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관과 선비문화의 요람 선유동계곡의 학천정(鶴泉亭)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8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4-27


“地以山水勝, 而有時乎顯晦, 故程夫子修稧於洛社而洛社顯 紫陽子擢歌武夷顯,
向使洛社武夷不遇兩夫子則只是古今一壑而己,至於我東,石潭遇栗翁顯,華陽得尤翁顯.
...至我陶菴先生而顯,於是爲藏修之遊息之. 使從弟知菴公 起數椽扁之 以屯山精舍,堂曰惺心,...
吾道之以隆 山水因之而顯矣.”
“땅은 산수에 의해 아름다워지지만, 때에 따라 드러나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낙사(洛社)에서 수계(修稧)를 개최하여 낙사가 드러나게 되었고, 주자(朱子)가 무이구곡에서 뱃노래를 부르자 무이구곡(武夷九曲)이 드러났다. 만약 낙사와 무이구곡이 두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의 골짜기에 불과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석담(石潭)은 율곡(栗谷)을 만나 드러났고, 화양동(華陽洞)은 우암(尤巖)을 만나 드러났다. …… 이곳은 우리 도암(陶菴) 선생에 이르러 학습하고 노니는 장소로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중국의 낙사(洛社는 정자(程子)가 있음으로, 무이구곡은 주자(朱子)가 있음으로, 우리나라 석담(石潭)은 율곡이, 화양동구곡은 우암이, 선유동은 도암(陶菴)선생이 있음으로 명승적 가치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송병준(淵齋 宋秉濬)(1836-1905)의 <鶴泉亭記>- 

학천정(鶴泉亭)은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선유동계곡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재(李縡 : 1680~1746)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자리에 지역 유림들이 그의 덕망을 기려 중건한 별서건물이다. 선유동계곡(仙遊洞溪曲)은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해발 969m인 둔덕산에서 흘러나오는 물길을 따라 약 1.8km에 걸쳐 기암괴석과 맑은 옥계수가 곳곳에 선경을 이루는 곳이다.


학천정 위치도

이재(李縡)는 1727년 정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당색이 온건한 인물로 인사를 개편한 정미환국(丁未換局)이후 정계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집안 동생인 이유(李維)에게 이곳 선유동계곡 중에서도 외선유동(外仙遊洞)에 둔산정사(屯山精舍)를 짓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후 둔산정사는 부지가 협소하고 화재의 위험이 있어 다시 남쪽으로 1리쯤 떨어진 곳에 학천정을 새로 짓고 이전하여 후학들을 길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송병준(淵齋 宋秉濬:1836-1905)의 “鶴泉亭”에서는 “이재 선생의 유풍을 따르는 후학들이 선생에 대한 흠모의 정을 높이 평가하며, 정자가 도의를 계승하는 강학의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상기하며, 인욕이 극성 하는 세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존속되기 바라는 마음을 기록하기 위해서 기문을 쓴다.” 라고 말했다. 또한 이재의 후손 직양재 이만용( 直養齋 李萬用: 1839-1915)은 그의 “鶴泉亭記“에서 학천정 경관에 대해 “이 정자에 오르면 푸른 바위절벽에 광채가 드리우고, 꽃나무의 짙은 향기가 퍼지며, 촛대같이 솟아오른 봉우리가 두 손 모아 예를 표시하며 반짝인다. 솥처럼 패인 연못과 씻은 듯한 계곡이 회오리치며 흐른다. 이 물이 맑으면 그윽하고 푸르러 기이하고 뛰어난 경관을 일으키니 어찌 사람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랴. 이는 분명 하늘이 만든 것이로다. 샘 위에 학대(鶴臺)가 있어 예부터 학천(鶴泉)이라 하였으되, 이에 이 정자의 이름을 학천정(鶴泉亭)이라 붙인다.”라고 표현하였다.


학천정 원경(가을)


학천정의 외원: 김영환작. 2014

이재(李縡)는 용인 태생으로 경주이씨의 계파인 우봉(牛峰: 黃海道 金川郡) 이씨이고, 호는 도암(陶菴) 또는 한천(寒泉)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시조는 고려 명종 때 공신인 이공정(李公靖)으로서 우봉 이씨는 학문으로 전통을 이어온 씨족가문이라 할 수 있다. 이재는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에 반대한 노론(老論) 의 대표적 인물이다. 호락논쟁(湖洛論爭) 당시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제자인 이간(李柬: 1677-1727)의 학설을 계승하여 심성설(心性說)을 반박하고 융화적 세계관,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펼쳤다. 그는 중부 만성(仲父 晩成)에게 사사받았고, 당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김창협(金昌協:1651-1708)의 문인이기도 하다. 그는 42세까지 대사헌, 한성부윤, 이조참판, 예조참판, 도승지를 역임했다. 그러나 1722년 임인옥사(任寅獄事)때 경종을 암살하거나 폐위시키는데 관여했다고 하여 스승 중부 만성(仲父 晩成)이 옥사하자 사직하고 강원 인제에 들어가 성리학에 몰두 했다. 1725년 영조 즉위 후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에 이르렀으나,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때는 소론학파들에 의해 서울 성문 밖으로 쫓겨났다. 이때부터 이재는 정쟁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관직을 멀리하고 문경 가은(聞慶 佳恩)과 용인 한천(龍仁 寒泉)등에 머물면서 오원(吳瑗:1700-1740), 임성주(任聖周:1711-1788), 김원행(金元行:1702-1772), 송명흠(宋明欽:1705-1768) 등 많은 학자를 길러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학문은 청나라의 학문과 문물을 배워 조선의 물질경제를 풍요롭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자고 한 북학(北學)사상 형성의 토대를 이룩했다. 사후에는 용인시 이동면 원리에 묻혔으며 용인시 이동면 천리에 있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도암집(陶菴集) 사례편람(四禮便覽),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학천정 내원에서 본 누각과 외부풍경: 강충세. 2010

선유계곡 역시 도암(陶庵) 이재(李縡)를 비롯하여,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 조선의 석학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 병옹(炳翁) 신필정(申弼貞) 등 명인묵객(名人墨客)이 즐겨 찾는 비경의 장소였다. 선유동은 내선유동(內仙遊洞)과 외선유동(外仙遊洞)이 있는데, 내선유동은 충북 청천의 화양동에 인접하여 있고, 외선유동은 문경에 있으며 학천정은 외선유동 중에서도 마지막 지점에 있다.
선유동계곡은 구한말 학자 외재 정태진(畏齋 丁泰鎭: 1876-1956)에 의해 선유동구곡(仙遊洞九曲)이란 명칭으로 불려졌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주자(朱子)의 복건성(福建城) 무이구곡(武夷九曲)에 비유하여 이름붙인 것이다.


학천정 정자에서 본 외부풍경


선유구곡의 제1곡은 ‘아름다운 안개가 드리우는 곳’의 의미로 옥하대(玉霞臺), 제2곡은 현실에서는 어렵지만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영사석(靈槎石), 제3곡은 선비들이 영사석에서 신령한 배를 타고 이르는 곳 활청담(活淸潭), 제4곡은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의미의 세심대(洗心臺)로 표현하였다. 제5곡은 선유구곡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물결을 본다는 의미의 관란담(觀瀾潭)으로 표현하였고, 9명의 선비가 은거했으리라 추측되는 구은대(九隱臺)라는 각자도 새겨 놓았다. 제6곡은 더럽혀진 몸과 마음을 맑은 물에 씻는 곳이라는 탁청대(濯淸臺), 제7곡은 공자가 얘기했다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뜻의 영귀암(詠歸巖), 제8곡은 이 지역이 훌륭한 소리를 내는 악기와 같다하여 난생뢰(鸞笙瀨)로 표현하였다. 대나무로 만든 생(笙)이라는 악기는 만물이 소생하는 소리이며 인간계와 다른 신선의 세상이 펼쳐진 곳,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을 뜻한다고 하였다. 제9곡은 옥석대(玉舃臺)로서 학천정 앞 바위에 새겨져 있다. 옥석은 옥으로 만든 신발이라는 뜻이다. 한나라 유향(劉向: BC77-BC6)이 지은 열선전(列仙傳)에 옥석에 관한 일화가 나오는데, 옥석은 도를 깨친 자가 남긴 유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도를 깨친 사람이 남긴 유물이 있는 곳이 바로 도가 지극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선유동계곡의 암반풍경(여름)


선유동계곡의 암반풍경(가을): 강충세.2010

학천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로 되어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지붕은 네 귀에 추녀를 달았다. 현판 ‘鶴泉亭’은 정자의 이름으로서 해행체(楷行體)로 쓰였으며 낙관이 없어 글씨를 쓴 사람은 알 수 없으나 굵은 필선이 부드럽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학천정은 ‘鶴泉臺’에서 ‘鶴’자를 따고, ‘옥석대(玉舃臺)’ 아래의 계류에 모인 물이 샘(泉)을 이룬다고 하여 ‘泉’자를 딴 것이다. 학천정의 담장은 돌막담장에 시멘트 기와로 되어있다. 정자의 오른쪽 뒤편으로 한단 높게 도암선생의 영정을 모신 1칸 맞배지붕의 도암영각(陶菴影閣)이 위치하고, 2002년 재건되었다는 푯말이 있다.


학천정의 내원: 김영환작. 2014

정자 뒤 암벽에는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는 예서체의 글이 깊게 새겨져 있다. 이는 높이 솟은 산처럼, 길게 흐르는 물처럼 영원히 존재하는 인격과 풍모를 비유한 말 이지만 나중에는 심후한 은덕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석각이 도암 이재 선생과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정자 앞 바위에 새겨진 선유동( 仙遊洞)이라는 해서체의 글은 최치원 선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정자 정면에는 마애석각으로 남근흥암(南近興巖), 북접화양(北接華陽) 이라 새겨져 있다. 남쪽으로는 흥암서원(興巖書院,: 상주 소재, 同春堂 宋浚吉을 향사)에 근접하고, 북으로는 화양서원(華陽書院: 괴산소재 尤庵 宋時烈을 향사)에 가깝다는 뜻이며, 이재 선생의 사상이 노론의 두 거두 동춘당(東春堂)과 우암(尤巖)을 계승하여 노론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이다. 학천정은 본제가 어디인지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문경시 가은읍에 후손이 살고 있고, 이 지역의 우봉 이씨 종친회가 가은읍 작천리에 있어 가은읍 주변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다.


선유동계곡의 물흐름(여름)


선유동계곡과 암반 및 암각: 강충세.2010

학천정 별서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면서도 인문학적으로 많은 묵객들이 찾았던 곳이고, 그리하여 명승이란 사람이 기거하고 생활해야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는 글을 쓴 이재선생의 후손 이기용(李奇用)의 학천정기(鶴泉亭記)의 내용과 같이 사람의 땀내가 서려있는 곳이다. 이재는 조선후기의 선비요, 학자로서 실학의 근간이 되는 북학(北學)학자를 배출했음은 물론 도암집(陶菴集)을 금속활자로 찍어냈고, 사례편람(四禮便覽)이라는 예학서(禮學書)를 발간하여 대중성을 획득하였으며, 삼관기(三官記)라는 수필집을 남긴 분이다. 우봉 이씨 문중에는 추사 김정희의 문하생으로 세한도(歲寒圖)를 선물받았고, 은송당집(恩誦堂集) 24권을 저술했으며, 청나라사신으로 12번이나 중국을 방문하며 명성을 떨친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 1804-1865)이란 인물을 배출했고, 최근에는 국사학자 이병도박사, 문학평론가 이어령박사 등을 배출했다.


학천정의 외원: 김영환작. 2014      

학천정과 학천정 경관을 보호하려면 우봉 이씨와 이재(李縡)라는 인물, 선유동구곡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곡을 보존하는 일이 급하다. 학천정은 선유동구곡의 절정으로서 사람이 살던 실체 자체임으로 구곡 중에서도 그 중심공간에 서 있다. 따라서 선유동구곡을 보존하고 개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천정을 포함하는 선유동구곡자체를 명승으로 지정해서 관리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재근 교수의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는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헤리티지채널의 '명사칼럼'을 통해 연재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채널은 국민의 문화유산 애호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한 고품격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문화유산 전문 채널입니다. [헤리티지 채널 바로가기]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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