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겸허로 학문에 정진했던 류운룡의 안동 겸암정사(謙嵓精舍)

[조경명사특강]이재근 교수의 ‘한국의 별서’ 15회
라펜트l이재근 교수l기사입력2014-06-13


前臨潭壁後穹林   앞에는 맑은 강물 뒤에는 푸른 숲,
粧占各區適淺深   높낮이 알맞게 정자 터 잡았구려.
鹿洞煙雲餘異馥   녹동의 끼친 향기 변함없이 남아 있고,
龍門弦誦有遺音   용문의 글소리 아직도 들리는 듯하네.
松風塵落疑天雷   시원한 솔바람 천뢰가 부는 듯,
江月澄鮮證道心   강물 속 맑은 달은 도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네.
滾滾昏塵如脫却   어지러운 세상 티끌 잊을 수 있어,
杖鞋勝日此來尋   지팡이 끌고 날씨가려 경치 좋은 여기에 찾아왔네.
-허훈(許薰: 1836~1907)의 겸암정사-


안동 겸암정사 위치도1: 낙동강변과 내성천변의 정자들을 중심으로 그린 위치도.

청량산 도산구곡 쪽에서 내려온 물과 일월산 반변천 쪽에서 내려온 물이 합쳐져 하회마을 겸암정사 앞으로 흐른다.



안동 겸암정사 위치도2: 겸암정사 주변의 중요 경관을 표시한 위치도.

낙동강물은  풍산들녁을 거쳐 화산(460m)을 끼고 휘돌아 나가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하회마을 물돌이 마을을 형성했다.

겸암정사(謙嵓精舍)는 안동시 풍산면 광덕리에 위치한 류운룡(柳雲龍, 1539~1601)의 별서이다. 류운룡의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嵓)이며 본관은 풍산(豊山), 중영(仲郢)의 아들이고 서애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세 살 위 형이다. 이황(李滉, 1501~1570)의 문인이었으나 벼슬을 위한 과거공부보다는 겸암정사를 세워 순수학문에 열중하였다.‘겸암’이라고 호를 지은 것은, 겸허한 자세로 내적 수양에 정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중기의 문신 택당 이식(澤堂 李植: 1584~1647)은 겸암의 묘갈명에서 "겸허하고 겸허한 군자여! 본체는 강건하고 쓰임은 부드러웠네." 라고 칭송했다.

그는 1572년 선조의 음덕(陰德)으로 조선의 선박 제조 및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전함사(典艦司) 별좌(別坐)에 임명되었고, 왕실의 원포와 채소관리를 하던 사포서(司圃署) 별제(別提), 진보현감, 풍기군수 등을 역임했다.


겸암정사 앞 뜰 전경

임진왜란 때는 향리에 남아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하면서 좌의정 직을 맡고 있는 동생 서애를 도와 의병을 후원했다. 겸암 류운룡은 풍기의 우곡서원(愚谷書院), 안동의 화천서원(花川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겸암집(謙嵓集)이 있다.

겸암정사의 본제(本第)는 겸암 류운룡(謙嵓 柳雲龍, 1539~1601)이 살았던 풍산류(柳)씨 대종가(大宗家)인 양진당(養眞堂)이다. 겸암은 학문연구와 후예양성을 목적으로 1567년 본제인 양진당 맞은편, 부용대 서쪽 높은 절벽에 겸암정사를 건립하였다.


겸암정사의 본제(양진당): 입암고택(立巖古宅)이란 글씨의 입암(立巖)은 류운룡의 부친 류중영(1515~1533)선생을 지칭한다.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전경(강충세.2013)

겸암정사(謙嵓精舍)는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ㅡ'자형의 바깥채와 'ㄱ'자형의 안채가 함께 있다. 중층누각식의 누마루를 둔 5량 집의 건축물이며, 장대로 마감한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겸암 정사의 신축과 주변경관에 관해서는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 1710~1781)이 쓴 겸암정사기(謙嵓精舍記)에 잘 나타나 있다.


겸암정사 전경.


겸암정사의 평면도: 'ㄱ'자형의 안채(살림채), 겸암정사, 방앗간채로 이루어져있다.

"정사가 하회마을의 입암 위에 있으니, 겸암 류선생이 거처하면서, 자호로 삼았던 곳이다. 하회마을 아래위로 능파(凌波), 달관대(達觀臺)와 옥연, 상봉, 원지정사와 더불어서 화천과 만송림 등 여러 승경들은 뛰어나서 바라보면 흡사 신선이 사는 별천지 같으나 유독 이 정자가 더욱 아름답다.

무릇 흰모래사장과 옥 같은 자갈의 벌이 널리 펼쳐져 있고, 백길 창벽이 우뚝한 그 밑으로 푸른 강물이 유유히 감돌아 흐른다. 물안개는 아득히 나무 숲 사이에 엉키어 아침과 저녁으로 변화하는 장면을 모두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정자가 있는 곳은 골짜기 두 암반 사이에 들어서 있어 깊고 그윽하다. 지세는 높으나 강기슭을 따라 지나가면서 흘겨 보면 벼랑의 암벽과 칡덩굴사이로 보일락 말락하여 왕왕 이 정자가 있는 줄도 모를 지경이다.

주역의 겸괘(謙卦)에 형상하기를,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스스로 자기 몸을 낮춘다는 말을 참으로 선생께서 실천에 옮기셨으니, 이 정자는 진실로 선생을 만나서 절승을 드러냈고, 선생 또한 이 정자로 인하여 산책하며 음영(吟詠)하는 운치를 길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살펴보면 오른쪽으로는 부용대가 북풍을 막고 있으며 그 절벽 아래로 화천이 굽이쳐 흐른다.


하회마을에서 본 부용대 전경(강충세.2013):  강건너 부용대 좌측으로 겸암정사, 우측으로 옥연정사가 위치한다.



겸암정사외원도1(김영환.2014): 하회마을 쪽에서 본 겸암정사와 부용대의 모습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표현. 양진당, 겸암정사, 원지정사, 빈연정사, 옥연정사, 충효당을 조성 연대별로 기록했다.


반대로 겸암정사가 위치해 있는 부용대 일원에서 강 아래를 내려다보면 넓은 백사장과 송림,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하회마을, 그리고 멀리 화산(460m)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겸암정사는 물길이 마을에서 가장 멀리 휘도는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마을과는 격리되어 있고 본제와 떨어져 별도의 생활이 가능한 곳이다. 일반적인 누정과는 달리 축대의 끝에서 뒤로 물러나서 빈터를 두고 세워져 있으며 이 빈터에는 수목을 심었다. 인위적으로 터의 뒤쪽으로 자리를 잡아 주변 경관 속에 묻혀 있어서 맞은편에서 보아서는 주변의 수목과 정사건물을 쉽게 구별 할 수 없는 신선, 어진 현자가 사는 곳이다.


겸암정사 왼쪽 절벽에서 본 하회마을 전경(강충세.2013): 마을앞으로는 겸암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만송림이 마을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



겸암정사 외원도2(김영환.2014): 겸암정사 내원에서 본 낙동강과 하회마을 외원의 모습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표현. 만송정 뒤로 본제인 양진당과 겸암의 제2별서인 빈연정사가 보인다.


조선중기의 문신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은 겸암정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로 노래하였다.

特地人間少有天  駕雲精舍碧流邊  
見賢自是思齊矣  聞善誰能御沛然
인간 세상 떠난 듯한 명승지가 드문데,
푸른 물 굽어보며 높은 곳에 정자가 앉았네. 
어진 현자를 만나고는 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법인데, 
선생의 말씀 듣고 그 감동됨을 뉘라서 막으리오.

겸암정사. 그곳은 류운룡이 양진당 본제와는 격리된 곳을 찾아 하회마을 강 건너편에 조성한 은일형 별서이다.

하회마을 본제에서 보면 가까운 듯 하지만 결코 쉽게 갈 수 없는 뚝 떨어진 곳에 위치한 격리된 장소이다. 

따라서 훗날 겸암은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시자 양진당 근처에 빈연정사(賓淵精舍)를 짓고 또 하나의 별서로 쓰기도 한다.


빈연정사 전경(강충세. 2013): 겸암 류운룡의 제2별서로 1583년(44세) 모친병세로 본제인 양진당 뒤에 조성했다.



안채 입구 쪽에서 본 겸암정사(강충세.2013): 겸암 류운룡의 제1별서로 1567년(28세)때 신축.

배를 타고 건너야, 혹은 마을 바깥으로 빠져나와 약 4km 십리 길을 돌아야 이르게 되는 겸암의 별서. 속세를 떠나 있는 듯한 이 곳에서 그는 죽는 날 까지 자신만의 세계를 향유하며 살고, 제자들을 길렀을 것이다.

류성룡의 옥연정사(玉淵精舍)와 원지정사(遠志精舍)도 있지만, 하회마을 별서의 맏형은 역시 겸암정사다. 겸암정사는 건축적 측면에서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지만 경관적인 측면에서 또 다른 영역이므로 명승으로 다시 지정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의 품위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눈에 잘 들어오는  유형물적 대상에만 문화재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경향이 있다. 

향후 겸암정사 별서를 중심으로 한 강 건너 부용대, 옥연정사, 화천서원 지역 전체의 경관을 대상으로 국가 명승으로 지정 관리할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옥연정사(강충세. 2013): 1587년 부용대 우측에 신축된 겸암 류운룡의 동생인 서애 류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의 별서로 부용대 좌측의 겸암정사와 쌍벽을 이룬다.



옥연정사 뒷뜰에서 본 하회마을(강충세. 2013): 강모래가 은빛물결을 띄고 있고 건너 우측 편으로 하회마을이 보인다.


연재필자 _ 이재근 교수  ·  상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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