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전한 공간, 자유로운 장소

글_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라펜트l오정학 논설주간l기사입력2014-12-04
안전한 공간, 자유로운 장소

오정학 논설주간(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스포츠센터 탈의실에서의 일이다. 옷을 갈아입다 문득 고개를 드니 천장의 CCTV가 보였다. “아니, 저게 언제부터 있었지?” 유심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분명 얼마 전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나타나 조용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찜찜해졌다. 그런데 게시판을 보니 도난주의문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지갑과 고가 소지품이 도난 되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이었다. 슬며시 기분이 달라지면서 옷장 속의 내 보관물이 눈에 들어왔다. 지갑은 차에 두고 왔기에 낡은 피처폰과 대학 때부터 쓴 손목시계가 고작이다. 값어치는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없으면 아쉬울 것이다. “그래, 내가 무슨 가수 비도 아니고, 설마하니 내 몸이 시장에서 소비되겠어?” ‘안전’을 위해 나의 프라이버시와 자존은 이렇게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국민안전처가 생길만큼 안전이 주목받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영향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뿌리는 깊다. 현대의 문명화를 자유와 안전보장의 상호교환으로 볼 수 있을 만큼 현대인은 안전의 대가로 많은 자유를 포기했다. 봉건사회를 넘으며 그토록 어렵게 얻은 개인의 자유를 말이다. 입국할 때 지문을 찍는 국제공항이 늘고 있고, 얼마 전 사이버 망명 논란을 부른 통신감청은 사실상 국내외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처음엔 꽤 반발하지만 점차 수그러들고, 나중에는 오히려 기쁜 내색을 하는 이도 적잖다. 좀 불편하지만 관리 받는 느낌, 보호받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 혹은 ‘액체근대’라 불리기도 한다. 흡사 뗏목에 탄 것처럼 미래가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상황 때문이다. 유동성은 비고정성과 불안정성이 문제지만, 유연함이란 또 다른 속성 덕분에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금은 정치, 경제, 산업 전반에 걸쳐 유연함이 강조된다. 정책적 유연화를 위한 규제완화와 고용의 유연화, 공간적 유연화인 복합도시 등은 그 한 예일 뿐이다. 그러나 유연성은 곧 불안정성이므로 이들은 각각 사회적 위험과 가정경제의 불안정, 도시문제를 유발했다. 개인들에게 불확실성은 곧 불안이다. 보험과 개인연금, 사설경비, 자기계발서 열풍, 온갖 건강식품 둥은 불안에 쫓긴 개인들의 안전추구심리를 잘 보여준다. 불확실성이 범람하자 개인들은 통제를 위한 여러 감시체계를 오히려 안전망으로 여기게 되었다. 어찌되었던 통제는 변화를 막고 현상을 유지하는 속성이 있으니 말이다. 통제와 한 몸인 감시체계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오늘날 개인의 사적영역은 낱낱이 드러나고 세세히 포착된다. 이제 안전을 위해 인간존엄은 얼마간 희생되고, 편안한 사적영역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공원은 그 이름 그대로 공공 공간이다. 그러나 공론 영역이라기보다 여러 사적 활동들이 개별적으로 벌어진다. 사적 활동의 특성인 ‘친교’는 공원의 주된 기능 중 하나이다. 때때로 벌어지는 일탈행위는 지나친 사적 친밀감의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일 때가 많다. 아쉽게도 요즘에 와서는 범죄가 늘어나 그 안전장치로서 범죄예방설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범죄예방설계의 주요 전략으로는 접근 통제, 자연 감시, 영역 강화가 많이 채택된다. 이들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기보다, 서로 중첩시키고 상호영향을 꾀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 이미 국토부에서 설계가이드라인을, 경찰청에서 설계지침을 내놓았다. 국토부 가이드라인을 보면, “조경은 시야 확보가 가능하여 사람의 출입에 대한 자연 감시가 가능하고 숨을 공간이 없도록 계획한다”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경찰청 지침은 좀 더 적극적이다. “같은 블록에서는 가능한 같은 수종을 식재해야 한다” 거나, ‘활동의 활성화 방안’으로 주민의 특정한 신체활동까지 유도하고 있다. 덕분에 곳곳에 조명을 밝히고, 나무나 구조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여 공원 어디든지 잘 보일 수 있게 한 뒤, CCTV로 주요 지점을 24시간 촬영한다. 

범죄예방의 원칙을 따라 동선과 구조물, 식재처리가 일사불란하다. 가시성을 위해 눈높이의 지하고가 일제히 확보된 동종의 나무들은 흡사 헌병들의 짧은 머리를 보는 듯하다. 이러한 공간에서 벤담의 파놉티콘이 연상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모두를 뜻하는 그리스어 ‘pan'과 본다는 의미의 ‘opticon'을 합성한 파놉티콘은, 소수의 감시자가 중앙에서 다수의 죄인을 감시하는 원형감옥이다. 18세기 벤담이 그 원리를 제시한 뒤, 푸코를 비롯한 사회비평가들은 사회전반에 걸쳐 그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고 보았다. 군대, 학교, 병원, 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파놉티콘은 ‘감시’와 ‘통제’의 효율성을 극대화한 근대적 감시체계이므로, 범죄예방설계의 기본원리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기능주의적 시각으로 본다면, 공원의 ‘범죄 증가’를 막기 위해선 디자인적 해법을 내놓아야 하고, 당연히 예방을 위한 형태를 갖춰야 한다. 범죄예방설계는 지극히 이성적⋅합리적인 수순이다. 다만, 위요감이 없어지고 안온함이 줄어든 대신 서늘하게 다가올 그 삭막함은 대체 어찌해야 할까? 

효율성은 분명 문명 발전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산업화로 가속화된 ‘효율성’이 기계문명 및 자본제와 합쳐지고, ‘효율성만’이 추구될 때 많은 부작용을 일으켜왔다. 채플린의 ‘현대(modern times)'는 바로 그 ‘효율성만’을 따지는 물질문명의 비정함을 보여주었다. 범죄예방설계에서 중시하는 통제와 감시는 효율성의 척도이다. CCTV라는 감시 장치는 분명히 그 존재감 자체로 범죄예방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원을 모두 CCTV로 도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프라이버시가 사라지고 감성이 없는 공간, 그곳은 대체 어떤 공원일까?

개인이 사회적인 규범을 지키는 것은 각자가 사회와 맺고 있는 유대관계 덕분이라 한다. 바로 사회유대론이다. 유대관계는 가정, 이웃, 학교, 직장 등에서 나타난다. 감시와 통제에 이은 범죄예방설계의 또 하나의 접근수단인 ‘영역 강화’를 다른 말로 하면, ‘공동체 강화’이다. 효율성은 당연히 필요하겠으나, 그 때문에 공간의 온기를 잃는다면 매우 아쉬운 일이다. 안전이 없는 자유란 무질서와 혼란이지만, 자유 없는 안전 역시 노예와 다를 바 없다. 두 개의 가치가 함께 하는, 따스하면서도 평화로운 장소에 있고 싶다. 

_ 오정학 논설주간  ·  경기도시공사 사업기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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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jh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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