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인, 시민-전문가 자발적 참여가 열쇠

뉴욕 하이라인 조성, 풀 스토리
라펜트l박지현 기자l기사입력2014-07-27

1975년 준공된 서울역 고가도로는 명동과 서울역을 잇고 있으며, 주변의 건물들과 함께 서울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고가도로는 2008년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고 철거가 결정되었지만, 비용의 문제로 2015년 철거로 연기된 상황이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철거하지 않고 재활용하여 뉴욕의 하이라인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지난 6.4 지방선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혔다.


앞으로 서울역 고가에 하이라인과 같은 선형공원이 조성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 재정부문과 지역사회와의 갈등 등이 대표적이다.


뉴욕의 하이라인도 부동산 지주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 재정부족, 숨겨져 있던 대상지, 부동산 가치 평가, 사람들의 인식 개선 등의 어려움에 부딪혔었다. 


라펜트는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선형 녹색 공원의 탄생을 기대하며, 뉴욕 하이라인의 조성과정을 통해 서울역 고가의 미래를 점쳐본다.


(www.thehighline.org)


West Side Improvement

1847년 뉴욕 시는,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 거리위에 화물열차가 다닐 수 있는 철로를 승인했다.


이후 1851년부터 1929년에 10번가 도로는 ‘죽음의 거리’로 불릴 만큼 화물열차와 일반 교통수단 사이의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에 ‘웨스트사이드 카우보이’라는 인력을 동원해 이들이 열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흔들어 열차가 오고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계속된 위험에 대한 논쟁 끝에 시와 뉴욕 정부, 뉴욕시운송위원회는 대규모 민관 인프라 프로젝트인 ‘West Side Improvement’에 동의한다. 여기에는 철로 건널목 철거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1930년, 도로 위의 철로는 철거되고, 운송화물의 도로를 땅에서 30피트 위로 들어 올려 맨해튼 도로위의 위험요소를 없애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하이라인이 조성되었다.


교통수단의 변화, 폐지된 하이라인

공사를 마치고 1934년, 웨스트 34번가에서 세인트 존스 파크 역까지 열차 철로인 하이라인이 공식으로 개통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 국가적으로 트럭을 이용한 화물 수송이 활발해졌고 급기야 1960년대에 이르러는 하이라인의 최남단 구간이 폐지된다.


1980년 하이라인 위를 달리는 열차는 완전히 사라졌고 1980년대 중반, 첼시 주민이자 철도광이었던 피터 오블레츠는 철도개발재단을 만들고 언젠가 선로를 이용할 목적으로 하이라인 매입을 신청했다.


철도 재사용 뒤집고, 공원으로  

이후 뉴욕 시는 피터 오블레츠의 하이라인 매입을 반대하는 서류를 제출했고 입찰을 승인했던 주간통상위원회는 결정을 뒤집어 매각 합의는 무효화되었다.


시간이 흘러 1999년, 하이라인 재사용안에 대한 연구를 위탁받은 지역계획협회는 회의를 개최했다.


“15년 동안 하이라인 철거를 위해 활동해온 첼시 부동산 지주 단체 대표인 더그 새리니는 하이라인이 동네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붕괴될 것이다, 지역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다, 위험하다, 구조물 아래가 어둡다 등등의 장황한 주장이 오갔고 사람들은 정말 격분한 듯 보였다.” -『하이라인 스토리』中


다수의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지역계획협회는 하이라인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하이라인 재이용 방안 중에서 가장 괜찮고 간소한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경철도나 자전거나 보행자로로 이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길 권장했다.


'하이라인 친구들' 창립, 시민이 만드는 공공의 공원

이후 지역주민 모임에 속해 있던 조슈아 데이비드와 로버트 해먼드는 비영리단체 ‘Friends of the Highline’를 창립하고, 중요한 구조물은 유지한 채 공공의 공원으로 만드는 하이라인 파크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감춰져있던 하이라인을 처음 본 그들은 ‘하이라인은 세월의 흐름이 강하게 느껴지는 의외로 거대한 공간이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시키려면 대상지를 직접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Friends of the Highline이 하이라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부동산 지주 단체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땅에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하이라인 철거를 요구하면서 이에 따라 땅값이 상승하기를 바랐다.


Friends of the Highline은 발생하는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 부동산 가치 평가를 부탁했다. 그 결과 6천5백만 달러의 공사비용이 들지만 향후 20년에 걸쳐 하이라인으로 인한 뉴욕 시의 세수 증가분은 1억 4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들은 이 연구 결과를 알리려는 노력도 끊임없이 했다.


Friends of the Highline은 끊임없는 연구와 조사를 수행했고, 2002년에 드디어 하이라인 재사용을 위한 시의 지원을 받았다.


2003년 하이라인을 디자인하는 아이디어 공모전이 개최되었고, 여기에 36개국에서 720팀이 참여하였다. 이중 100개의 디자인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전시해 시민들과 공유하며 의견을 받기도 했다.


2004년 Friends of the Highline은 최종 하이라인의 디자인으로 제임스 코너 필드 오퍼레이션(James Corner Field Operations)과 DS+R(Diller Scofidio + Renfro)의 안을 선택하였다. 또한 식재 디자이너 피엣 우돌프(Piet Oudolf)와 엔지니어링, 공공미술 등의 전문가를 영입해 협업을 이끌어냈다.



2004년,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발표(www.thehighline.org)



2006년 하이라인 섹션1의 공사를 시작하였고 2008년에는 도보 조성, 식재, 벤치와 조명 설치 등의 조경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를 마친 2009년 하이라인 섹션1은 공공에 오픈했고 2011년 하이라인 섹션2도 그 모습을 공개하였다. 마지막 3번째 구간은 현재 조성이 진행되고 있다.


이후 하이라인은 시민들의 환호 속에서 점점 업그레이드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뉴욕 하이라인에는 부동산 지주단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 재정부족, 숨겨져 있던 대상지, 부동산 가치 평가, 사람들의 인식 개선 등의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협업, 시민과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관심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상징적인 선형공원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뉴욕 하이라인은 못쓰게 된 도시의 흉물을, 공간의 역사는 간직하면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해답도 제시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철거예정이었던 서울역 고가도로가 어떤 과정과 모습으로 재탄생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동영상 _ 하이라인(www.thehighline.org)

참고 _ 하이라인(www.thehighline.org),

           『하이라인 스토리』(조슈아 데이비드, 로버트 해먼드 지음/정지호 옮김/푸른숲)

_ 박지현 기자  ·  라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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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ent@laf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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