천단(祈天壇)을 설치하고 7일간 금식하며 기도한 후 약을 구하러 나섰더니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의 병을 낫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문집에는『황파집(黃坡集)』이 있다. 사후 마을 안에 있는 봉산리사(鳳山里寺)에 배향되었는데, 봉산리사는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지되었다가 1925년에 다시 세웠고, 마을사람들이 봄·가을로 향사(享祀)를 올리고 있다. 6대손 김구가 쓴 황파집(黃坡集) 안의 도암정중수기(陶巖亭重修記)를 보면, 이 정자는 김구한의 8대조인 봉사부군(奉事府君)이 처음 지어 수양의 공간(藏修之所)으로 삼았다가 6대조인 황파부군(黃坡府君) 김종걸과 그의 사촌인 담암공(潭巖公)이 함께 중수하고 도암정이라 이름 붙였음을 알 수 있다.


도암정의 본제 안채


경암헌 누마루

도암정(陶巖亭)은 항아리 모양의 암반 주변 연못가에 세운 정자로서 주변에는 기이한 바위가 많다. 도암정에 ‘도(陶)’라고 이름 지은 것은 바위의 형태가 둥글고 두루두루 갖추어져 마치 큰 항아리 같기 때문이며 바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다. 정자의 곁에서 부여잡고 올라가는 돌은 제암((梯巖, 사다리 바위)이라 하고, 정자의 동쪽에 홀로 서 있는 것은 병암(屛巖, 병풍바위)이라 하며 정자 서쪽에 옆으로 숨은 것을 은암(隱巖)이라 하였다. 또 귀암(龜巖,거북바위), 별암(鼈巖, 자라바위), 인석(印石), 반석(盤石), 탁영암(濯纓巖)등이 있는데, 모두 상부의 굽은 바위(枉巖) 아래에 있다. 바위 곁에 작은 못을 뚫어 영소(暎沼)라 하고, 못 가운데 세 봉우리를 쌓아서 화서(花嶼)라 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아울러 이름 하기를 도암동천(陶巖洞天)이라 하였다. 동천(洞天)이란 신선의 경역을 일컫는 말로 정자 주변을 신선의 영역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도암정(陶巖亭)은 김씨의 선조가 직접 심은 소나무가 옆에 있음으로 그 정대(亭臺)를 송정(松亭)이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송정(松亭)에서는 인근의 사대부들이 모여 정기적으로 수계(修稧)를 개최하여 시문을 짓고 술을 마시며 노닐었다. 김진동(金鎭東)의 송정회음록(松亭會飮錄>서문에는 송정(松亭)에서 갑신년(1704)과 을유년(1705)에 걸쳐 두 차례 개최되었던 송정회음(松亭會飮)에 참석했던 93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서문에는 송정 일대의 산수는 별천지(別天地)이며 승지(勝地)라 하였고, 아회 모임에는 인근의 석학들, 예를 들어 하당(荷塘), 창설(蒼雪), 귀옹(龜翁), 눌은(訥隱) 그리고 그의 증조부 팔오부군(八吾府君), 조부 상사부군(上舍府君) 형제가 참여하였으며, 비록 산간의 궁벽한 지역이지만 많은 현인(賢人)들이 참석하여 성대한 모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도암정이 단순히 경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여 시연회(侍宴會)도 베풀며 공유한 별서의 중심공간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사료된다.


도암정 원경 (강충세. 2010 가을)


도암정 근경(가을)

또한 도암정의 정자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하나는 굳센 힘이 느껴지는 도암정(陶巖亭)이고 또 하나는 그림에 가까운 해서체 언비어확(鳶飛魚躍)이다. 도암정(陶庵亭)이란 현판은 당나라의 서예가 안진경(顔眞卿)체의 흘림이 있는 해서체(海西體)로 획의 한자 한자에 힘이 있고 강약이 분명하며 굳센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언비어약(鳶飛魚躍)은 솔개는 하늘을 날고 고기는 물속에서 튀어 오른다는 뜻으로 만물이 각기 자기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묘사한 말이다. ‘솔개가 나는 것이나 물고기가 뛰는 것이나 모두 자연의 법칙이고, ‘새나 물고기나 스스로 터득한다는 뜻’, 그리고 ‘도리(道理)는 천지간 어디나 있다는 말’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정자 주인의 소임을 다하고자 하는 생활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암정은 결론적으로 효종원년(1650) 황파 김종걸(1628-1708)에 의해 건립 후 여러 차례 중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직사각형 연못과 원도, 기묘한 바위와 수림, 정자와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지형 등이 잘 조화되어 조선시대 선비의 기품 있는 별서정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자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정자 앞의 인위적으로 조성한 전통원지가 있으며, 소나무와 느티나무 등이 빽빽한 바위동산이 있고 경암헌(耕菴軒)이 있는 본제가 있어서 별서정원으로서의 명승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도암정 원경 (강충세. 2010 겨울)


도암정 근경(겨울)

도암정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른 국가문화재의 지정기준 제2조 별표1(2007. 11.22 개정)의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庭苑) 및 중요한 전설지 등으로서 종교, 교육, 생활, 위락 등과 관련된 경승지 중 정원, 원림, 연못, 옛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앞에 긴 직사각형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정자는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본 정자는 건축의 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연못의 연꽃이 필 때면 뒷동산의 송림을 배경으로 한 바위들과 함께 무릉도원을 방불케 한다.


마을쪽에서 본 도암정(여름)


마을쪽에서 본 도암정 (강충세. 2010 겨울)

또한 도암정의 본제는 의성김씨 문중의 거촌리 파 종가댁으로 행장과 기록, 시문등 이 남아 있어서 정원조영에 대하여 보다 정밀하게 밝히는 후속작업이 필요하며 이러한 이유들이 도암정을 국가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해야 할 사유이기도 하다. 이미 정자 오른편에는 마을회관이, 정자 뒤편으로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연못 앞 도로에는 현대식 볼라드 등 도암정과 어울리지 않는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제 더 이상 도암정 별서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들은 들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松亭會飮日呼韻賦五七言三絶謹呈僉座求和: 송정회음일에 5,7언 3수를 지어 좌중의 여러 사람들에게 화답을 구하다”라는 판상시(板狀詩)를 일부 소개함으로써 별서명승으로서 도암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소나무와 연못의 풍광 아래서 현인들이 모여 시를 읊는 즐거움과 해마다 노닐 것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도암정의 외원 (김영환작. 2014)

名區開勝會 : 경치 좋은 곳에서 아회를 열고
鑿沼暎層丘 : 연못을 파니 층층 언덕이 비치는구나
罇凹賢人滿 : 술 단지는 홀쭉한데 현인들은 가득하고
臺平好客留 : 누대가 평평하여 손님이 머물기 좋네
黃雲圍四野 : 누런 곡식이 사방의 들을 에워 쌓고
白露近中秋 : 백로가 되니 중추가 가깝구나
鶴髮知難老 : 백발노인들은 늙는 것을 막기 어려움을 아니
相期歲歲遊 : 해마다 노닐자고 서로 약속하는구나
老作靑山主 : 늙어 청산의 주인 되어
盤旋石一丘 : 바위 언덕을 서성인다
松䟱風乍過 : 소나무 발자취에 바람이 건듯 지나고
塘靜月遲留 : 연못이 고요하니 달이 오래 머무네
約會蘭亭稧 : 난정 아회 참석을 약속하고
行吟桂樹秋 : 걸으면서 계수와 가을을 읊었다
酉橋長不斷 : 유교(酉橋)는 언제나 끊어지지 않을 것이니
來者續玆遊 : 참석자는 이번에 이어서 노닐 것이로다


이재근 교수의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는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헤리티지채널의 '명사칼럼'을 통해 연재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채널은 국민의 문화유산 애호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고품격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문화유산 전문 채널입니다. [헤리티지 채널 바로가기]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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