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리운 카슨

글_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라펜트l오정학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07-11

그리운 카슨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주방 쓰레기통을 비우는데 작은 날파리가 몇 마리 보였다. 아마 여름이라서 그런가 보다. 없어지지 않고 계속 눈에 띄니 성가셨다. 슈퍼에서 에프킬라를 사서 뿌리리라 마음먹는다. 한번만 뿌려도 작은 날파리쯤은 깨끗이 박멸될 것이다. 그런데 작년의 가정용 살충제 리콜 뉴스가 갑자기 생각났다. 그렇다면 에프킬라에는 어떤 성분이 있을까? 검색해 보니 프탈트린, 퍼메트린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성분들은 소량 사용할 때 안전하다고 했다. ‘소량 사용시 안전이라...’ 갑자기 불길한 기시감이 확 느껴졌다. ‘어류 및 꿀벌에 대한 독성이 강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문구에서 그 느낌은 극에 달했고, 미국의 어느 마을이 떠올랐다.

 

그 마을은 초원위의 그림 같은 곳이었다. 어느 봄날 아침, 마을은 뭔가 이상했다.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매일 잠을 깨우던 온갖 새소리도, 닭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와 양떼는 시름시름 앓거나 죽어 있었다. 맑은 시냇물에는 물고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 옆 꽃밭에선 어제까지 윙윙대던 꿀벌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멋진 가로수는 마치 불길이 지나간 듯 시든 이파리만 매달려 있었다. 마을과 들판에 온통 무거운 침묵만 가득했다.

 

레이첼 카슨(1907~1964)의 <침묵의 봄>은 이렇게 시작된다. 살충제 살포의 위험성을 알리는 우화이다. 얼핏 경각심을 주려는 과장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 미국에서 실재했던 일의 조합이다. 그만큼 합성화학 살충제의 부작용은 공포스럽다. 그 면면은 DDT, 말라티온, 파라티온, 비소, 디엘드린, 클로르데인, 엔드린 등이다. 이들 중 맏형격인 DDT는 말라리아 방제약의 대명사로써,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인에게 친숙하다. 미군정과 한국전쟁 때에는 이를 잡기 위해 머리와 옷 속에 뿌리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DDT, 파라티온, 디엘드린 등의 사용이 금지되었다. 다만 DDT는 말라리아 방제를 이유로 아직도 쓰는 나라가 있다.

 

조경분야도 몇몇 화학약품과 인연이 깊다. 그것들은 주로 목재방부와 잡초방제를 매개로 연결된다. 목재방부는 ‘비소’가 대표적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 땅에서 방부처리를 위해 흔히 쓰였다. 비소는 비상(砒霜)의 구성 원소이고, 비상은 예로부터 동서양에서 독살용으로 자주 쓴 극독성 물질이다. 봉건시대에 군왕이 죄인에게 내린 사약에도 비상이 들어갈 정도였다. 말 그대로 ‘독약의 왕’이다. 방부목에 쓰인 비소는 비와 함께 지하수로 유입된다. 비소 지하수를 많이 먹은 사람들은 비소중독과 암에 걸릴 수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2007년에 CCA 방부법이 금지되어 덜 위험한 ACQ 방부목으로 바뀌었다. 물론 엄격히 본다면, ACQ 방부목도 비소, 크롬이 빠져 그 위험성은 낮지만, 다른 중금속의 유해성은 남아있다.

 

제초제를 안 뿌리는 공원이 점차 늘고 있다. 반면 아직도 공원에서 제초제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특히 토끼풀 등과 싸워야 하는 잔디밭은 제초제라는 편리함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예산의 압박을 받는 지자체는 더 할 것이며, 대상지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잡초 발아시기 등에 국한하는 등, 가급적 살포 횟수를 줄이는 노력이라도 필요하다. 제초제를 안 쓸 수 있는 저관리형 조경공간의 중요성이 자꾸 커지고 있다.

 

지금은 그나마 화학살충제의 유해성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레이첼 카슨이 활동하던, 196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식량보급의 취약성을 걱정하던 정부 방침에 따라 생산성 증가라는 이름으로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맘껏 뿌려지던 때였다. 그 부작용 또한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과학의 이름으로 ‘허용한도’내의 사용은 무해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실제 이는 무의미하다. 사람이 어떤 하나의 대상에만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도 안의 살충제를 각각 쓴 ‘쌀’과 ‘반찬’을 먹은 뒤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면 그러한 한도는 말장난일 뿐이다. 굳이 이렇게 합산하지 않더라도 햇볕, 대기, 물 등의 상호작용으로 한도 안의 성분이 자체증폭된 사례도 많았다.

 

그런 시대에 카슨은 여전사였다. 대형 화학기업 그리고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관리, 학자들의 굳건한 카르텔이 골리앗이라면, 카슨은 다윗이었다. “카슨양, 조용히 하시죠!” (“Silence, Miss Carson!!")로 대표되는 다아비(Darby)교수의 조롱조 아티클은 당시 과학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카슨에 대한 반대자들의 공격은 집요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다’ ‘히스테리컬 하다’ ‘비논리적이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의 사후 50년째인 지금도 공격이 계속되기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레이첼은 틀렸다(Rachel Was Wrong)’라는 웹사이트가 수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신자유 시장경제진영의 브레인 조직인 경쟁기업기구(Competitive Enterprise Institute)가 운영자이다.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카슨은 히틀러와 파시스트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그의 소설 인물을 통해 비난하기도 했다. 카슨이 살충제 거부심리를 불러일으켜 일부 지역에 말라리아가 다시 번성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식이다. 그러나 말라리아는 이미 DDT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있음을 카슨은 간파했다. 그럼에도 돈벌이에 눈이 먼 일부 화학자본은 무덤 속의 카슨을 꺼내어 부관참시를 시도한다.

 

이러한 비난과 달리 카슨의 주장은 조용하면서도 이성적이었다. 동시대인이었던 알도 레오폴드가 생태학적 진실로 대중을 교화하려 했다면, 카슨은 인간의 탐욕이 초래한 자연 파괴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40여 쪽에 이르는 <침묵의 봄> 참고문헌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미 부분적으로 확인⋅검증되었거나 다른 과학자들의 근거 있는 주장만을 인용했다. 대안 없는 비판도 아니다. 천적, 불임, 종다양성 유지 등을 활용한 자연방제 혹은 생물학적 방제의 중요성을 거듭 일깨우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만을 고집하는 생태근본주의도 아니다. 보다 덜 위험한 화학살충제가 하루바삐 개발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같은 살충제라도 살포시기와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그 위험성을 낮출 수 있음을 말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오늘날 카슨은 환경운동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다만, 지구환경보다 돈벌이를 더 중시하는 화학자본과 그들의 하수인들이 침묵의 봄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의 메시지는 DDT와 살충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DDT와 살충제를 매개로 기술발전과 자연 통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카슨의 사후 50년, 이 시대에도 여전히 카슨은 유효하다. 그가 그리운 이유이다.  

 

 



 

_ 오정학 논설주간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다른기사 보기
ohjhak@daum.net

네티즌 공감 (0)

의견쓰기

가장많이본뉴스최근주요뉴스

  • 전체
  • 종합일반
  • 동정일정
  • 교육문화예술

인기통합정보

  • 기획연재
  • 설계공모프로젝트
  • 인터뷰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